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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97790678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4-02-25
책 소개
목차
제6장 북벌의 꿈
북벌 정책, 명분은 좋았다 ┃ 왕을 죽인 당쟁의 스트레스 ┃ 장희빈의 인생 대역전 ┃ WHO 16 장옥정은 악녀가 아니었다 ┃ WHO 17 민생 경제에 주력한 임금 숙종 ┃ 소론의 시대 ┃ WHO 18 동이는 실존 인물이었나? ┃ WHO 19 장희빈을 이긴 동이의 전략 ┃ 동이의 아들은 임금이 되고 ┃ 왜 아들을 뒤주에 가둬? ┃ WHO 20 드라마 <이산>의 주인공은 정조 임금 ┃ WHO 21 이산은 어떤 왕이 되고 싶었을까? ┃ 조선왕조의 르네상스 ┃ 아아, 아버지 사도세자
talk about 6 궁궐에 관해 알고 싶은 것 8가지
풍수 사상에 따라 선택한 수도 서울 ┃ 4대문 성문마다의 역할은 다르다 ┃ 궁은 왕의 운명을 바꾸었다 ┃ 궁을 하루에 다 둘러보려면 ┃ 궁궐의 화장실은 누가 사용했을까? ┃ 궁궐의 단청과 해태 석상 ┃ 조선왕조가 남겨 놓은 5대 왕궁 ┃ 궁궐의 6개 구획 사용 설명서
제7장 치맛바람 세도정치
여인 천하가 된 왕조 ┃ WHO 22 정순왕후와 정조 이산의 파워 게임 ┃ 일그러진 왕통 ┃ 글자도 모르는 농사꾼 출신 왕 ┃ 주상, 내 말만 잘 들으세요 ┃ 부패한 정치의 끝
talk about 7 조선의 정치사회 키워드 15가지
과거 시험과 커닝 ┃ 천대받은 한글의 운명 ┃ 조정의 양대 파벌 훈구파와 사림파 ┃ ‘조선의 로빈 후드’ 임꺽정 ┃ 신출귀몰 장길산 ┃ 엄격한 신분제도 ┃ 실학,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다 ┃ 천주교와 남인 세력 ┃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 ┃ 상업의 근대화가 가져온 것 ┃ 세도정치의 시대 ┃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수렴청정’ ┃ 역사의 보물 창고 ‘조선왕조실록’ ┃ 기생과 의녀와 백정… ┃ ‘주리’로 대표되는 형벌 제도
제8장 왕조의 황혼
기세등등한 대원군 ┃ 피투성이 권력 싸움 ┃ 조선을 먹어 치우기 위해 ┃ 조선의 국모, 살해당하다 ┃ WHO 23 조선왕조 마지막 왕비 명성황후 ┃ 대한제국의 탄생 ┃ WHO 24 독살당한 왕은 여섯 명? ┃ 왕조의 막을 내리다
talk about 8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조선왕조 국가기관 11개소
주요 통치 기구 - 3사와 6조 ┃ 암행어사는 왕명 집행 감찰관 ┃ 사헌부는 500년 조선왕조의 버팀목 ┃ 성균관, 엘리트 인재 양성기관 ┃ 궁중 의료 기관 내의원 ┃ 환관이 맡은 내시부 ┃ 수라간은 프로 궁중 요리사 집단 ┃ 화가들이 관리로 근무하는 도화서 ┃ 장악원은 프로 궁중 음악가 집단 ┃ 감찰부·도화서·내의원·의금부·포도청·혜민서가 있던 위치 ┃ 창경궁은 궁중 여인들 사랑싸움의 무대
에필로그 굿바이 조선
덕혜옹주의 운명
왕자의 귀국을 막는 정부
bonus book 4 조선왕조 역사 드라마 가이드
리뷰
책속에서
1689년(숙종 15)에 숙종은 아무 잘못도 없는 왕비를 궁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천년만년 갈 줄 알았던, 민 씨를 대신해 왕비 자리에 앉힌 장희빈에 대한 사랑도 곧 식어 버리고 만다.
숙종은 “짐이 간신의 꼬드김에 넘어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며 책임을 신하들에게 돌리고는 인현왕후를 도로 왕비 자리에 돌아오게 했다. 물론 장희빈의 신분은 격하시켰다.
이렇게 법도에도 어긋나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 왕비 인사를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궁궐과 조정이 혼란스러웠을까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정치적으로 상업을 발달시키고 국방력을 강화하는 등의 훌륭한 업적을 남긴 숙종이었지만 여자 문제에서만은 많은 불씨를 만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현종 때부터 불붙기 시작한 서인과 남인의 대립은 숙종 재위 기간에 더욱 격화되었다. 숙종의 무질서한 왕비 인사가 불에 기름을 들이붓는 결과를 낳은 셈이었다.
- 제6장 장희빈의 인생 대역전 中
25세의 나이로 정조가 왕위에 올라 맨 처음에 선언한 공식 발언은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바로 장헌 왕자를 곤경에 빠뜨려 죽게 만든 노론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다.
형식상으로 정조는 장헌의 요절한 형인 효장 왕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있었다. 장헌 왕자가 죄인 신분으로 뒤주에 갇혀 굶어 죽었으므로, 장헌의 아들인 채로는 왕위 계승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위에 오른 즉시 정조가 스스로 ‘장헌의 아들’로 돌아갔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이는 장헌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을 엄벌에 처한다는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얼마 후 홍인한은 처형을 당했고 화원 공주는 왕족에서 평민으로 강등당했다. 그러나 노론의 후견인으로 자처하는 정순왕후만은 처형할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 정조의 할머니가 되기 때문이었다.
- 제6장 조선왕조의 르네상스 中
이듬해 2월에는 분쟁의 중심에 있던 대원군이 죽었다. 이로써 궁정 내의 권력투쟁은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민비가 거의 모든 국정을 주도해 왔기 때문에 왕은 국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일이 많아졌다. 고종은 광산 채굴권과 철도 부설권 등을 차례차례 외국에 매각했다. 조선의 이권은 러시아와 일본, 영미 열강들에게 하나씩 잠식당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을 둘러싼 이권은 러시아와 일본이 나누어 갖는 형국이었다. 1904년(고종 41)에 두 나라는 다시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러일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다. 그 결과, 을사보호조약을 맺은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기는 등 일본의 식민지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악 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 제8장 대한제국의 탄생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