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57956456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22-05-2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배제된 3·1운동의 여성사적 의미
1장 여자대학이 된 민족성지 태화관
01. 고증 부족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민족의 심장에 일제 상징 박아 넣은 서울시 | ‘그때그때 달라요’ 역사관, 재귀적 좌파 이벤트 | ▶“3·1운동 기생 사진은 본래 여학생 사진”
02. 여성해방 상징하는 3·1운동 공간
외신들도 주목한 소녀들의 항쟁 | 태화관서 시작된 천지개벽, 여성참정권 획득 | ▶최초의 여성들, 잊힌 여성들의 비극
03. 3·1정신 이어받아 탄생한 성신여대
1886년 추정되는 태화의 뿌리 ‘성경학교’ | 하나의 조상, 여러 갈래로 뻗은 여성교육 | 여자대학들의 설립과 전통, 학원분규 | ▶첫 번째 ‘근대 여성전문직’ 전도부인
04. 확장되는 역사, 보이지 않는 전쟁
역사 확장성 놓고 기억투쟁하는 대학들 | 성신여대의 잃어버린 15년 ‘태화’
2장 3·1독립정신의 장소성 계승한 ‘적자’
01. 선구여성의 일터, 여성운동의 요람
민족성지 태화관의 여성해방 상징성 | 구여성도 신여성으로, 교사가 되다 | 모자보건의 시작, 여의사·간호사·산파 | ▶여자성인교육 선도, 태화여자관
02. 한양 중심석 있던 북촌의 갑제
권문세가들의 갑제에서 순화궁터로 | 조선왕실의 명당에서 친일파 소유로
03. 3·1독립선언식 전후의 태화정
독립운동 건축가 재건축, 재개발로 사라져 | ▶한국 최초의 여성전용 도서관
04. 3·1정신 간직한 천도교 중앙총부
천도교기념관에서 개교한 성신 | 성신이 거쳤던 역사적 장소들 | 태화의 기독교정신과 성신의 건학이념
3장 서울여학생운동으로 발화한 성평등교육
01. 각성한 여학생들의 자발적 향학열
맹휴의 시대, 자주성 외친 여학생들 | 교육받은 여성의 임무, 농촌계몽운동 | ▶태화여학교 재학생들의 면면 | ▶학생들의 신망받은 장귀련 교사
02. 양성평등 여성교육·여권신장에 솔선
여선교사들의 페미니즘 사상과 한계
03. 태화여학교생 8명, 독립운동가 서훈
만세운동 태화여학교생 경·검 신문조서 | 6·10만세운동에 고초 겪은 태화여학교 | ▶광주학생운동 ‘여학도 투쟁기’ | ▶한 집안 이중포상의 문제
04. 태화 승계 성신의 혁신·여성연대
태화와 성신의 공통점과 차이점 | 여학교·여자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 ▶여자팀 감독은 여자선수 출신으로 | ▶성신여학교 출신의 성평등 공헌
4장 여성계에 기여한 태화·성신의 인물들
01. 한국 땅에 헌신한 여성 선교사들
한국 관련 소설과 저작 남긴 와그너 | 격동의 한국근현대사에 휘말린 여선교사
02. 가정법 개정 앞장선 여권운동가 이숙종
이숙종의 성장환경, 미술가로서의 면모 | 언론에 비친 이숙종의 페미니즘과 부일 | ▶서울시내 사립여학교 교장 모임, 구인회
03. ‘여권통문’ 발굴, 박용옥 성신여대 교수
한국여성의 자생적 근대화 조명 | 식민사학 벗어난 주체적 여성사관
04. 북유럽 설립 국립의료원간호대 승계
태화, NMC, 성신으로 이어진 간호 역사 | 4·19혁명 총상 학생들의 치료 거점 | ▶언론에 비친 간호대학
[나오면서] 한 세기라는 시간, 그리고 한 개인의 염원
저자소개
책속에서
필자의 전작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에서도 지적했듯이 집권당의 완고하고 견고한 ‘내로남불’ 권력욕에 균열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에 의한 ‘미투혁명’이었다. 이러한 여성의 힘을 잊고 있던 자칭 진보·좌파의 여성혐오는 곳곳에 드러났고, 결국 민심조차 떠나게 하는 원흉이 됐다. 태화관의 역사적 추이만 잘 살펴봐도 새롭게 ‘여성’이라는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지점은 많았다. 2010년대 들어 꾸준히 재발견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여성사적 흐름에만도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3·1운동100주년은 아주 새로운 계기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586세대의 청개구리식 방식에만 집중한 상상력의 한계는 일제잔재의 부활이라는 기괴한 기념행사를 만들어냈다. 지난 잔재의 철거도 당대 의식 속에서 국민적 합의를 거쳐 진행된 것인데 파괴와 재현을 반복하며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통합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진영논리에 갇힌 사고다.
- ‘여성해방 상징하는 3·1운동 공간’ 중에서
3·1운동이 가져온 가장 가시적 변화도 ‘여성’이라는 존재의 대두였다. … 여러 보도매체들에 남아있는 근대사의 증언만 봐도 역사가들에게 여성과 여성사가 얼마나 소외당하는지를 알 수 있다. 수개월간 지속된 만세운동 가운데 여성들에 의해 조직되고 주도된 평화적 행진이 많았고, 임시정부에서 여성참정권을 얻는 계기가 되지만 이에 대한 기억은 너무 쉽게 사라져버렸다. 임시정부의 적통을 계승하겠다면 한국여성의 활약상과 참정권 쟁취에 관한 부분을 반드시 한 몫으로 다뤄야할 것이다. 여성의 광범위한 독립운동은 임시정부의 여성정책에 큰 영향을 미쳐 남녀평등 방침이 제도화됐고, 여성과 여성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
- ‘외신들도 주목한 소녀들의 항쟁’ 중에서
‘남녀’가 아닌 여자를 앞에 둬 ‘여남’이라고 부른 것은 21세기 들어 탄생한 영영페미니스트(뉴페미)가 최초가 아니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1945년 조선부녀총동맹(총재 유영준, 부총재 정칠성·허하백)은 “봉건유제 타파해서 여남평등 이룩하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글로 남아있는 당대 여성운동가들의 주장은 여기서 일일이 다 거론하진 않겠지만,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관념 변화를 통한 남녀평등, 성과 정조의 분리 주장 등 현시대에도 진보적이라 할 만한 것들이다. 이들이 선택한 단발머리는 21세기 ‘페미니스트 숏컷 논란’처럼 여성억압에 대한 저항의 일환이었다. 여성해방론, 정조취미론, 자유연애론 등을 주장한 글을 발표해 파란을 일으켰던 나혜석은 한국최초로 ‘부모성함께쓰기’를 시도한 페미니스트라 하겠다. 1990년대 호주제에 반대한 여성운동가들이 양성쓰기를 실천하며 네 자 이름은 이 시기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표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나혜석은 김우영과 결혼 후 낳은 첫딸의 이름을 김나열이라고 짓는데, ‘김우영과 나혜석의 기쁨(悅)’이라는 뜻으로 붙였다.
- ‘최초의 여성들, 잊힌 여성들의 비극’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