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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고대사(선사시대~진한시대)
· ISBN : 9791171740642
· 쪽수 : 2816쪽
· 출판일 : 2026-02-27
책 소개
목차
축시 _ 김영수 선생의 《사마천사기성어대사전》출간을 축하하는 칠언율시
출간 인사말 _ 국력과 문화의 척도, 사전(辭典) -김형진(金亨珍)
축사
1. 축 《사마천사기성어대사전》 출판 -다이빙(戴兵)
2. 정신문화 보고(寶庫)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이석연(李石淵)
추천사
1. 정중하게 추천드립니다 -쉐인셩(薛引生)
2. 얻기 어려운 아름다운 작품 김영수 선생의 《司馬遷史記成語大辭典》을 읽고-짱잔민(張占民)
ㄱ
가거도사벽립(家居徒四壁立) ~ 기회지형(棄灰之刑)
ㄴ
낙극생비(樂極生悲) ~ 능행지자(能行之者), 미필능언(未必能言) ; 능언지자 (能言之者),
미필능행(未必能行)
ㄷ
다다익선(多多益善) ~ 등용문(登龍門)
ㅁ
마릉서수(馬陵書樹) ~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ㅂ
박랑사(博浪沙) ~ 빙청옥결(氷淸玉潔)
ㅅ
사구호보(射鉤呼父) ~ 십년생취(十年生聚), 십년교훈(十年敎訓)
ㅇ
아방궁(阿房宮) ~ 입표 (立表)
ㅈ
자긍공벌(自矜功伐) ~ 질현투능(嫉賢妬能)
ㅊ
찰능이수관자(察能而授官者), 성공지군야(成功之君也) ~ 칭문소이기지극대(稱文小而其指極大),
거유이이견필원(擧類.而見必遠)
ㅌ
탁몽용부열(托夢用傅說) ~ 투현질능(妬賢嫉能)
ㅍ
파고이위환(破.而爲.), 착조이위박(.雕而爲朴) ~ 필유비상지인(必有非常之人),
연후유비상 지사(然後有非常之事)
ㅎ
하견지만(何見之晩) ~ 희희양양(熙熙攘攘)
부록 1 _ 사마천의 삶과 3천 년 통사 《사기(史記)》)
사마천(司馬遷)의 생애와 연보
절대역사서 《사기(史記)》
《사기》 130권 목록과 개요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역대 논평
사마천을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사랑한 사람들
특별 부록_ 한성시, 사마천 사묘, 관련 유적
부록 2_ 《사기(史記)》를 읽고 쓰고 말하다(《사기》의 문장, 명구, 언어)
·《사기》의 문장 《사기》를 읽고 감상하다
1부. 강과 바다는자잘한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
·《사기》의 명구 《사기》를 쓰고 느끼다
2부.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기》의 언어 《사기》를 말하고 설득하다
3부. 술이 극에 이르면 난리가 나고, 쾌락이 극에 이르면 슬퍼진다
· 특별 참고자료 _ 사마천과 《사기》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들
참고문헌
편찬자의 말 _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의 언어(言語)
도움을 주신 분들
편찬자 김영수의 저·역서들
내용별 분류 _ 항목
내용별 분류 _ 성어
내용별 분류 _ 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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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가거도사벽립(家居徒四壁立)
네 벽만 있는 집에서 살다. - 권117 <사마상여열전>
가거도사벽립은 한나라 무제 때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8) 의 젊은 날 일화에서 나온 성어이다. 사마상여는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기원전 약 90)과 함께 ‘양사마(兩司馬)’로 불리는 한나라 최고의 문장가이다.
사마상여는 양 (梁)나라 효왕(孝王, ?~기원전 144)의 문객으로 있다가 그가 죽자 고향인 사천성 성도(成都)로 돌아와 하는 일 없이 날을 보내고 있었다. 성도 부근 임공(任邛)의 현령 왕길 (王吉)이 사마상여를 잘 보아 그를 잘 모셨다. 상여는 왕길을 귀찮아했지만 그럴수록 왕길은 사마상여를 더 깍듯이 대했다.
한번은 임공의 최고 부자인 탁왕손(卓王孫)과 정정 (程鄭) 두 사람이 큰 연회를 베풀어 왕길을 초대했다. 왕길이 사마상여에게 사람을 보내 초대했으나 상여는 사양했다. 왕길은 연회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직접 상여를 찾아갔고, 상여는 마지못해 연회에 참석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왕길은 상여에게 거문고 연주를 청했다. 상여는 극구 사양했지만 강권에 못 이겨 두 곡 정도를 연주했다.
사마상여의 언행은 차분하고 의젓했으며, 아름답고 품위가 있었다. 탁왕손에게는 젊어서 과부가 된 탁문군(卓文君)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이런 상여를 몰래 지켜보다가 그만 마음을 빼앗겼다. 상여 역시 현령과의 관계를 짐짓 과시하며 거문고 연주로 탁문군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고, 이렇게 공교롭게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다. 눈이 맞은 두 사람은 그날 밤으로 야반도주(夜半逃走)했다. 두 사람은 상여의 집으로 도망쳤는데, 문군이 보니 상여의 집은 네 벽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궁색했다. 문군은 자신의 수레 따위를 팔아 돈을 장만한 다음, 임공으로 가서 술집 한 채를 사서 우물을 파고 술장사를 시작했다. <사마상여열전>의 해당 대목은 다음과 같다. 참고로 원문을 함께 인용해둔다.
“문군은 밤에 사마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왔다. 상여는 바로 함께 성도로 달려 돌아왔다. 사는 집을 보니 네 벽만이 있을 뿐이었다.”
“문군야망분상여(文君夜亡奔相如), 상여내여치귀성도(相如乃與馳歸成都). 가거도사벽립(家居徒四壁立).”
‘가거도사벽립(家居徒四壁立)’은 ‘가도사벽(家徒四壁)’ 네 글자로 줄여서 많이 쓴다. 매우 빈궁하여 아무것도 없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인데, ‘가도입벽(家徒立壁)’이라고도 쓴다. ‘집이라곤 벽밖에 서 있지 않다’는 뜻이다. 청나라 때 문학가 심복(沈復, 1763~1832)의 소설 《부생육기 (浮生六記)》 <규방기락(閨房記樂)>에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김씨와 동생 극창 (克昌)이 ‘집이라곤 벽밖에 없는’ 곳에서 살았다”는 대목에 이 표현이 보인다. 이 성어는 후대의 문학 작품 등에 많은 영감을 주어 아주 다양한 파생어들이 나타났다.
비슷한 뜻을 가진 성어로는 ‘일빈여세(一貧如洗)’, ‘불명일전(不名一錢)’ 등이 있다. ‘일빈여세’는 ‘씻은 듯이 가난하다’는 뜻이고, ‘불명일전’ ‘한 푼이랄 것도 없다’, 즉 땡전 한 닢 없을 정 도로 가난하다는 뜻이다. 전자는 관한경(關漢卿)의 희곡 《두아원(竇娥寃)》이 그 출전이고, 후자는 《사기》 권 125 <영행열전(佞幸列傳)>이 그 출전이다.
* 키워드 : 애정, 가난, 청빈
▶가공송덕(歌功頌德)
공적과 덕행을 칭송하다. - 권4 <주본기>
누군가를 크게 칭송한다는 뜻의 가공송덕이 나오는 관련 대목을 먼저 인용한다.
“백성들은 모두 노래를 부르며, 그의 덕을 칭송하였다.”
“민개가락지(民皆歌樂之), 송기덕(頌其德).”
‘가공송덕’은 바로 위 대목을 네 글자로 줄인 성어이다. 관련 내용을 보면 이렇다.
중국 상고사의 세 왕조인 하(夏)·상(商, 또는 은 殷)·주(周)를 흔히 ‘삼대(三代)’라 부른다. 주의 선조 고공단보(古公亶父) 때 훈육(薰鬻)과 융적(戎狄)이 땅과 백성을 요구해 왔다. 백성들이 화가 나서 싸우자고 했지만 고공단보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이 군주를 세우는 것은 이익이 되기 때문이오. 지금 융적이 우리를 공격하는 까닭도 우리 땅과 백성 때문이오. 백성이 내게 있든 저들에게 있든 뭐가 다르겠소? 백성들이 나 때문에 싸우려는 것은 아비나 아들을 죽여 그들의 군주가 되는 것이니 나로서는 차마 못하겠소.”
고공단보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기산(岐山, 섬서성 기산현)으로 옮겼다. 그러자 기산 지역의 백성들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고공단보에게로 귀의해왔다. 백성들은 모두 노래를 부르며, 그의 덕을 칭송하였다. 기산은 훗날 주나라 건국의 기반이 되었다.
백성과 땅을 스스럼없이 내준 고공단보의 행동에 대해서는 당연히 다른 평가가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백성을 진정으로 아끼는 그의 마음만큼은 인정할 수 있다. 통 치자와 리더가 사리사욕 때문에 사람을 아끼지 않고 마구 부리고 소모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공송덕’과 비슷한 성어로 ‘비석을 세우고 전기를 마련하여’ 칭송한다는 ‘수비입전(樹碑立傳)’과 그 공적과 덕이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영수불후(永垂不朽)’가 있다. ‘수비입전’은 소설가 파금(巴金, 1904~2005)의 《수상록(隨想錄)》 47에, ‘영수불후’는 명나라 때의 판타지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 74회에 보인다. 반대되는 뜻의 성어로는 ‘입(말)으로 죽이고, 붓으로 친다’는 ‘구주필벌(口誅筆伐)’이 있다. 이 표현은 근대의 학자 양계초(梁啓超, 1873~1929)의 <반대복벽전(反對復辟電)>이란 글에 보인다.
참고로 고공단보는 주의 시조인 후직(后稷)의 12대손이고, 주 문왕(文王)의 할아버지다. 문왕의 아들 주 무왕(武王) 이 은(상)을 멸망시킨 해를 기원전 1046년으로 보고 있으므로 고공단보가 활동한 시기는 기원전 12세기로 추정할 수 있다.
* 키워드 : 통치, 백성, 애민, 공덕
▶가관(嘉觀)
눈앞의 아름다운 경관. - 권6 <진시황본기>
일상에서 ‘가관(可觀)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볼만하다’는 뜻이고, ‘아름답다’는 뜻도 들어 있다. 또 비교적 높은 수준이나 정도에 이른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 성과가 볼만하다’는 식이다. 우리의 경우 대개는 비꼬거나 비아냥거릴 때 자주 쓴다. 다분히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로 바뀐 셈이다. 중국어의 경우는 부정적이 거나 비아냥거리는 뉘앙스가 없다.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환경의 실생활에서 사용되면서 그 뜻이 변용된 경우라 할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가관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한 글자가 다르다. ‘가(嘉)’를 쓰기 때문이다. 뜻도 눈앞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아주 다르다. 이 단어는 <진시황본기>의 다 음 대목에서 나온다.
“따르던 신하들이 눈앞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황제의 빛나는 공업을 회상하 고 그 옛날 진나라의 모습을 떠올리며 칭송하였다.”
“종신가관(從臣嘉觀), 원념휴열(原念休烈), 추송본시(追誦本始).”
기원전 221년 천하통일 후 3년이 지난 진시황 29년인 기원전 218년, 시황은 동쪽으로 행차했다가 하남성 양무현(陽武縣) 박랑사(博浪沙)에서 장량(張良, ?~기원전 190)이고 용한 자객 창해역사(滄海力士)의 습격을 받았다. 창해역사가 수레를 잘못 고른 탓에 시황은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놀란 시황은 전국에 대대적인 수색과 수배령을 내렸다.
장량은 도망자 신분이 되어 각지를 떠돌다 유방(劉邦, 기원전 256~기원전 196)을 만나 그의 참모가 되었다.(‘박랑사’ 항목 참고)
시황은 동쪽 순시를 계속하여 지부산(之罘山)에 올라 자신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을 비석에 새겨 세우게 했다. 위 대목은 그 비문 내용의 첫 부분이다.
참고로 진시황은 생전에 모두 세 차례의 암살 위기를 넘겼다. 천하통일 이전에 자객 형가(荊軻, ?~ 기원전 227)와 형가의 친구인 악사 고점리(高漸離)의 암살 시도가 있었고, 통일 이후 장량이 고용한 창해역사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
* 키워드 : 통치, 공덕, 찬양은 이사가 썼다고 한다. 2003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