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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완용의 글씨가 궁금했다

나는 이완용의 글씨가 궁금했다

(근대 한국의 서화계와 붓글씨 이야기)

강민경 (지은이)
푸른역사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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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완용의 글씨가 궁금했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나는 이완용의 글씨가 궁금했다 (근대 한국의 서화계와 붓글씨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56123217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6-02-16

책 소개

매국노 이완용의 붓글씨를 통해 근대 서화계를 다시 묻는다. ‘명필 신화’의 허실과 독립문 편액 논쟁을 사료로 추적하고, 경성서화미술원과 조선미술전람회 등 근대 문화사의 흐름을 함께 조명한 연구서다.
‘죽일 놈’ 딱지를 떼고 ‘명필’ 신화를 넘어
이완용과 함께 근대 서화계를 거닐다

왜, 지금 이완용의 붓글씨인가

이완용이 매국노라는 데 토를 달 이는 없다. 그러니 그의 붓글씨를 두고 책 한 권을 저술한 것이 새삼스러울 수는 있겠다. 지은이 주변에서 “잘못하면 다쳐”라는 만류까지 나왔다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채봉채비采葑采菲 무이하체無以下體”라는 《시경》의 한 구절로 답한다. ‘무를 캐는 이유는 뿌리에만 있지 않다’는 뜻으로, 설사 땅속의 뿌리는 썩었을지라도 무청을 잘라 시래기를 만들면 훌륭한 찬거리가 되듯 뭐든 활용하기 나름이란 의미다. 당대 한국의 예술계의 흐름을 짚어보고, 서예가 어떤 문화적 의미를 띠었는지 살피는 데는 이완용이란 확대경이 나름 쓸모 있으리라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의도이다.

‘명필 신화’의 허실을 규명하다
일당 이완용은 당대에 명필로 소문났다. 글씨를 받기 위해 사방에서 보낸 비단과 종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어떤 일본인은 이완용의 작품 뒷면에 ‘토산土産(みやげ)’이라 적어 놓을 만큼 조선을 방문한 기념 선물로 여겨졌단다. 심지어 일본 다이쇼 천황이 그의 붓글씨를 보고 싶어 조선총독을 통해 이완용에게 글씨를 보내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런 평가에 회의적이다. “좀 썼다”에 그친 오세창의 평을 들면서 이완용이 즐겨 썼다는 〈평상심시도〉를 꼼꼼히 분석해 예쁘게 썼을지는 몰라도 절박함이나 독창성이 없다고 평한다. 대신 이완용의 위세에 비춰 그의 글씨를 갖거나 그의 글씨로 된 현판을 걸 수 있다는 건 당시 상당한 위세를 보증하는 징표이기도 했기에 자연스레 이완용 글씨가 좋더라는 평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독립문’ 편액 작성설을 파고 들다
역사 연구자로서 지은이의 진면목은 이완용이 ‘독립문’의 편액 獨立門을 썼다는 설을 파고드는 부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 이야기가 1924년 《동아일보》에 처음 실렸다고 전제하고 이완용이 독립협회 창립 발기인이자 위원장이었다는 점에서 나름 근거가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처조카가 쓴 전기 《일당기사》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에 독립운동가 김가진이 독립문 편액을 썼다는 이설異說에 대해서는 그의 며느리의 증언 등 정황 증거 외에는 직접 증거가 없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엄정한 자세를 취한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완용과 김가진이 각각 쓴 《천자문》에서 獨立門을 집자(集字)해 그 필획을 꼼꼼히 비교 분석한다. 그런 후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으면서 ‘그래픽체 설’이란 제3의 가능성까지 소개한다.

서화계에 드리운 ‘그늘’을 아울러 살피다
책은 이완용의 붓글씨를 살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미술인 단체라고 할 수 있는 경성서화미술원, 서화미술회, 서화협회의 창설에 깊이 간여했고, 회장과 고문을 맡는 등 근대 서화계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했음도 상세히 서술한다. 그가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1922년 처음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의 서부書部 심사에 무려 4회나 참여했다든가 이당 김은호, 이병도 박사의 형 이병희 등이 이완용에게 글씨를 배웠다는 사실이 그런 예이다. 뿐만 아니다. 그의 제안으로 1909년 창경궁에 제실박물관이 설립되었고, 삼팔경매소란 곳에서 1906년부터 고려청자 위주로 경매가 열렸다든가 갤러리의 원형이라 할 김규진의 ‘고금서화관’이 1913년 문을 연 사실 등 당대 문화계의 흐름이나 이모저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역사서의 품위와 교양서의 재미
책은 비록 지은이의 개인적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역사서로서의 품위를 갖췄다. 이완용의 둘째 아들이 엮은 이완용의 친필 일기 《일당선고일기》, 이완용이 소장했던 도록 《상미자료》 등 귀한 자료는 물론 이완용이 일본군에 보내는 위문대를 제작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매일신보》 등 언론까지 활용한 덕분이다. 여기 더해 이완용이 1925년 조선인 부자 순위 2위에 이르는 부호였음에도 자기 재산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교육비 납세를 거부했던 ‘현금왕’이었다든가 죽기 일곱 달 전에도 독립군 3대 맹장으로 꼽히던 오동진을 회유하려 했다는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여럿 실렸다. 이완용에게 명필이란 평판이 어떻게 붙여지고 확대 재생산되는지,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거기 더해 다양한 사료를 토대로 밝혀낸 근대 예술계의 여러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만날 수 있다는 돋보이는 책이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기 전에: 매국노 일당 씨의 하루

1. 이완용은 과연 명필이라서 ‘명필’인가
⚫ 역적이자 명필, 일당 이완용
⚫ 친일파이자 매국노, 지울 수 없고 지워서도 안 될 낙인이지만
⚫ 이완용 명필론의 허와 실
⚫ 그때 그 시절의‘ 붓글씨’란
⚫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 일본 승려 하쿠인 에가쿠
⚫ 서書 테크니션
【칼럼 ① | 그는 이런 도장을 찍었다】

2. 독립문獨立門 편액, 과연 누구 솜씨인가
⚫ 독립문에 자유종이 걸리기까지
⚫ “ 이완용이가 쓴 것이랍니다”
⚫ 또 하나의 후보, 김가진
⚫ 제3의 가능성은 없을까
⚫ 독립문, 독립문 그리고 독립문
【칼럼 ② | 안중근 글씨와 이완용 글씨를 견주어 보면】

3. 서여기인書如其人은 틀리지 않았다
⚫ 안진경 글씨를 따랐지만
⚫ 조선미술전람회 서부書部 심사위원
⚫ 그의 글씨를 본받은 사람들
⚫ 작품으로 쓸 문구를 미리 써 두다
⚫ 신문에 실린 이완용 휘호
【칼럼 ③ | 그 글씨와 그림 얼마면 됩니까】

4. 일기 속 이완용의 서화書畫 인연
⚫ 대한제국 내각 용지에 쓴 이완용 일기
⚫ 일본에서 온 시문 요청
⚫ 그림 구경하러 다닌 매국노들
⚫ 덕수궁에서 열린 서화회 풍경
⚫ 베이징의 김태석
⚫ 경성의 도쿠토미 소호
【칼럼 ④ | 사람을 가려 사귀지 않았던 근대 지식인】

5. 근대가 새롭게 보급한 전前근대
⚫ 이완용의 서재에 있던 《상미자료》
⚫ 도록의 등장과 보급
⚫ 시골 선비의 책상에 놓인 왕희지 친필
⚫ 스스로 법첩을 만든 김규진
⚫ 고금서화古今書畫는 박물관과 전람회에서
⚫ 화랑 그리고 경매장
⚫ 서점 한쪽에 고서화를 쌓아 두고
【칼럼 ⑤ | 이완용 후작의 거실 풍경】

나오며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소개

강민경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나오고, 같은 학교 사학과에서 박사 과정(고려시대사 전공)을 수료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정본화사업팀 연구보조원을 거쳐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 역사부에서, 2022년부터 2025년까지는 국립제주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했다. 2026년부터 국립 중앙박물관 미래전략담당관실에서 일하고 있다. 첫 책인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2024) 외에도 〈고려시대의 신라 출자의식과 그 사회적 성격〉(2019), 〈金澤榮의 1909년 歸國과 安中植 筆 〈碧樹居士亭圖〉〉(2021), 〈〈채인범 묘지명〉의 복원과 그 의의〉(2022), 〈〈활자 주조를 감독한 신하 명단을 새긴 현판[鑄字監董諸臣題名錄 懸板]〉의 역사적 가치-장영실을 비롯한 조선 초기 인물의 인적 사항을 중심으로〉(2023) 등 몇 편의 논문을 썼으며, 학부 시절 《그림으로 읽는 고려도경》(2013)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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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에 살던 가난한 선비 이호석李鎬奭(1822~187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완용. 만약 당대의 세도가이자 흥선대원군(1820~1898)의 사돈이었던 이호준李鎬俊(1821~1901)의 양자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잔반殘班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에 올라온 그는…과거에 급제하고,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익힌 뒤 참찬관과 대리공사로 미국에 다녀왔으며, 독립협회 창립과 춘생문 사건, 아관파천 같은 굵직한 사건의 주역이 되어 끝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다.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에 살던 가난한 선비 이호석李鎬奭(1822~1876)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완용. 만약 당대의 세도가이자 흥선대원군(1820~1898)의 사돈이었던 이호준李鎬俊(1821~1901)의 양자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잔반殘班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에 올라온 그는…과거에 급제하고,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익힌 뒤 참찬관과 대리공사로 미국에 다녀왔으며, 독립협회 창립과 춘생문 사건, 아관파천 같은 굵직한 사건의 주역이 되어 끝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다.


글씨를 받기 위해 사방에서 보낸 비단과 종이가 산더미처럼 쌓일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일본 다이쇼 덴노大正天皇(재위 1912~1925)가 그의 붓글씨 솜씨를 보고 싶어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를 통해 이완용에게 글씨를 보내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이완용의 글씨를 가지거나 그의 글씨로 된 현판을 걸 수 있었다는 건 당시 상당한 위세를 보증하는 징표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완용 글씨가 좋더라는 평이 생긴 게 아닐까. 물론 이는 일본인과 친일적 지식인의 세평이었겠지만, 그러한 인기가 도리어 이완용이 명필이라는 신화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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