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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91157956661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2-11-0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1장 여주의 인문 지리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인 여주
4대강 사업으로 국가 예산 1조 901억 원이 투입된 여주
[참고] 4대강 사업 여주군 관련 일화
118년 만에 군에서 시로 승격한 여주
[참고] 여주시 승격 추진 주요 일지
[참고] 여주시 승격 관련 일화
36년 만에 제 생일을 찾은 여주 시민의 날
100년 만에 돌아온 고달사지 원종대사혜진탑 비
[참고] 원종대사혜진탑 비 비신의 귀환 일화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 역적이 많았으나 읍호가 강등되지 않았던 여주
감세 혜택 폐지와 세금 과징에 일어난 여주 농민항쟁
여주 시내를 배를 타고 다녔던 1972년 대홍수
여주 시내 가옥 1,000여 호를 불태운 1856년 대화재
수학여행 온 49명이 익사한 조포나루의 나룻배 침몰 사고
승객 30명 중 26명이 사망한 섬강교 버스 추락 사고
제2장 여주 관련 인물
남북한 첫 축구대회를 열고 여주대학교를 설립한 정동성
대하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분야를 개척한 유주현
퍼펙트 골드란 용어를 탄생시킨 올림픽 명궁 김경욱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10년간 역임한 조성환
부인, 딸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김구의 최측근 엄항섭
3.1운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홍병기
여주 3.1운동을 시작한 조병하와 뒤이은 독립운동가들
병자호란 시 김화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홍명구
임진왜란 시 고래산 전투에서 순절한 열녀 청풍김씨
강물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려다 함께 죽은 효자 길수익
장희빈 때문에 폐, 서인 되었다가 복위된 인현왕후
안동김씨 60년 세도정치를 연 순원왕후
소현세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해 공주가 되지 못한 경순군주
실학의 선구자로 우리나라 최초 역사 지리서를 쓴 한백겸
왕후의 청탁을 거절한 북벌 추진 훈련대장 이완
당쟁으로 아버지부터 손자까지 4대가 죽임을 당한 김창집
우리나라 최초 외국인 신부 주문모를 입국시킨 윤유일
한국화의 대가로 월전미술관을 세운 장우성
헌종 앞에서 소리를 한 판소리 명창 염계달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가 장원급제한 민진장
법 위반을 처벌하면서도 정리와 의리를 지킨 민진후
살인 강도범이 역모 죄인으로 조작되어 처형된 강변칠우
5.16 군사 정변 이후 정치범으로 사형당한 임화수
부록 1. 4대강 살리기 사업 관련 자료
필자의 조선일보 독자 투고란 기고 기사(조선일보 2010.6.22.)
4대강 사업 관련 사진
부록 2. 여주시 승격 관련 신문 기사
이범관 전 국회의원의 기고(경인일보, 2012.7.17.)
백연택 여주시승격특별추진위원회위원장 관련 기사(중부일보, 2012.7.24.)
이인순 여주 시승격특별추진위원회 부위원장 기고(여주신문, 2012.7.13.)
노성형 전 육군대학 육군종합군수학교 교수 기고(여주시민신문, 2012.6.20.)
임영헌 여주군 인재육성장학재단 이사장 기고(경기일보, 2012.6.11.)
방광업 전 경기도시공사 경영관리본부장 기고(경기일보, 2013.9.23.)
정용진 전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기고(여주신문, 2013.9.9.)
여주시 승격 신문 기사(조선일보, 2013.9.23.)
여주시 승격 신문 기사(중부일보, 2013.9.23.)
부록 3. 여주 3.1운동 관련 자료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여주는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가 신라 진흥왕 11년(550)에는 신라 영토가 되었다.
진흥왕 17년(556)에는 여주에 군사기지로 골내근정(骨乃斤停)을 설치하였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구주오소경(九州五小京)으로 개편할 때에도 골내근정을 한산주(漢山州)에 속한 군사기지로 유지하였다.
이 골내근정은 북성산(北城山)의 신지리성지(新池里城址)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여주는 임진왜란 때 여러 번 등장한다.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의 조선군과 싸웠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은 여주와 양근(양평), 용진(양평 양수리)을 거쳐 동대문을 통하여 한양으로 입성하였다.
-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인 여주’ 중에서
9월 13일 경기도 의회에서 “여주시 설치(안)”을 찬성 의견으로 의결하고 경기도는 동 건의서를 행정안전부에 제출하였다.
행정안전부의 여주시 설치(안) 업무 담당자들은 여주 시민들의 시 설치 찬성 비율(61.1%)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 연말에 있을 제18대 대통령 선거(12.19)와 그 이후 정권 교체기인 점 등을 고려해서인지 시 승격을 위한 후속 조치에 소극적이었다.
그래도 주위에서 여주시 승격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있어 시 승격은 예정대로 추진될 수 있었다.
행정안전부에서 여주시 설치 요건 현지실사(3회), 여주시 설치 법률(안)의 입법 예고(2013.1.16~2.25,), 국무회의 의결(2013.3.26) 등을 거친 후 동 법률(안)은 국회에 송부되어 국회 본회의 의결(5.7)을 거쳤다.
2013년 6월 4일 공포된 “경기도 여주시 도농 복합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제 11,850호)” 부칙(제1조)에 따라 9월 23일 여주시가 출범하였다.
- ‘118년 만에 군에서 시로 승격한 여주’ 중에서
1457년(세조 3년)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단종복위 역모 사건으로 경상도 순흥 도호부가 폐지되고 그 영역은 인근의 군현으로 분산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무신년(戊申年)인 1728년(영조 4년)에 이인좌, 박필현, 심유현 등 소론 강경파와 남인 정희량 등이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경종(1720~1724)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련되어 있다며 영조를 제거하고 소현세자의 증손자 밀풍군 이탄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였다.
이 난(亂)은 무신년에 일어나 무신난(戊申亂) 또는 반란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李麟佐)의 난”이라고도 한다.
-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 역적이 많았으나 읍호가 강등되지 않았던 여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