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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8963996
· 쪽수 : 208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마당 넓은 집
마지막 여행 13 그리운 외가 17 하수내 마을 22 항아리 26 보리 한 가마 30 흰 옷 33 마당 넓은 집 37 우물 41 소명(召命) 44 상경 48
제2부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서울 55 연애편지 59 노을 속으로 63 다시 서울로 68 방언 72 잘못된 사랑 77 수도원 81 회개 86 신학교 91 염습(殮襲) 95
제3부 아버지 그늘
대수술 103 부녀상담소 108 아버지 그늘 112 서대문 교도소 118 결혼 122 양평교회 129 공도교회 135 임신 139 첫아이 143 헌 물 146 보수공사 152
제4부 셋이 타는 자전거
신월동교회 159 둘째 아이 163 시아주버니 166 은광교회 171 셋이 타는 자전거 175 두 집사 180 여성의 전화 184 친정아버지 187 시누 191 아들의 사춘기 97 배움의 길 202
책속에서
항아리에 물이 찰랑찰랑하게 다 채워지면 물지게를 지고 노인의 움막으로 갔다. 노인이 좋아서 함빡 웃는 모습을 보려고 매일 물을 지고 가서 독에 부었다. 어린 마음에도 온종일 적적했을 노인을 웃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가와 담 사이를 두고 사는 노인은 두 아들이 6·25 전쟁 때 전사하고, 며느리도 친정으로 가버려서 혼자 살고 있었다. 노인은 설거지를 끝내고 학교로 뛰어가는 나를 불러 꼬투리째 삶은 콩을 손에 놓아 주었다. 그렇게 노인은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무엇인가를 내게 주는 재미로 사셨다. 훗날 내가 서울로 올라갔을 때 노인이 세상 뜨시기 전 나를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개월이 지난 늦봄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공부를 계속할 수 없다는 생각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집에서 먼 논에서 일하고 마을 쪽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마을 입구에 서 있던 이모가 형부한테서 편지가 왔다고 내주었다. 외가에 맡겨두고 연락이 없는 아버지에게 공부를 계속하고 싶으니 데려가 중학교에 보내 달라고 편지를 보냈었다. 그 편지는 시청에 근무하는 큰아버지를 통해 아버지에게 보내졌고 답장이 온 것이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셔서 답장이 온 것이라고 믿었다. “네가 쓴 편지를 보고 울었다. 네 말대로 이제 다 모여서 오순도순 살아보자.”
결혼식 시간이 다 되어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교회에서 식을 올리니 조금 기다리기로 했지만, 미리 와서 기다리는 분들께 미안했다. 늦게 도착한 아버지는 양복 차림이 아니었다. 외삼촌을 불러 식장에 데리고 들어가 달라고 했다. 딸 결혼식에 아버지를 그렇게 해서 보낸 새엄마가 야속하게 생각되었다. 자식이 결혼하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면서 식장에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 신혼여행을 떠나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손에 흰 봉투를 건네주며 잘 갔다 오라고 하였다. 그렇게라도 해주려고 하는 아버지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왔다. 나는 그와 눈 쌓인 유성 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