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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세계문학론 > 중국문학론
· ISBN : 9791159059889
· 쪽수 : 483쪽
· 출판일 : 2025-06-15
책 소개
목차
역자 서문
들어가며
제1장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경세치용(經世致用)
“학문은 경세치용이 아니라 실사구시이다”
“자세히 살피는 것”과 “감정을 자아내는 것”
리(理)와 기(器), 진(眞)과 속(俗)
제2장 관학(官學)과 사학(私學)
배움을 권하는 것과 학문으로 은둔하는 것
학문은 민간에 있다는 믿음
서원 강학의 매력
학문의 병폐를 바로잡는 것과 국학을 보존하는 것
제3장 학술과 정치
정치 참여와 회향(廻向)
보국(保國)을 할 것이냐 저술을 할 것이냐
강학과 의정(議政) 활동의 병행
제4장 전문가와 박학가
오래된 명제의 현대적 해석
“박학다식한” 전문가
‘박학한 사람’과 ‘국민의 스승’
‘길을 여는 도끼’에서 ‘자수바늘’로
제5장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문학사 연구
‘대담한 가설’에서 ‘신중한 입증’으로
복선적 문학 관념
역사연진법(歷史演進法)
『홍루몽(紅樓夢)』 자전설(自傳說)
국고(國故) 정리 사조
제6장 경학과 제자학 연구 방법에 대한 논쟁
연구 방법의 근본문제
『장자莊子』에 대한 도전
청대 유학자의 성과와 한계
대진戴震에 대한 장타이옌과 후스의 관점
한학漢學에 대한 숭상과 초월
서구 학술로 중국문화를 재단할 것인가?
제7장 만청 시기 지사(志士)의 유협(遊俠) 심리
“법망 밖에서 소요하는” 유협
‘중국의 무사도武士道’
유혈流血에 대한 숭배
암살 풍조의 고취
비밀결사와의 연합전략
대전통과 소전통의 소통
부록
참고문헌
현대 중국 인명 정리
서명과 편명의 번역어 정리
책속에서
‘현대 학술의 건립’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본서가 다루고 있는 시기는 훨씬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연구 시기를 청말 민초, 즉 캉유웨이, 량치차오를 대표로 하는 유신파 인사들이 무술변법을 시행한 1898년부터 중국국민당 주도의 국민정부가 세워지기 바로 전 해인 1927년까지로 한정했다. 그러므로 이 책이 가리키는 것은 ‘현대 학술’이지만 주목한 시기는 그 전인 청말 민초이며, 귀결은 ‘건립’이지만 실제로는 건립 과정에서 파괴되거나 부정된 것들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그 가치들을 확인하고 있다. 캉유웨이와 량치차오를 대표로 하는 금문경학가들과 장타이옌을 대표로 하는 고문경학가는 학술적으로는 반대입장이었지만 정치적 견해가 일치했기 때문에 협력했다. 장타이옌과 후스는 전통 학문과 서구 학문의 대표 주자였지만 현대 학술을 확립하고 국고를 정리하는 문제에서 공유하는 점이 있었고 영향관계도 있었다. 이들의 대립과 협력, 소통과 계승이 함께 작용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학술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 「역자 서문」 중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중국 현대 학술의 건립이므로 범위는 매우 크지만 논의의 착안점은 매우 작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장타이옌과 후스의 문화적 이상과 학술 사유, 연구 방법과 만청 및 5·4 시기 학인의 문화 심리를 논의하는 정도일 것이다. 관례상으로는 먼저 확정된 이론의 틀을 마련한 뒤 각 장절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를 전개해야 할 것이나 이 책은 “먼저 틀을 정한 뒤 글을 써내려 가지” 않았으며 큰 줄기를 이루는 아이디어는 대부분 “나중에 확정한” 것이다. 구체적인 문제를 깊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점차 논지를 확정하고 적절한 표현방식을 찾아나갔다. 요컨대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완전무결한 ‘이론 체계’가 아니라 모색을 거듭하며 이견이 나올 수 있는 ‘탐색과정’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장타이옌이 정치를 학술보다 더 중시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와 캉유웨이 문하 제자들의 미묘한 관계에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장타이옌이 학술을 논할 때에는 캉유웨이와 큰 차이가 있었지만 변법 유신 기간에는 그와 잠시 협력했고 변법이 실패한 뒤에도 그를 두둔하는 글을 많이 썼다. 당시 사람들이 여기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장타이옌은 이렇게 설명했다. “경서 구절의 시비를 논하는 것이 반드시 정치적 실천과 같을 수는 없다.” 이 말은 경서의 시비는 논쟁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마음 씀씀이의 옳고 그름은 논변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