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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59922596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대리전
사춘기여, 안녕
미래관리부
수련의 아이들
평형추
각자의 시간 속에서
두 번째 유모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실은 끔찍했어. 사방이 피투성이였고 바닥엔 시체들이 뒹굴고 있었어. 시체들은 모두 두개골 뒤가 부서져 있었고 마치 커다란 짐승의 손톱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척추에 긴 상처 자국이 나 있었어. 몇몇 사람들은 눈도 뜯겨져 나가고 없었어. 난 얼어붙은 듯 문가에서 서서 시체들을 세어봤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부천에 거주하며 외계인들을 관리하는 에이전트들은 나까지 포함해서 여덟이야. 그런데 그중 여섯 명이 시체가 되어 쌓여 있었던 거야.
_ <대리전>
“4월 중순이었는데, 갑자기 날씨가 여름처럼 더워져서 산책 나갔다가 입고 있었던 코트를 벗어야 했지요. 사촌언니랑 동네 할인점에서 장을 보고 나오려는데,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어요. 청각장애를 가졌다고 제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던 건 아니에요. 늘 작고 둔탁하고 흐릿한 진동이 이명 속에 섞여 울렸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절대적이고 완벽한 침묵이었지요. 어리둥절해서 사촌언니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그 소리가 들렸어요.
생각해보면 그건 소리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소리의 흉내를 낸 무언가 다른 것이었겠죠. 그렇지 않다면 제가 그 말을 그렇게 잘 알아들었을 리가 없거든요. 사람들의 말소리가 무엇인지 거의 모르고 지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 전 그 소리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뇌의 일부분이 갑자기 반짝거리면서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뭐라고 그랬는데요?”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체험은 또렷했지만 그걸 기억하는 건 또 다른 문제 아니겠어요? 첫 부분은 기억나요. ‘조상들이여, 우리는 미래에서 온 후손들입니다.’ 그리고 한참 연설이 이어진 뒤에 이렇게 끝났죠. ‘더 이상 당신들은 역사의 무게를 짊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가 이미 이루었습니다.’”
_ <미래관리부>
김지나는 지난 하루 동안 이 아파트의 주인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LK생물공학연구소의 정신 나간 연구원들이 실험하고 있던 액체가 쏟아졌다. 그 액체를 마시고 흡입한 그녀는 한동안 멀쩡해보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남편을 살해했고, 그날 밤 철통같은 보안망을 뚫고 연구실로 들어가 BC-2098라는 별 의미 없는 번호가 붙어 있는 샘플과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를 모두 파괴한 뒤 연구실에 불을 지르고 귀신처럼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그 액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몰라요.”
LK생물공학연구소의 소장이라는 작자는 무책임하게 내뱉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원래 모르는 게 정상이지요. 도킨스 탱크라는 건 그런 걸 만들라고 있는 거니까.”
“그 도킨스 탱크라는 건 도대체 뭐죠?”
김지나가 물었다.
“무작위적으로 진화압을 주는 기계입니다. 안에 미생물을 넣고 극단의 환경을 조성해줍니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은 놈들에게는 다른 극단의 환경을 주어 또 괴롭히는 겁니다. 계속 이러다보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놈들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지요.”
“그런 연구를 하고 계셨나요?”
“아뇨. 그건 연구원들의 취미 생활이지요. 일종의 재활용 연구라고 할까. 진짜 거기에서 뭔가 대단한 게 나올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까지는요.”
“사실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그건 그냥 더러운 구정물이란 말입니다. 그것도 소독된 구정물요. 길거리 매점에서 파는 어묵 국물이 더 위험하죠.”
_ <수련의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