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9922725
· 쪽수 : 228쪽
책 소개
목차
당신을 위한 빨강
살아남은 것에 경의를
1부 만지고 싶어 죽겠다는 말
오래 두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의 목록
한 방에 찰칵, ‘보는 것’은 ‘얻어맞는 것’이다
그림번역 ◆ 나의 탄생
그림번역 ◆ 상처 입은 사슴
외로움은 은종이 매달린 창가 앞을 걸어가는 거지다
만지고 싶어 죽겠다는 말
목이 가늘어진 사람들
그림번역 ◆ 부러진 척추
여름 책상
2부 우리들의 실패
실연한 사람들
편지 1
편지 2
편지 3
그림번역 ◆ 디에고와 나
3부 그땐 억울했고 지금은 화가 난다
미술 선생님들은 왜 항상 내게 화를 냈을까
나이의 비밀
파뿌리 생각
그땐 억울했고 지금은 화가 난다
그림번역 ◆ 두 명의 프리다
넘겨짚기의 달인들
여름의 끝
그림번역 ◆ 물이 나에게 준 것
감히 내가, 말입니다
4부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
그 심장 속에 갇혀 나도 점점 무거워진다
지독하다는 것
당신의 아름다움
그림번역 ◆ 단도로 몇 번 찌른 것뿐
배신
그림번역 ◆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자화상
질투
사랑보다 위에 있는 것
행복한 외출, 죽음
이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림번역 ◆ 가슴에 디에고의 초상과 눈썹 사이에 마리아가 있는 자화상
그림번역 ◆ 버스에서
참고한 책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랑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인생이 어떤 원리로 흘러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봄나무에 꽃망울이 맺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늙은 개의 입에선 비린내가 나고 눈곱이 많이 생기는 새끼의 건강은 좋지 못하다는 것을 ‘그냥’ 아는 것처럼, 받아들일 뿐이다. 살아 있는 것은 왜 늙는지, 왜 죽음을 피할 수 없는지 답을 알 수 없다. 그저 늙은 동물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처럼 동물도, 늙으면 휜다, 모든 면에서. 익은 모과에선 향이 나고 오래된 모과는 기어코 썩는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아는 것. 어떤 사랑은 죽지 못한다.
첫눈에 반하는 일은 처음 만나는 존재에게 한 방 ‘얻어맞는 것’과 같다. 당신이라는 이미지에 내 온 존재를 얻어맞고, 낯선 이미지에 ‘감염’되어 본래의 내가 흐려지거나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때문에 사랑에 빠진 자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전과 달라진 자다. 당신이 눈앞에 보이면 언제라도 ‘변질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려 세포 하나하나가 준비하고 있는 자, 존재의 근육이 유연해진 사람이다. 사랑이 침입했을 때 즉시, 온몸에 당신이 전이되어 ‘타자로 감염된 존재’가 되는 사람. 그래서 사랑에 빠진 자는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기 쉽다.
외로움은 충일함의 반대편에 서 있는 행려병자다. 크리스마스 은종이 매달린 창가 앞을 걸어가는 거지다. 코끝이 빨간 아이가 뛰어노는 마당, 구석에 숨어 있는 늙은 쥐다. 죽을지 살지 알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얼굴이 퍽퍽해지는 거다. 외로움은 눈 속에서 늙는 일이다. 한 오백 년. 휘발되는 사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연인이다. 큰 집에 사는 거다. 갈 방이 많은 것. 또는 없는 것. 당신과 층위를 달리해 자고 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