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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59923180
· 쪽수 : 212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지난 한 주 동안, 이 도시가 변해가는 모습을 내가 사는 아파트의 창문을 통해 내 눈으로 지켜봤다. 낮 시간인데도 8번 애비뉴가 텅텅 비어서, 몇몇 커플이 14번 스트리트에서 센트럴파크 남단에 이르기까지?오십 블록이 넘는 길을?손을 잡고 길 한복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차들만 다니던 길을 스케이트보드와 자전거를 탄 이들이 달려갔다.
어떤 면에서는 꿈결 같고 사랑스러운 풍경이다. 하지만 그때 얼굴을 덮고 있는 수술용 마스크들, 사람들이 유지하고 있는 간격이 눈에 들어오고, 나는 고개를 돌려야만 한다. 이건 그냥 옳지 않다. 그냥 옳지 않다. 나는 드러눕는다.
사진이 변화의 급박함을 기록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아는 사실인데, 또 한 가지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내가 여태 해온 거리 사진이 앞으로는 절대 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진지하게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뉴욕으로 옮긴 직후부터였다. (…)
뉴욕의 밤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지난 12월 말 사진으로 찍었던, 차량들로 꽉꽉 메워진 저녁 여섯 시 무렵 8번 애비뉴의 전형적인 모습, 그 빨간 불의 바다?나는 언젠가 이 풍경을 “맨해튼 거리의 타는 듯한 붉은 은하수”라고 묘사했던 적이 있다?는 이제 그 자리에 있지 않다. 지금 내가 창문으로 내다보는 8번 애비뉴의 모습은 별빛을 꺼버린 하늘 같다.
제시로부터 온 문자.
“안녕.”
“안녕.”
“당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인 것 같아.”
“아냐. 안 잃어버렸어. 난 여기 있어.” 내가 말한다.
우린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부두에서 만나기로 한다. 우린 어떤 규칙도 어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걷고, 운동하고, 공공장소 에서 만나는 건 허가된 일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한.
기다리고 기다린다. 마침내 그가 블록 저쪽 끄트머리에서 후디에 코트를 걸쳐 입고 발을 끄는 듯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정말 춥고 바람이 부는 날이다. 사랑스럽다.
자동반사적으로 제시가 날 안으려 몸을 숙이고?제시는 나보다 적어도 15센티미터는 더 크다?나 역시 그를 안고 싶지만?그를 좀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부드럽게 밀어낸다. “아니, 아니, 안 돼. 안는 건 안 돼. 잊지 마. 키스도 안 되고. 아직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죄책감이 들고, 슬프고, 잔인한 것 같고, 예민하고, 바보 같고, 늙은이 같은 느낌이 든다. 그보다 서른세 살 더.
제시는 미소를 지으며 몇 걸음 물러서고, 우리는 부두의 끝까지 걸어가면서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무언가를?누군가를?너무나 가까이에 두고 싶은데, 그리고 정말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기회가 다시 올지 알 수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