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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91160271515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8-12-2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빠가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대번에 병원이라는 걸 알았지만 받을 용기가 없었다. 뭐하러? 무슨 말을 들을지 아는데. ‘아버님께서 오늘 아침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님은 떠나셨어요. 고통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고아다. 마흔다섯 살짜리 고아는 정말이지 불쌍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상에 피붙이가 아무도 없으니 고아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마흔다섯 살이나 먹은 나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이를테면 자식을 갖기에도, 한 남자를 갖기에도 기한이 지났으니까.
“정직하게 말할까요? 크게 도와줄 건 없어요.”
“좋습니다, 그럼 여길 왜 왔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사실 자살할 동기는 많지만……. 내가 온 건, 그러니까…….”
“확신을 갖기 위해서?”
“네, 바로 그거예요.”
심리치료사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잡담을 하고 있다는 듯. 무슨 얘기든 잠자코 들어주기 위해 심리치료사들이 어떤 특수 훈련을 받는진 모르겠지만 나의 심리치료사는 아주 프로인 것 같다. 내가 진짜 미쳤나. 이 남자를 쳐다보면서 나에게 필요한 건 심리치료가 아니라 한 방의 허리 힘이라고 생각한다. 먼지를 털 듯 모든 걸 날려버릴 정도로 아주 강력한 허리 힘.
“부모님은 늘 말했어요. 우수한 성적과 좋은 직업이 중요하다고. 행복한 거, 즐기는 거, 친구를 사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어요. 내 부모님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행복한 아이였는지, 나에게 행복한 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이제 부모님은 안 계시잖아요.”
상담료에 포옹이 포함되지 않은 게 유감이다. 이 남자의 근육 질 품에 꽉 안기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지도록.
“네, 그래서 나는 길을 잃었어요. 마흔다섯 살의 노처녀가 슈퍼마켓에서 미아가 된 것 같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