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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관련 프랑스외무부 자료 5

한국전쟁 관련 프랑스외무부 자료 5

(1952.07.01 ~ 1952.12.31)

이지순, 박규현, 김영 (옮긴이)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4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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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관련 프랑스외무부 자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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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한국전쟁 관련 프랑스외무부 자료 5 (1952.07.01 ~ 1952.12.31)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 ISBN : 9791160684544
· 쪽수 : 486쪽
· 출판일 : 2021-02-22

책 소개

한국전쟁은 냉전문제에 관련된 대표적인 전쟁이다. 또 한편으로는 탈냉전의 문제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복합적 국제관계 상황에서 프랑스 자료들은 향후 한국전쟁을 비롯한 냉전과 탈냉전 연구에서 무척 중요하다.

목차

해제

1952년 7월 1일~12월 31일

【1】 신화통신의 미국 ‘도발’ 언급(1952.7.1)
【2】 이승만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1952.7.1)
【3】 외국대표단 통역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심(1952.7.1)
【4】 프·미·영 3국의 한국정책 협조(1952.7.1)
【5】 파니카 전 주중 인도대사와의 대담(1952.7.2)
【6】 네루 인도총리의 한국전쟁포로문제 타협 추구(1952.7.2)
【7】 안전보장이사회 회의(1952.7.2)
【8】 압록강 발전소 폭격(1952.7.3)
【9】 중공-북한군을 위한 중국 공산당 캠페인(1952.7.3)
【10】 영국 정부의 한국 상황 보고(1952.7.3)
【11】 안전보장이사회 회의(1952.7.3)
【12】 휴전협상 진행 상황(1952.7.3)
【13】 이승만 대통령의 국회 메시지(1952.7.3)
【14】 압록강 폭격에 대한 영국 노동당의 비난 및 미 여론(1952.7.3)
【15】 남일 장군의 서한 내용에 대한 언론의 보도(1952.7.4)
【16】 세계평화평의회의 다섯 가지 목표(1952.7.4)
【17】 유엔위원단의 비공식 회의(1952.7.4)
【18】 압록강 발전소 폭격과 국무회의 보고(1952.7.4)
【19】 휴전협상의 공산 측 제안(1952.7.5)
【20】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의 정치파동(1952.7.6)
【21】 압록강 폭격(1952.7.7)
【22】 이승만 대통령과 국회파동(1952.7.9)
【23】 휴전협정 진행에 대한 공산 측의 보도(1952.7.10)
【24】 국무회의 휴전협상 보고(1952.7.11)
【25】 휴전협정 진행에 대한 공산 측의 보도(1952.7.12)
【26】 평양 및 북의 주요기지 폭격(1952.7.14)
【27】 국무회의 휴전협상 보고(1952.7.15)
【28】 판문점회담의 현황(1952.7.15)
【29】 미 육군참모총장의 한국 및 일본 기자회견(1952.7.16)
【30】 엔디코트 박사의 비난에 대한 캐나다 학자들의 답변(1952.7.16)
【31】 중국의 입장 분석(1952.7.17)
【32】 미 육군참모총장의 발언 내용에 대한 국무부의 평가(1952.7.17)
【33】 포로문제에 관한 국무부의 입장(1952.7.17)
【34】 안전보장이사회 회의(1952.7.19)
【35】 버튼 박사와 한국 세균전(1952.7.18)
【36】 판문점과 전선의 상황(1952.7.19)
【37】 포로문제에 관한 국무부의 입장(1952.7.19)
【38】 소련 언론의 미국 비난(1952.7.20)
【39】 소련 언론(1952.7.21)
【40】 포로문제에 관한 미 국무부의 입장(1952.7.21)
【41】 한국의 정치적 상황(1952.7.23)
【42】 한국전쟁(1952.7.23)
【43】 한국의 사령부 산하 정치자문기구 설립에 대한 영국 외무부의 판단(1952.7.24)
【44】 한국의 휴전협정과 전쟁포로 문제(1952.7.24)
【45】 연합군 총사령관의 판문점 협상 상황 설명(1952.7.24)
【46】 한국 및 극동의 군사적 상황(1952.7.24)
【47】 소련 언론의 미국 비난(1952.7.31)
【48】 한국 대선의 대통령과 부대통령 후보(1952.7.31)
【49】 적의 전방 병력 줄이기(1952.7.31)
【50】 신화통신의 한국 휴전회담 상황 보도(1952.8.3)
【51】 신화통신의 한국 휴전회담 상황 보도(1952.8.5)
【52】 공산 측 의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미 국무부(1952.8.5)
【53】 휴전회담과 전선의 상황(1952.8.6)
【54】 한국의 정치적 상황(1952.8.8)
【55】 이승만 정부에 대한 유엔위원단의 관점(1952.8.8)
【56】 한국의 정치 상황(1952.8.8)
【57】 베이징라디오 보도와 공중전 상황(1952.8.10)
【58】 한국 상황에 대한 소련 언론의 반응(1952.8.11)
【59】 이승만 대통령의 재선과 유엔 총사령관의 축하 메시지(1952.8.10)
【60】 조선중앙통신사의 미국 폭격 비난(1952.8.12)
【61】 판문점 회담 및 한국전쟁 상황(1952.8.12)
【62】 소련-북한 조선해방 7주년 기념 메시지(1952.8.15)
【63】 미 국무부의 동맹국 행동조치 계획안(1952.8.16)
【64】 미국의 행동 계획서에 대한 유엔 프랑스대사의 견해(1952.8.21)
【65】 한국 휴전회담에 관한 소련 언론의 보도(1952.8.23)
【66】 미국 계획에 대한 유엔 사무총장의 견해(1952.8.28)
【67】 미 국무부의 동맹국 행동조치 계획안(1952.8.28)
【68】 한국문제와 한국 휴전협정 이후 총회의 결의안(1952.8.27)
【69】 휴전회담과 포로수용소 폭동(1952.8.28)
【70】 공산 측 의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미 국무부(1952.8.29)
【71】 한국의 대통령·부대통령 선거 결과(1952.8.29)
【72】 한국 휴전회담에 관한 소련 언론의 보도(1952.8.30)
【73】 해리슨 연합군 수석대표의 성명(1952.9.6)
【74】 대만 외교부장관의 입장(1952.9.6)
【75】 한국문제의 유엔총회 언급에 대한 캐나다 외무장관의 입장(1952.9.10)
【76】 한국 휴전회담에 관한 소련 언론의 보도(1952.9.11)
【77】 유엔총회의 한국문제 검토에 대한 미 국무부의 의향(1952.9.11)
【78】 한국문제에 관한 멕시코의 제안(1952.9.13)
【79】 공산군 군사 활동 증가에 대한 미 국방부의 분석(1952.9.13)
【80】 한국 공중전에 대한 ??U.S.뉴스&월드리포트??의 기사(1952.9.12)
【81】 멕시코 당국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편지 전달(1952.9.13)
【81-1】 별첨 1―멕시코 당국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편지
【82】 미 국무장관 메시지(1952.9.14)
【83】 한국 휴전회담에 관한 소련 언론의 보도(1952.9.15)
【84】 미국의 행동 계획서에 대한 유엔 프랑스대사의 견해(1952.9.15)
【85】 중공-북한 측의 미국에 대한 항의(1952.9.17)
【86】 한국문제와 미국 선거운동(1952.9.18)
【87】 차기 유엔총회 한국문제 토론에 관한 미 정부의 입장(1952.9.18)
【88】 남한 민간인 포로의 석방(1952.9.20)
【89】 한국문제와 멕시코의 제안(1952.9.20)
【90】 미 국무부 법률 고문의 편지(1952.9.19)
【91】 프랑스 외교대표단의 주한 프랑스 대대 방문(1952.9.23)
【92】 미국의 결의안(1952.9.24)
【93】 프랑스 외교대표단의 주한 프랑스 대대 방문 2(1952.9.23)
【94】 휴전협정 가능성(1952.9.24)
【95】 한국의 정치: 주일 프랑스대사의 이승만 대통령과의 회담(1952.9.26)
【96】 판문점 연합군 측 수석대표의 새로운 대안 3가지(1952.9.27)
【97】 한국 해상의 ‘해상 방위 구역’ 창설(1952.10.1)
【98】 전방의 상황(1952.10.2)
【99】 판문점 휴전회담에 대한 미 국무부의 보고(1952.10.1)
【100】 한국문제에 대한 미국의 계획(1952.10.6)
【101】 한국의 정치 상황(1952.10.6)
【102】 한국 전방의 상황(1952.10.8)
【103】 한국 전방 상황에 대한 미 국무부의 보고(1952.10.9)
【104】 신화통신의 한국 휴전회담 상황 보도(1952.10.10)
【105】 한국 전방의 상황(1952.10.10)
【106】 한국 전방의 상황(1952.10.10)
【107】 미국 선거와 한국 상황(1952.10.10)
【108】 공화당, 그리고 한국군으로 주한 미군 대체(1952.10.10)
【109】 적이 백마고지를 장악하려는 이유(1952.10.14)
【110】 해리슨 장군에게 보낸 남일 장군의 답장(1952.10.14)
【111】 미국의 휴전회담 ‘방해공작’에 대한 공산 측의 분석(1952.10.15)
【112】 판문점 연합군 측 수석대표의 새로운 대안 3가지(1952.10.17)
【113】 김일성과 펑더화이의 편지(1952.10.17)
【114】 중공-북한군 사령부의 ‘정치적 망명자’ 개념(1952.10.18)
【115】 연합군 군사훈련(1952.10.17)
【116】 공산 측과 연합군 측의 서신 교환(1952.10.17)
【117】 공산 측 총사령관들의 편지에 관한 미 국무부의 견해(1952.10.18)
【118】 김일성과 펑더화이의 편지에 대한 베이징라디오 보도(1952.10.18)
【119】 장면 씨의 방문과 한국의 정치 상황(1952.10.18)
【120】 일본인 후루이치 사건(1952.10.18)
【121】 한국 전선의 상황(1952.10.18)
【122】 공산 측 편지에 대한 클라크 장군의 답장(1952.10.21)
【123】 한국에 관한 미국의 새 결의계획안(1952.10.22)
【124】 공산 측 제안과 미국 제안의 비교(1952.10.21)
【125】 공산 측 총사령관들의 편지 분석(1952.10.22)
【126】 한국 국회의 특별총회(1952.10.21)
【127】 아이젠하워 장군의 미군 철수 주장(1952.10.21)
【128】 제1위원회의 한국문제 토론(1952.10.24)
【129】 미 국무장관의 한국에 대한 성명(1952.10.25)
【130】 공산 측의 전쟁포로 분류 개념(1952.10.24)
【131】 한국문제에 관한 미 국무부의 계획(1952.10.26)
【132】 한국전쟁의 제한에 대한 국무부장관의 발표(1952.10.28)
【133】 한국 전방의 상황(1952.10.28)
【134】 중국인민지원군 전쟁참여 2주년 행사 및 거제도 포로수용소 사건(1952.10.29)
【135】 어업수역 문제로 인한 한일관계 악화(1952.10.30)
【136】 미국 결의안에 대한 영국의 입장(1952.10.29)
【137】 한국문제에 대한 미국의 계획(1952.10.30)
【138】 유엔 제1위원회에서의 한국문제 관련 프랑스대사의 발언(1952.10.30)
【139】 한국문제에 대한 영국의 견해(1952.10.31)
【140】 한국문제에 대한 영국의 견해 2(1952.10.31)
【141】 타 신문사 속보를 보도한 ??뉴욕타임스??(1952.10.31)
【142】 미 대통령 선거와 한국문제(1952.10.31)
【143】 남한 군대의 발전에 대한 밴 플리트 장군의 편지(1952.10.31)
【144】 한국 외무부장관의 유엔총회 발언과 각국의 논쟁들(1952.11.4)
【145】 멕시코 대표의 유엔총회 연설(1952.11.4)
【146】 포로송환에 대한 유엔총회의 결정 사안들(1952.11.4)
【147】 포로 송환에 대한 의견 교환(1952.11.4)
【148】 유네스코 회담 대표로 임명된 백낙준(1952.11.6)
【149】 두 단계의 휴전협상 제안(1952.11.7)
【150】 휴전협상의 두 단계와 관련하여(1952.11.7)
【151】 비신스키 장관의 새로운 위원회 설립 제안에 대해(1952.11.10)
【152】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예상(1952.11.11)
【153】 적군의 포병 부대 관련 미 국방부의 소련에 대한 의구심(1952.11.12)
【154】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한국 방문(1952.11.14)
【155】 유엔총회에서 이스라엘, 쿠바 및 여러 국가 대표단의 입장(1952.11.17)
【156】 멕시코 대표의 연설(1952.11.17)
【157】 전쟁포로 관련한 인도 대표의 11월 18일자 제출 해결안(1952.11.17)
【158】 인도의 결의안에 대한 애치슨의 비판(1952.11.18)
【159】 인도의 결의안에 대한 찬성 분위기의 반전(1952.11.18)
【160】 인도의 결의안에 대한 평을 실은 ??타임스??의 사설(1952.11.19)
【161】 미국 신문들의 인도의 결의안에 대한 반응(1952.11.19)
【162】 극동 담당 국무차관의 인도 결의안에 대한 견해(1952.11.20)
【163】 인도의 결의안 관련한 수정 논의(1952.11.20)
【164】 인도의 결의안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수정문(1952.11.20)
【165】 인도의 결의안 제14항에 대한 미국의 수정문(1952.11.20)
【166】 주유엔 남한 대표(양유찬)의 인도 결의안에 대한 반대 의견(1952.11.20)
【167】 소련 기자의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 비판(1952.11.21)
【168】 영국 수상의 인도 결의안에 대한 찬성 의사 표명(1952.11.22)
【169】 인도의 결의안에 대한 호주 대표의 견해(1952.11.22)
【170】 미국 정부의 수정안 제출(1952.11.22)
【171】 인도의 결의안을 수정하면서 마무리해야 할 대상 목록(1952.11.22)
【172】 정부의 서울로의 이전 검토(1952.11.22)
【173】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보낸 이승만 대통령의 제안들(1952.11.22)
【174】 영국 언론에 실린 영국과 미국의 의견 불일치(1952.11.24)
【175】 21개국 위원회의 인도의 결의안(案) 우선권 인정(1952.11.25)
【176】 인도의 결의안에 대한 소련의 반론과 각국의 견해(1952.11.26)
【177】 소련에 의한 한국 관련 인도의 결의안 수정안(1952.11.26)
【178】 한국 관련 인도의 결의안에 대한 이라크의 수정안(1952.11.26)
【179】 아이젠하워 장군의 한국 방문과 관련한 소문들(1952.11.26)
【180】 베이징 정부의 인도의 안에 대한 입장(1952.11.27)
【181】 인도 관료에게 프랑스의 의견 전달(1952.11.28)
【182】 소련 언론의 선전(1952.11.29)
【183】 비신스키 장관의 인도결의안에 대한 비판(1952.11.29)
【184】 위원회 투표를 통한 소련 결의안 기각(1952.12.1)
【185】 유엔에서의 소련의 전략 실패(1952.12.3)
【186】 소련의 고립에 대한 인도 대표의 난처한 입장(1952.12.3)
【187】 인도결의안 채택과 남은 문제들(1952.12.4)
【188】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한 대만 군대의 사용 가능성(1952.12.5)
【189】 총회에서의 인도 결의안 승인(1952.12.5)
【190】 아이젠하워 장군의 한국 방문에서 키리노 대통령과 장제스 총통과의 접촉(1952.12.5)
【191】 유엔 전사자들 관련한 프랑스의 결의안 채택(1952.12.5)
【192】 아이젠하워의 한국 방문과 일정(1952.12.6)
【193】 장제스 총통의 부재에 대한 궁금증(1952.12.8)
【194】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체이스 장군의 접촉(1952.12.8)
【195】 호주의 여론(1952.12.9)
【196】 공산군과 남한군의 군대 상황(1952.12.9)
【197】 총회의 논의와 아이젠하워 장군의 한국 방문 이후 한국 상황(1952.12.10)
【198】 유엔총회의 의장의 공문에 대한 저우언라이의 답변(1952.12.15)
【199】 중국 정부의 인도결의안 거부에 대한 네루 수상의 반응(1952.12.16)
【200】 중국 정부의 인도결의안 거부에 대한 네루 수상의 반응(1952.12.16)
【201】 소련 논설위원의 미국에 대한 비판(1952.12.17)
【202】 포로수용소 사건 관련 남일 장군의 반박(1952.12.17)
【203】 한국의 수용소 사건을 다룬 소련 신문(1952.12.18)
【204】 미 국방부가 전한 한국 상황에 대한 정보(1952.12.19)
【205】 남한 국방부장관의 한국군 병력 증대 계획 발표(1952.12.21)
【206】 저우언라이와 박헌영의 답변 및 주장(1952.12.22)
【207】 소련의 결의안에 대한 기각(1952.12.22)
【208】 한국 전선의 상황(1952.12.23)
【209】 인도의 결의안에 대한 중국과 소련의 거부와 이에 대한 인도의 반응(1952.12.23)
【210】 캐나다에서 떠도는 한국의 국지전 예상에 대한 소문(1952.12.30)
【211】 전쟁포로 관련한 남일 장군의 항의 서한(195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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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이지순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메스(Metz)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 현재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문화융합연구소 소장이다. 프랑스어권연구소장, 프랑스문화예술학회장, 한국퀘벡학회장 등을 지냈다. 페미니즘 문학과 문화, 20세기 여성 작가들, 문학과 영화의 조우 등 프랑스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연구들을 해왔다. 최근에는 캐나다 퀘벡 문학으로 그 영역을 넓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테마가 있는 프랑스 소설>, <프랑스 명작 살롱>(공저), <키워드로 풀어보는 퀘벡 이야기>(공저) 등의 저술과 <퀘벡 영화>, <방랑하는 여인> 등의 번역서가 있다. 그의 문턱 없는 강의실에서는 ‘사랑과 문학’을 테마로 한 청춘들과의 뜨거운 소통이 지금도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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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파리 8대학에서 '모리스 블랑쇼에게 있어서의 광기의 글쓰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년 현재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문화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모리스 블랑쇼에게 있어서 광기의 글쓰기」「재난의 경험으로서의 글쓰기」「비-현전으로서의 책의 문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연애, 그 유혹과 욕망의 사회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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