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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60870947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2-03-25
책 소개
목차
역자의 말
바지락
붉은띠 이야기
대왕 고양이의 병
S의 등
낡은 집의 봄가을
기억
범인범어
미끼
돌제에서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책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막 깨닫게 된 거야. 내가 지금까지 따르려고 힘써 왔던 선이 전부 가짜였다는 사실을. 기쁨을 동반하지 않는 선은 있을 수 없어. 그건 의태야. 악이야. 일본은 패배한 거야. 이렇게 좁은 땅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지. 배낭 속 바지락이야. 만원 전차야. 일본인의 행복의 총량은 극한에 치달았어. 한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그 양만큼 다른 누군가가 불행해져야 해. 마침 아저씨가 떨어졌기 때문에 남은 우리에게 여유가 생긴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행복을 바라기보다 타인의 불행을 기도해야 해. 존재할 수조차 없는 행복을 찾기보다 내 근처에 있는 사람을 불행에 빠뜨려야 하는 거야.
-「바지락」
한 시가 되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붉은띠를 선두로 열을 지어 얼음 위를 바라보며 걷는 것이다. 여섯 시 경 작업을 멈추고 수용소 방향으로 돌아간다. 수용소 앞까지 오면 이미 일대가 어두워져 붉은띠는 입구 초소 소련병에게 우리를 넘기고 홀로 감시병 막사 쪽으로 걸어간다. 감시병 막사는 수용소에서 백 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서 우리들 빙상청소반은 페치카가 타오르는 사옥으로 들어가 묽은 카샤를 훌쩍이고서 그 뒤 잠들 뿐이었다. 저녁 식사 후 작업 얘기나 음식 얘기를 할 때가 있었지만 고향 이야기는 서로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보다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그 당시 우리에겐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붉은띠 이야기」
“이봐 돌팔이 고양이 양반. 뭔가 말을 해보게. 대왕님은 아주 괜찮으시겠지? 그래. 아주 건강하시다고 말해주게나.”
돌팔이 고양이는 아부 고양이에게 힐끗 차가운 일별을 던지고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 거만한 태도가 아부 고양이의 비위를 울컥 건드린 모양입니다.
“뭐야. 대왕님께서 건강하지 않으실 리가 있나. 건강 그 자체이신 분이야. 내가 잘 알아. 내 쪽이 훨씬 허약할 정도라고. 그래서 나는 밤낮으로 대왕님을 근처에서 모시며 은택을 옹망하는…….”
“뭐라고. 노망이라고!”
대왕 고양이가 듣다가 발끈 화를 내며 고개를 번쩍 쳐들었습니다.
-「대왕 고양이의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