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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62204955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18-07-05
책 소개
목차
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범인은 내 아들 야스
5분 대기조의 긴급 탈출
사이키가 걸어온 길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술이 들어가고 선배가 화장실에 가자 시게타 씨는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사이키 군이 당신네 회사에 언제 들어갔나요?”
“1년 전인데요.”
“흐음…….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요? 일은 잘하고 있나요?”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부서가 달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요.”
“뭔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시게타 씨는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시게타 씨의 무거운 표정에서 자연스레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나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실은 선배, 뭐랄까요……. 회사 특별 채용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장애라고 말하면 과하지만 조금 문제가 있는 사람이 들어온다는 메일이 돌았었거든요. 하지만 설마 그 사람이 사이키 선배일 줄이야……. 회사에서 만났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회사 화장실에서 “여어, 마시마 군. 격조했습니다.” 하고 선배가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름과 출신 학교를 듣자 곧바로 생각났다. 선배는 학생 때보다 훨씬 더 화려한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만 일방적으로 선배를 알고 있었을 뿐 선배가 나를 알 턱이 없었다. 이야기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을 테니까. “어떻게 제 이름을?”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선배는, 자신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모든 학생 명부 속 이름과 얼굴을 다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태연스럽게. (「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시게타 씨…….”
나카스기 군이 야스 너머로 나를 본다.
“야스 군, 엄청 귀여워요. 나 완전히 녹아버렸어요.”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눈을 반만 뜨고 있다. 야스는 속눈썹이 길고 피부가 꼭 마시멜로 같다. 도련님처럼 귀엽게 자른 섬세한 머리카락은 일단 햇살을 받으면 그대로 빨아들이고 놓아주지 않는다.
“당연하죠. 내 아들인걸요, 야스는.”
자랑스러운 기분이 든다.
아라시야마 역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기요타키구치에서 내렸다. 그러자 찻잎 속에서나 풍길 법한 청량한 향기가 코안을 가득 채웠다. 나무가 많아 ‘풀풀’ 하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산소가 진하다. 시내에 비해 기온도 낮다.
나는 받아 온 짐 속에서 목도리를 꺼내 야스에게 둘러주었다.
올려다보니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섬세한 그림처럼 파란 하늘을 감싸고 있다. (「범인은 내 아들 야스」)
내 손에 단팥죽 음료수를 건네주는 사이키 씨에게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은 반짝거리는 선의로 가득 차있었다. 순진무구한 사람이었다. 그래, 진짜 행운이 깃들지도 모른다.
“고맙습니다.”
커피를 마신 후였지만 나는 단팥죽 음료수의 풀톱을 땄다.
입에 넣은 순간 엄청나게 뜨거워 화상을 입었다. 상처를 더 입힐 생각인 걸까? 하지만 화상도, 머리도, 얼굴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다.
시오리가 안고 있는 구멍도 상처나 다름없다. 상처가 있으면 아픈 게 당연하다.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 그녀의 상처에도 조금씩 딱지가 생길 것이다. 그러길 바라면서 이번에는 신중하게 단팥죽 음료수를 입에 머금었다. (「5분 대기조의 긴급 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