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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64845644
· 쪽수 : 480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1장 새 왕조를 설계하다
정도전, 혁명가에서 왕조의 설계자로
하륜, 태종의 킹메이커
황희와 태종, 그리고 세종
세종의 믿음에 보답한 과학자, 장영실
성삼문, 죽음으로 단종을 지키다
신숙주, 변절한 지식인 vs 정치·문화 정비의 주역
2장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
세종에서 성종 대까지 ‘문병’을 장악했던 학자, 서거정
서거정과 쌍벽을 이룬 조선 전기 문장가, 강희맹
한명회, 세조에서 성종까지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다
영남사림파의 영수이자 문장가·관료, 김종직
‘직필의 사관’ 김일손, 사화로 희생되다
성종의 학술·예술 참모, 성현
3장 폭군의 실정에 흔들리다
연산군의 마음을 뒤흔든 실세 참모, 장녹수
연산군의 최측근 임사홍, 반정으로 날아가다
중종의 대리인 남곤, 영원한 간신으로 기억되다
조광조, 개혁가의 꿈과 좌절
16세기 호남 사림의 자존심, 김인후
나아감과 물러남을 실천한 퇴계 이황
명종에게 올린 조식의 상소문, 정국을 흔들다
쉬어가는 페이지_연산군의 잔인한 악행
4장 임진왜란, 조선의 위기를 겪다
선조에게 위기 상황을 역설한 참모, 이이
선조와 정철, 그 애증의 관계
문신이자 유학자이자 돌격적인 의병장, 조헌
일본군 선봉장에서 조선 장군이 된 김충선
북인의 영수이자 실용의 관료학자, 이산해
위기 극복의 참모, 유성룡과 《징비록》
5장 광해군의 그늘 속 참모들
선조·광해군 시대,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이덕형
허균과 광해군, 총애와 배신 사이
의병장이자 광해군의 남자, 정인홍
광해군의 참모, 김개시의 국정 농단
영원한 영의정, 이원익
쉬어가는 페이지_광해군, 정상에서 벼랑까지
6장 명분과 실리 사이, 인조반정
위기의 시기, 국방의 최일선에 섰던 장만
인조반정의 공신, ‘인조의 남자’ 이귀
광해군·인조 시대 국방과 경제 전문가, 김신국
17세기 소신과 원칙, 직언의 정치인 조경
최명길, 실리론으로 나라를 구하다
7장 당쟁의 시대와 실학
실물 경제 감각으로 성과를 보인 학자 관료, 김육
‘남인의 영수’ 허목, 고학에 심취하다
숙종 시대 정치 공작의 달인, 김석주
실록에 삼천 번 넘게 등장하는 인물, 송시열
현실 가능한 정책을 제시한 소론 정치가, 최석정
이건창, 조선시대 당쟁의 역사를 정리하다
정조의 참모 정약용, 관료와 실학자 두 길을 걷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1383년(우왕 9) 가을 정도전은 함주막사로 들어가 동북면 도지휘사로 있던 장군 이성계를 찾았다. 이성계는 거듭되는 외침 속에서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 혁혁한 무공을 세우면서 신흥 무인세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특히 1380년 소년장수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전라도 지리산 일대 운봉 지역에서 섬멸한 황산대첩은 그의 명성을 보다 높인 사건이었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휘하 군대를 보고,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라는 말을 던졌다고 한다. 이성계가 재차 무슨 일이냐고 묻자, 정도전은 “왜구를 동남방에서 치는 것”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이 순간 정도전은 이성계의 군사력에서 혁명의 성공을 보았을 것 같다. 결국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은 정도전의 ‘문文’과 이성계의 ‘무武’가 조화되면서 새로운 혁명의 길로 가는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_ '정도전, 혁명가에서 왕조의 설계자로' 중에서
특히 장영실의 아버지가 중국의 항주 사람이고 어머니가 신분이 천한 동래현의 관기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인간 장영실을 발탁해서 힘을 실어준 세종의 애정이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다. (……) 세종은 장영실에 대해,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에 뛰어나서, 매양 강무할 때에는 나의 곁에 가까이 모시어서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고 하여 장영실이 실질적으로 세종의 참모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장영실의 당시 임무는 가마의 제작 감독이었다. 가마는 세종이 타기도 전에 부서졌는데, 사헌부에서는 왕이 다친 것은 아니었으나 안위와 관련된 일이므로 장영실을 비롯한 참여자들을 불경죄로 관직에서 파면했고, 장영실은 곤장까지 맞아야 했다. 1442년 대호군 직책에서 파면된 이후 그의 만년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때는 세종에게 그토록 총애를 받았던 장영실의 갑작스러운 해임과 처벌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투성이다. 일설에는 장영실의 과학적 재능을 견제한 명나라로부터 장영실을 보호하기 위한 세종의 배려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구체적인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천문 과학 기구 프로젝트가 끝나고 세종이 다른 사업에 역점을 두면서 장영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_ ‘세종의 믿음에 보답한 과학자, 장영실’ 중에서
예방승지는 성삼문에게 가혹한 운명을 예고하는 직책이었다.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의 압박 속에서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던 날 성삼문은 바로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상징하는 옥새를 전해주는 비서의 자리인 예방승지의 직책에 있었던 것이다. 훗날 죽음으로 대항한 상대에게 옥새를 주는 임무를 수행했던 것은 성삼문의 기구한 운명으로밖에 풀이할 수 없을 것 같다. 《연려실기술》은 “세조가 선위를 받을 때에, 자기는 덕이 없다고 사양하니, 좌우에 따르는 신하들은 모두 실색하여 감히 한 마디도 내지 못하였다. 성삼문이 그때에 예방승지로서 옥새를 안고 목 놓아 통곡하니, 세조가 바야흐로 부복하여 겸양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머리를 들어 빤히 쳐다보았다”고 하여 두 사람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_ ‘성삼문, 죽음으로 단종을 지키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