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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미암 유희춘의 경제생활

16세기 미암 유희춘의 경제생활

이성임 (지은이),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14,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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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미암 유희춘의 경제생활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16세기 미암 유희춘의 경제생활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생활풍속사
· ISBN : 9791166842689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23-11-20

책 소개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한국 전통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재구성해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간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목차

책머리에

1. 유희춘과 그의 일기
일기, 생활사의 기초
유희춘과 송덕봉

2. 관직자의 물적 수취
녹봉의 수록
진상품 수취

3. 관직자의 인적 수취
구종의 입역
선상·보병가 수취
반인의 역할

4. 관직자의 사적 수입, 선물
선물 수취 규모
선물을 보낸 사람들

5. 토지 소유와 그 경영
토지 소유 규모
농사짓는 방식

6. 노비 소유와 그 사환
노비 소유 규모
노비 사환 방식

7. 경제생활이 갖는 의미

유희춘 사환 연보
주석
참고문헌

저자소개

이성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인하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6세기 兩班의 經濟生活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조선시대 생활사 및 사회경제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는 『국역 묵재일기 1~6(공역)』(경인문화사, 2019), 『조선 사람들의 동행(공저)』(글항아리, 2021), 「16세기 양반의 稱念 수수와 그 인적 배경」(『사림』 82, 2022), 「임진왜란기 해주 오씨 집안의 官 屯田과 차경지 경작―吳希文의 『?尾錄』을 중심으로」(『朝鮮時代 史學報』 101, 2022), 「16세기 양반 남아(男兒)의 성장 과정과 교육―이문건(李文楗)의 《묵재일기(默齋日記)》·《양아록(養兒錄)》을 중심으로」(『고문서연구』 63, 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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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기획)    정보 더보기
한국국학진흥원은 ‘국학진흥을 통한 글로컬 시대의 인류문화 창달에 기여’라는 목표 아래 전통 기록유산을 중심으로 민간 소장 국학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 보존과 연구 활용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학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통시대 고문헌과 유교 책판 등의 기록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그런 기록유산들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한국적 스토리텔링 소재를 발굴하여 콘텐츠 제작 현장에 제공하는 일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을 통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선현들의 지혜를 전승하고, 한문교육원과 유교문화박물관을 운영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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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오랜 기간의 유배 생활로 인하여 당시 유희춘 일가는 양반으로서의 체모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어머니를 비롯한 일가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며,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이후에는 담양으로 거처를 옮겨 해남의 토지와 선영은 퇴락하였으며 노비는 각지로 흩어진 상황이었다. 유희춘은 1567년(선조 즉위) 유배에서 풀려 성균관 직강으로 재출사 한 이후 정4품인 홍문관 응교를 시작으로 10여 년 동안 내직으로 사헌부 장령·사간원 사간·성균관 대사성을 비롯하여 홍문관 부제 학·예조 참판·사헌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는 전라감사를 지냈다. 그는 홍문관 부제학에 가장 오랫동안 재직하였다. 여기서 그의 경제생활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양반의 기본적인 경제적 기반은 토지와 노비이다. 이는 관직 진출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양반들이 보유하게 되는 기초적인 생산 기반이다. 그러나 토지의 소유와 확대 방식에 있어 일반 양반과 관직자에게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직의 유무가 이들의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토지는 기본적으로 상속을 바탕으로 한다. 16세기 균분상속이 시행되던 사회에서 선대의 현달 여부와 혼인 상대의 경제력, 그리고 자녀의 수는 상속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토지는 면적과 더불어 비옥도, 그리고 노비는 수효뿐 아니라 나이·성별까지 고려하여 고르게 나눠주었다.

유희춘 집안에 분재기分財記가 남아 있다면 토지의 소유 규모와 분재 실태를 파악하기가 보다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집안에는 유희춘 이전의 분재기는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는 유희춘이 어느 정도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는가를 가문 배경을 통해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유희춘은 대규모로 토지를 상속할 처지는 아니었다. 더구나 유배 생활로 인하여 그 규모는 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의 자료는 재출사하였을때 유희춘 집안의 토지 소유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유희춘은 상속·별급 등을 통해 노비를 소유하였지만 20여 년의 유배생활로 노비의 관리 상태가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희춘이 재출사하게 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된다. 유희춘은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노비를 매득하고, 양천교혼을 확대하여 노비를 증식하였다. 그리고 이들 노비 이외에 비부를 그의 노비와 다름없이 사환시켰는데, 이는 그가 관직을 배경으로 이들을 쉽게 면역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직은 유희춘이 노비를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 도망 노비의 추쇄와 노비의 쟁송에서 보다 유리한 입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말년에 100여 명의 노비를 소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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