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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생활풍속사
· ISBN : 9791166842689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23-11-2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1. 유희춘과 그의 일기
일기, 생활사의 기초
유희춘과 송덕봉
2. 관직자의 물적 수취
녹봉의 수록
진상품 수취
3. 관직자의 인적 수취
구종의 입역
선상·보병가 수취
반인의 역할
4. 관직자의 사적 수입, 선물
선물 수취 규모
선물을 보낸 사람들
5. 토지 소유와 그 경영
토지 소유 규모
농사짓는 방식
6. 노비 소유와 그 사환
노비 소유 규모
노비 사환 방식
7. 경제생활이 갖는 의미
유희춘 사환 연보
주석
참고문헌
책속에서
오랜 기간의 유배 생활로 인하여 당시 유희춘 일가는 양반으로서의 체모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어머니를 비롯한 일가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며,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이후에는 담양으로 거처를 옮겨 해남의 토지와 선영은 퇴락하였으며 노비는 각지로 흩어진 상황이었다. 유희춘은 1567년(선조 즉위) 유배에서 풀려 성균관 직강으로 재출사 한 이후 정4품인 홍문관 응교를 시작으로 10여 년 동안 내직으로 사헌부 장령·사간원 사간·성균관 대사성을 비롯하여 홍문관 부제 학·예조 참판·사헌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는 전라감사를 지냈다. 그는 홍문관 부제학에 가장 오랫동안 재직하였다. 여기서 그의 경제생활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양반의 기본적인 경제적 기반은 토지와 노비이다. 이는 관직 진출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양반들이 보유하게 되는 기초적인 생산 기반이다. 그러나 토지의 소유와 확대 방식에 있어 일반 양반과 관직자에게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직의 유무가 이들의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토지는 기본적으로 상속을 바탕으로 한다. 16세기 균분상속이 시행되던 사회에서 선대의 현달 여부와 혼인 상대의 경제력, 그리고 자녀의 수는 상속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토지는 면적과 더불어 비옥도, 그리고 노비는 수효뿐 아니라 나이·성별까지 고려하여 고르게 나눠주었다.
유희춘 집안에 분재기分財記가 남아 있다면 토지의 소유 규모와 분재 실태를 파악하기가 보다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집안에는 유희춘 이전의 분재기는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는 유희춘이 어느 정도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는가를 가문 배경을 통해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유희춘은 대규모로 토지를 상속할 처지는 아니었다. 더구나 유배 생활로 인하여 그 규모는 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의 자료는 재출사하였을때 유희춘 집안의 토지 소유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유희춘은 상속·별급 등을 통해 노비를 소유하였지만 20여 년의 유배생활로 노비의 관리 상태가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희춘이 재출사하게 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된다. 유희춘은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노비를 매득하고, 양천교혼을 확대하여 노비를 증식하였다. 그리고 이들 노비 이외에 비부를 그의 노비와 다름없이 사환시켰는데, 이는 그가 관직을 배경으로 이들을 쉽게 면역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직은 유희춘이 노비를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 도망 노비의 추쇄와 노비의 쟁송에서 보다 유리한 입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말년에 100여 명의 노비를 소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