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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생활풍속사
· ISBN : 9791166843808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24-12-02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1. 조선 불교의 공간과 주체: 사찰과 승려
2. 선과 교학의 공존과 승려 교육 과정
3. 삼문 수행체계의 성립과 염불문의 확산
4. 유불 교류의 양상과 시대의 접점
5. 산사에서의 신앙과 승려의 일상
주석
책속에서
세종 대에도 앞서 태종 때 단행된 불교 정책의 기조가 그대로 이어졌다. 1424년(세종 6)에는 기존의 7개 종파를 선종과 교종의 양종으로 통합했고, 선종과 교종에 각각 18개씩 총 36개의 사찰이 국가의 승정 체제 안에 편제되었다. 선교양종 36사는 태종 대의 242사처럼 군현을 대표하는 사찰이 아닌, 훨씬 더 넓은 광역의 도 단위로 지정되었다. 이 중 서울과 개성 및 경기도 일원의 17개 사사를 포함해 20개 이상이 왕실과 직접 관련된 사찰이었다. 공인된 36사에는 소속 승려와 소유 토지의 규모가 정해졌는데, 4월 5일의 『세종실록』 기사에 따르면 선교양종 36사에 배정된 승려 수는 선종 1,950명, 교종 1,800명, 합쳐서 3,750명이었다. 또 허용된 사사전은 선종 4,200여 결, 교종 3,700결을 합쳐 7,900여 결이었다. 이는 태종 대에 242사에 속한 전지가 11,000여 결이었던 것에 비해 3,000결 이상 줄어든 수치였다. 이때 36사에는 150결에서 500결까지의 토지가 차등적으로 지급되었고 태종 때와 마찬가지로 승려 수는 2결당 1명꼴이었다.
여기서 휴정이 선교일치의 대의와 선교겸수의 필요성에 공감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선승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그가 선을 교보다 우위에 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휴정이 제시한 선교겸수와 간화선 선양이라는 수행방식은 그만의 독창적인 방안은 아니었고, 고려 후기의 보조 지눌에게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지눌은 종밀이 주창한 선교일치론의 영향을 받아 돈오점수(頓悟漸修), 그리고 선정(禪定)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행했다. 또 그는 실천성이 강한 당의 이통현(李通玄)의 화엄 교학을 수용했고, 말년에 나온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서는 간화선을 궁극적 수행법으로 내세웠다. 지눌과 휴정의 간화선 수행 기풍은 시대가 달랐던 만큼 성격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교를 입문으로 삼아 선과 교를 함께 행한 뒤에 간화선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삼문의 한 축이 된 염불문은 유심정토와 자성미타로 상징되는 염불선 수행방식, 그리고 서방 극락정토를 상정한 염불 신앙을 모두 포괄한 것이었다. 이는 선 수행을 하는 승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동시에 고려한 방안이었고 그렇기에 그 문호는 점차 넓어졌다. 조선 후기의 승려들은 선과 교, 그리고 염불 중에서 하나 이상의 전문분야를 가졌고, 교학을 수행의 입문으로 삼고 만년에 염불에 전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염불문 성립 이후 정토 관련 서적이 다수 간행되었고 신앙은 물론 의례와 문학 등에서 많은 수요가 창출되었다. 이를 반영하여 사찰계에서도 염불계의 비중이 제일 컸고, 19세기에는 만일염불회가 전국적으로 성행했다. 또 극락정토의 실재 여부나 왕생의 기준을 다룬 논의도 나왔는데, 염불 외에 선행과 도덕도 정토로 가는 유력한 방안으로 떠올랐다. 이제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극락정토로의 왕생을 꿈꾸는 종교적 바람, 그리고 마음을 깨치는 선 수행으로서 염불선이 동시에 추구되었고, 이제 염불문을 통한 깨달음과 정토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