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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현대사(아편전쟁 이후)
· ISBN : 9791166844775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26-01-10
책 소개
목차
제7장 공총사의 성립: 험난한 공민(公民) 결사의 길
광공업 문혁 전개에 대한 마오의 요구
공총사 준비 회의
공총사의 탄생
붉은 천 약탈 행동
선언, 포스터, 완장 및 큰 깃발
시위의 ‘3불(三不)’ 방침
공총사 성립대회
베이징 상경 고발
소결
제8장 안팅 사건: 노동자조반파의 궐기(상)
안팅에서의 기차 저지 사건
중앙의 안팅 사건 토론
천보다의 전보
장춘차오의 안팅행
문화광장 담판
마오쩌둥의 장춘차오 지지
장춘차오의 서명 이유
쑤저우 담판
고발을 위해 북상한 전체 노동자의 상하이 복귀
제9장 안팅 사건: 노동자조반파의 궐기(하)
시위 회의에서의 의견 불일치
안팅 사건에 의해 무효로 된 중앙의 규정
왕훙원 등에 대한 시위의 조사
『공인조반보(工人造反報)』의 발행
공총사 총부의 최초 업무 분담
노동자조반파의 구성
소결
제10장 노동자 적위대(赤衛隊):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문혁
‘2·7 전투대’
시위와 상하이 노동자보수파
적위대로의 3개 조직 병합
노동자 ‘노보’: 왕위시(王玉璽), 천아춘
노동자 ‘노보’: 마지(馬驥)
노동자 ‘노보’: 리젠위(李劍鈺)
적위대의 신속한 발전
훙솽서우(洪雙壽) 사건과 염색24공장 사건
소결
제11장 『해방일보(解放日報)』 사건: 노동자조반파에 의한 홍위병 대체
창시핑(常溪萍)을 돌파구로 삼은 녜위안쯔(?元梓)
『해방일보』사를 점령한 홍혁회(紅革會)
공총사의 홍혁회 지원
적위대와 공총사의 대결
시위의 두 번째 타협
입장을 바꾼 마톈수이
점령자의 신문사 철수
소결
제12장 사작반(寫作班)의 조반: 시위 심장의 폭발
사작반의 유래
시위원회 기관 간부 쉬징셴
대학 강사 주융자
당 지부 서기 궈런제(郭仁傑)
대학 교원 왕즈창
“나는 조반할 것이다”라고 선포한 주융자
사작반의 전체 회의 개최
마침내 결심한 쉬징셴
시위 기관연락처의 경험 교류
사작반의 조반 선포
소결
제13장 캉핑루(康平路) 사건: 조반파의 상하이 문혁 통솔(상)
조반파 지지로 돌아선 시위
버려진 적위대
장춘차오로부터 경고를 받은 조반파
현장 포위 공격 지휘에 나선 겅진장
상하이에서 최초로 벌어진 두 계파의 대규모 충돌 사건
장춘차오 가택 수색, 몰수 사건
캉핑루 사건과 공총사
책속에서
왕훙원은 이렇게 상하이 노동자조반파의 지도자가 되었고, 이후 10년 동안 그 지위를 유지했다. … 이후의 사실이 입증하듯 왕훙원은 자신의 당원 신분에 따른 규범으로 스스로를 제한했고, 다른 조반파 대표에 비해 보수파와 고참 간부, 특히 마오로부터 쉽게 인정을 받아 지위를 높일 수 있었다. 같은 이유로 그는 조반파 내에서 위신과 지위를 높일 수 있었고, 상하이 문혁이 전국적으로 지도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마오는 누구의 발언도 없이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을 꺼내 들었다. 마오는 평소 헌법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의견을 반박할 필요가 있을 때는 헌법을 언급했다. … 마오는 공민의 결사 권리와 집회 자유에 관한 헌법 조문을 읽은 뒤 “노동자에게는 결사 자유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헌법을 읽어 보았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식론을 언급하며 “사실이 먼저 있고, 정책은 그 뒤에 있다”고 하였다. 마오는 장춘차오가 올바르며, 사실에 근거해 과거의 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춘차오와 왕훙원의 정치 경력에서 안팅 사건은 분명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춘차오는 마오로부터 높이 평가받으며 더욱 중시되었고, 왕훙원 역시 이 사건을 통해 문혁 기간 중 노동자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