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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현대사(아편전쟁 이후)
· ISBN : 9791166844782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26-07-10
책 소개
목차
제14장 캉핑루(康平路) 사건: 조반파의 상하이 문혁 통솔(하)
쿤산(昆山) 사건
‘3가지 중단’ 사건
조반파의 적위대 해산 강행
적위대원의 관점 전환
소결
제15장 『문회보(文匯報)』 접수 관리: 1월 탈권의 시작
마오쩌둥의 생일 축배사
「상하이인민에게 급하게 알리는 글(急告上海人民書)」에 대한 천피셴의 서명
상하이시위 타도를 준비한 조반파
마오에 의해 상하이로 파견된 장춘차오와 야오원위안
접수 관리(접관, 接管)된 『문회보』
『해방일보』와 상하이인민방송국에 대한 접관
장춘차오, 야오원위안과 노동자조반파와의 만남
조반파에 의해 파면이 선고된 천피셴과 차오디추
「시 전체 인민에게 알리는 글」에 대한 마오의 높은 평가
조반파와의 연합 업무 처리를 희망한 천피셴
소결
제16장 경제주의 풍조: 혁명 구호 아래의 신분과 이익 요구
최초의 경제주의 요구
전국 임시노동자조직의 성립
임시노동자, 계약직노동자, 외주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
귀향 노동자의 호구 이전 요구
네이멍구 지원노동자(지내직공, 支內職工)와 신장 지원 하향청년(지강하향청년, 支疆下鄕靑年)의 도시 회귀 요구
함께 조반한 소상인
차례차례 양보하는 시위
샹산루(香山路) 회의
가장 먼저 추가 임금을 지급한 항만사무국
체제 내 노동자의 경제요구
위기에 빠진 상하이 생산 경제
경제주의 풍조 가운데의 공총사
소결
제17장 중앙 축전(祝電): 마오쩌둥의 문혁을 위한 상하이의 출로 찾기
「긴급 통고(緊急通告)」의 등장
경제주의 반대 연락 총부(反對經濟主義聯絡總部)
철로조반파에 의한 배차소 접관
‘혁명에 매진하고 생산을 촉진하는 현장지휘부(?革命促生産火線指揮部)’
중앙이 상하이 대중조직에게 축하 전보를 보내라고 요구한 마오쩌둥
보수파의 완전한 붕괴
조반파의 결정적 승리 획득
소결
제18장 1월 탈권(奪權): 접관(接管)에서 탈권으로
홍3사의 공안국 접관
상3사의 상하이시위 접관
대중조직의 탈권에 대한 마오쩌둥의 지지
장춘차오에 의해 전달된 마오의 담화
‘신상하이공사’ 성립 준비에 나선 조반파
시위에 대한 상3사의 재탈권(再奪權)
시위와 화동국에 대한 홍혁회의 탈권
장춘차오의 상하이 탈권 회고
소결
제19장 1·28 장춘차오(張春橋) 포격: 상하이 홍위병 운동의 쇠락
푸단대학 3계파 홍위병의 파벌투쟁
대형 표어를 붙인 포사
주저하는 시 홍혁회와 적극적인 푸단대학 홍혁회
푸단대학 홍혁회에 의해 체포된 쉬징셴
포위공격을 당한 장춘차오
공총사의 장춘차오 보호
마오쩌둥의 구두 지시에 따른 중앙문혁소조의 급전(急電)
상하이 홍위병 운동의 쇠퇴
소결
제20장 ‘공사(公社)’의 성립과 명칭 변화: 질서와 권위의 회복
마오의 상하이 공사 성립 요구
마오쩌둥의 상하이 ‘3결합’ 지지
겅진장의 제2 공사 조직
장춘차오의 위기 해결
상하이인민공사의 성립
마오쩌둥의 공사 개명 건의
공사에서 시 혁명위원회로
소결
책속에서
캉핑루 사건 이후 조반파는 점차 본래의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공총사가 처음 결성됐을 때, 조반파는 헌법상의 결사권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했다. 그러나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다른 조직에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조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러한 행동은 중앙 정책 결정층의 지지를 받았다. 이것이 바로 문혁 대중운동의 실상이었다. 조반파는 애초 자신들에 대한 시위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했다. 즉, 혁명에 반대하는 모든 조직은 존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권의 입장에서 방송국의 중요성은 신문사를 훨씬 능가했다. 방송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즉시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1967년 당시 통신수단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신속성은 정권 입장에서 매우 중시될 만한 것이었다. 상하이방송국이 1월 7일 조반파에 의해 접관당하자, 전국 각지의 전파매체 접관 사건이 잇따랐다.
1966년 말, 경제주의 풍조는 교현(郊縣)을 포함한 상하이 전역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각급 간부를 포위하고, 서명에 동의하지 않으면 식사도 수면도 심지어 화장실 이용도 허락하지 않으며 밤새 비판투쟁을 벌였다. 점점 커지는 경제적 요구 앞에서 각급 간부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만약 이들이 각종 요구에 서명하면 기존에 일관되게 지켜 온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반대로 서명을 거부하면 “혁명대중에 대항한다”는 죄명을 뒤집어쓸 위험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