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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67820099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이 책을 읽는 법
1장 비밀
01 저 험한 내포(內浦) 가야산에는 예부터 사연이 많았느니라
남연군묘의 비밀 1: 황제의 금탑
02 석탑 속 700년 묵은 명차를 추사에게 선물했다네
남연군묘의 비밀2: <세한도>를 그린 암행어사 김정희
03 明 황제가 말차를 금하니 훗날 일본이 도자기로 일어서더라
남연군묘의 비밀3: 주원장의 용단차 금지령과 나비효과
04 여러분은 세종시대 천문기구 간의대의 종말을 보고 계십니다
경복궁 석물의 비밀 1: 근정전 품계석과 간의대
05 상처 난 돌짐승 하나가 주인 없는 궁에 와 있소이다
경복궁 석물의 비밀 2: 구멍 뚫린 천록(天祿)과 굶어 죽은 녹산 사슴
06 경복궁 돌담길 나무마다 사연이 숨었다
경복궁 석물의 비밀 3: 효자로 플라타너스 숲의 정체
07 백성은 세상 일 알려 말고 충효(忠孝)하며 살거라
서점 없는 나라 조선과 책쾌(冊儈)들의 대학살
08 상투 튼 원숭이들이 중국을 희롱하는구나
혐한론자 소동파와 그를 짝사랑한 한국인
09 8일 동안 나는 조선의 왕비였느니라
등극 8일 만에 쫓겨난 중종비 단경왕후릉의 비밀
10 세계 최첨단 조선 요업 기술은 완전히 몰락했다
집단 아사한 도공 39명과 첨단 요업 국가 조선의 몰락
11 역관들의 바보짓에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의 첨단 의학
역관 집단의 밀수 행각과 산업스파이 사건
12 그 많던 절들은 어디로 다 가버렸을까
조선왕조 불교 탄압기
2장 진실 – 조작된 신화
01 베트남 영웅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읽었다? 거짓말입니다!
정약용을 둘러싼 조작된 신화
02 도고 헤이하치로는 이순신을 존경한 적이 없다
이순신, 도고 헤이하치로 그리고 세계 4대 해전
3장 진실 – 호란과 사대
01 나에게 팥죽을 쒀준 저 유생을 금부도사로 임명하라
1624년 이괄의 난과 인조의 황당한 도주 행각
02 또 가짜 왕제를 보냈으니, 아랫것 박난영 목을 벤다!
병자호란과 외교관 박난영의 어이없는 죽음
03 결사 항전을 주장하던 그는 항복 후 집으로 돌아갔다
국난에 대처한 세 가지 자세 1: 김상헌
04 그대들은 명나라를 위해 조선을 망하게 하려는가
국난에 대처한 세 가지 자세 2: 최명길
05 조정과 백성이 최명길을 씹어 먹으려고 한다
국난에 대처한 세 가지 자세 3: '황제의 신하(陪臣·배신)' 송시열
06 송시열이 북벌(北伐)을 추진했다고?
북벌을 거부한 송시열과 화양동 만동묘
07 황제 은총에 조선이 살아 있으니!
망해버린 명나라에 200년간 제사 지낸 창덕궁 대보단(大報壇)
08 더러운 오랑캐 쌀을 먹느니 굶어 죽겠다
1698년 대기근과 청 강희제의 곡식 원조
4장 진실 – 영정조 흑역사
01 판결 따위 필요 없다, 모조리 죽여라
무법천하 막장정치 영조·노론 연합정권
02 금주령 어긴 자는 처형하고 자신은 술을 마셨다
개혁군주 영조의 ‘내로남불’
03 100년 국정 공백이 정실 인사에서 비롯되었다
정조의 인사 실패와 세도정치
5장 진실 – 시대의 갈림길
01 그의 죽음이 민중의 각성을 불렀다
기미년 그 날 1: 고종은 무엇을 했는가
02 그는 조선의 영원한 식민지화를 막았다
기미년 그 날 2: 안중근은 무엇을 했는가
03 그물을 치기도 전에 물고기가 뛰어들었다
기미년 그 날 3: 왕족들은 무엇을 했는가
04 해주 청년 정재용이 선언문을 읽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기미년 그 날 4 : 그날 조선은 무엇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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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명 태조 주원장은 한족이다. 1368년 남송이 망한 지 89년 만에 한족이 중원을 차지했으니 소위 중화 부활 의지가 활활 불탔다. 새 나라 기강 잡는 데는 악랄할 정도로 지독했다. 개국공신을 포함해 자기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은 낱낱이 숙청해버렸다. 숙청할 때는 허리를 자르고(요참), 사지를 찢고(거열), 사람을 산 채로 겉을 데친 뒤 피부를 쇠빗으로 벗겨내(소세) 죽이곤 했다. 조정 신하와 사대부는 그를 폭군이라고 불렀다.
- 「明 황제가 말차를 금하니 훗날 일본이 도자기로 일어서더라」
조선 4대 국왕 세종은 천재이자 일벌레였다. 천재도 부담스러운데 일벌레이기까지 했으니 그 아래 관료들은 죽을 맛이었다. 영의정 황희는 1427년 나이 예순넷에 모친상을 당해 3년 휴직계를 냈다가 100일 만에 복직 당했다. 예순아홉에 사표를 냈으나 또 거절당했고 일흔여섯에 낸 사표도 거부됐다. 1449년 여든여섯에 또 한 차례 사표 파동을 거친 후에야 세종은 황희를 은퇴시켰는데 이듬해 세종이 죽고 2년 뒤 황희도 죽었다. 그런 관료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 「여러분은 세종시대 천문기구 간의대의 종말을 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