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127326
· 쪽수 : 100쪽
· 출판일 : 2023-10-11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종호는 오늘도 도로 건너 카페 창가에 앉아 약국을 보고 있다. 노트북을 꺼내놓고 옆에는 책까지 펼쳐놓았지만 그의 시선은 약국을 향한다. 차들이 오가는 4차선 도로 너머라 약국 안을 누비는 그의 모습을 놓칠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영업시간 동안 그는 거의 자리를 지키고 약국을 떠나는 일이 없다.
지난 며칠간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카페에 와서 커피를 시켜놓고 건너편의 약국을 지켜보았다. 하루 종일 죽치고 있다 보니 카페 주인이 눈치를 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가게를 나와 잠시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약국의 영업시간이 끝날 즈음 근처로 돌아왔다. 그가 약국 불을 끄고 퇴근하면 종호는 그의 뒤를 밟았다.
그때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의 그를 보았다. 운동으로 엄청난 근육이 붙은 것은 아니지만 군살 하나 없이 균형 잡힌 몸이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성공한 사업가나, 시니어 모델처럼 보였다.
백동우를 훔쳐보다가 얼핏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종호는 서둘러 헬스클럽을 빠져나왔다. 후줄근한 야상 점퍼를 걸치고 있는 20대 후반의 청년은 오래된 카키색 점퍼만큼이나 후줄근하고 생기가 없었다. 세 평이 채 안 되는 고시원에서 햇빛도 못 보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몸은 흐물거리고 얼굴은 푸석해졌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며 카페 안을 둘러보는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종호는 입술을 깨물며 흐느끼던 수빈의 얼굴을 떠올렸다.
수빈에게 그는 악마였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수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호는 눈에서 불꽃이 튀는 전율을 느꼈다. 분노라는 게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감정이라는 걸 느낀 건 처음이었다. 눈앞에 백동우가 있었다면 그의 가슴을 칼로 수십 번 찌르고 또 찔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당해도 싼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