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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민속학
· ISBN : 9791168671720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4-06-30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농경사회의 마지막 일기…06
1964년
5월, 보리 익어가는 봄…16
6월, 보리가 쌀이 되는 여정…46
7월, 하늘을 읽는 조 농사…76
8월, 제주의 마음, 메밀…102
9월, 촐 베는 날들…126
10월, 조가 익고 술이 익는 계절…150
11월, 보리 갈 때가 되었구나…170
12월, 숯 굽는 겨울…192
1965년
1월, 겨울 일거리…214
2월, 겨울에 세상을 등지고…230
3월, 수눌어 김매고, 수눈값 갚아 김매고…246
4월, 일어서는 봄…268
[부록] 고병문 농사 일기 원본…284
책속에서
보리 익어가는 봄(5월)
제주의 봄이 깊었다. 바다는 옥빛으로 점점 투명해지고, 풀잎은 어린 티를 벗고 초록으로 물들어 간다. 따뜻한 물을 타고 올라오는 멸치떼를 기다려 그물을 던지는 ‘보제기’(어부)와 겨울 찬물에 무럭무럭 자란 ‘메역’(미역)과 ‘톨’(톳)을 ‘비러’(베러) 나서는 ‘잠수’(해녀)의 손길이 바쁘다. 들판과 오름은 봄볕을 쬐며 풀을 뜯는 소들의 차지가 되고, 유채꽃 진 자리에 유채씨가 여물고, 청보리 누릿누릿 물들어 봄바람에 물결친다. 중산간의 봄은 수확과 파종으로 부산한 때지만 보리를 거둘 5월 말까지는 때마다 끼니를 마련하기가 힘들었다.
보리가 쌀이 되는 여정(6월)
6월은 타작의 시간이다. 베어 놓은 보리는 밭에서 말라가고, 유채와 무까지 마저 베면 타작할 일이 태산이었다. 갑자기 비라도 내리면 애써 지은 곡식들이 젖어 썩게 되고, 조 파종도 코앞이니 더욱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타작은 밭에서 하기도 하고 집에 실어와 마당에서 하기도 했다. 도리깨로 타작할 때는 ‘마당질소리’로 박자를 맞추었다. 마당질소리는 제주도 농업노동요 가운데 가장 힘찬 소리다. “어야도 하야 어가 홍아!” 앞소리에 이어 다같이 받는 소리가 6월의 밭과 마을을 가득 채웠다. 사람도 소도 바쁠 때지만 ‘고팡’(광)에 곡식이 쌓이는 기쁨으로 고단함을 씻었을 것이다.
하늘을 읽는 조 농사(7월)
지루한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 제주도 사람들은 장마가 끝났다고 판단되면 즉시 조 파종에 들어갔다. 조 파종을 위해 장마 전에 미리 잡초를 뽑고 밭을 갈아두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파종하느라 제주도는 일시에 소란스러워졌다. 조를 파종하고 나면 반드시 밭을 다져 밟아야 하기 때문에 온 마을의 소와 말과 사람이 다 동원되어 ‘밧볼리기’에 나섰다. 집집이 돌아가며 수눌음으로 밭을 밟고 나면 이번엔 여름 볕을 받고 쑥쑥 올라오는 잡초에 맞서 끝없는 김매기의 날들이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