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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비평
· ISBN : 9791168731707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26-02-02
책 소개
19세기 말~20세기 말 미국 우생학의 한 세기를 파헤치다
흔히 우생학을 나치 독일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선두에는 미국이 있었다. 특히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우생학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를 토대로 이민 제한, 강제 단종법 등 실질적인 정책이 수립, 시행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인종, 종교, 민족, 성별, 언어, 이념적으로 ‘순수한’ 국가를 지향하는 정치적 담론과 맞물려 추진되었다.
저자 N. 오르도버는 우생학을 단지 과거의 극단적 사상이나 실패한 과학으로 봉인하지 않는다. 그는 우생학이 과학적 중립성과 합리성의 언어를 통해 어떻게 혐오와 차별을 국가 정책으로서 정당화해왔는지를 묻는다. 나아가 이 문제가 우생학이 가장 활발했던 20세기 초 미국에 국한되지 않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의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과학으로서의 우생학을 조명하는 게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반복적으로 호출되어온 우생학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데 있다.
저자는 우생학이 ‘과학’인 동시에 ‘정치’였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선택교배와 생물학적 결정론은 인간의 지능, 섹슈얼리티, 빈곤, 범죄를 유전의 문제로 환원했고, 이러한 우생학적 설명은 개인의 결함을 강조함으로써 구조적 불평등과 국가의 책임을 은폐했다. 우생학은 빈곤과 같은 사회문제를 기술적·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을 내세우며 강제 단종법, 이민 제한 같은 정책 개입을 합리화했다. 우생학의 제도화가 가능했던 것은 과학자, 의사, 정책 수립자, 개혁주의자 등 주류 전문가 집단의 지지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우생학은 노골적인 혐오의 언어보다 ‘공공의 이익’ 또는 ‘사회 발전’이라는 언어로 작동했다. 혐오와 차별은 ‘합리성’의 외피를 쓰고 제도화되었다.
‘순수한 국가’라는 환상
: ‘오염된 자’이자 ‘오염시키는 자’로 이민자 낙인찍기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우생학이 이민정책과 결합해 미국의 국민 개념을 재구성한 과정을 다룬다. 생물학적 범주로 국민성을 정의한 우생학자들은 이민자를 ‘오염된 자’이자 ‘정치체를 오염시키는 자’로 구성해냈다. 그 과정을 저자는 1917년과 1924년 이민법을 중심에 두고 우생학자들이 통계와 지능 검사 등을 동원해 입법 과정에 개입한 방식으로 다룬다. 우생학자들은 노골적인 백인우월주의와 외국인 혐오에 기반한 ‘부적자’라는 범주를 마치 과학적 분류처럼 제시했고, 이러한 담론은 백인들의 불안(1차 세계대전 이후 난민 ‘범람’에 대한, 도시 빈곤, 범죄, 질병, 그리고 인종 간 사회적 접촉에 대한)을 자극하며 정치인들의 언어를 통해 확산되었다.
나아가 저자는 파시즘의 부상 이후에도 우생학이 결코 그 영향력을 잃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우생학적 사고는 형태를 바꿔가며 이민정책 개혁 담론과 결합했고, 이후의 정책 논의에서도 반복적으로 호출되었다. 1부는 우생학이 과학의 권위를 바탕으로 작동했으며, 동시에 미국의 국가주의와 인종주의를 관통하는 정책 기술이었음을 보여준다.
내부의 위험: 퀴어를 병리화하기
우생학자들에게 이민이 외부로부터의 심각한 위험이었다면, 내부의 위험에는 퀴어가 있었다. 2부는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우생학적·의학적 담론을 분석한다. 의학과 정신의학, 성과학은 동성애와 젠더 비규범성을 진단·분류·교정의 대상으로 만들며 병리화했고, 이러한 과학적 판단은 법과 정책을 통해 제도적으로 작동했다.
아울러 저자는 동시에 퀴어 공동체 또한 사회적 인정과 권리 확보를 위해 과학 담론에 의존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성애의 생물학적 원인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동성애자운동이 억압에 맞서는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성소수자 혐오를 바로잡지 못했으며, 다시 한번 섹슈얼리티를 본질화하는 한계를 드러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이 억압과 해방의 언어로 동시에 사용된 이중적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우생학이 ‘구원’의 언어로도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정치가 과학적 설명에 기댈 때 어떤 위험을 마주하게 되는지 드러낸다.
자유주의와 우생학의 공모
3부는 강제 단종수술과 피임 등 생체 관리 정책의 역사로 자유주의와 우생학의 관계를 분석한다.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결함으로 환원된 빈곤과 장애, 인종적 불평등은 과학과 기술이라는 ‘합리적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제시되며 그 근본 원인이 은폐되었다.
저자는 난관결찰술, 노플란트, 데포-프로베라, 퀴나크린 등의 피임제 또는 단종수술이 어떻게 인도주의적 정책 또는 공공복지의 이름으로 강제되었는지 추적한다. 개인의 신체에 대한 이러한 국가의 개입은 특히 가난한 여성, 유색인 여성, 장애인에게 집중되었다. 저자는 이를 우생학과 자유주의의 공모로 분석한다. ‘합리적 개혁’으로 왜곡된 사회체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자유주의 특유의 관념에서 과학적 수사에 기반한 단종수술 등의 생명정치는 ‘개혁’이자 ‘합리’로 여겨졌고, 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이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믿음, 즉 과학기술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일 것이라는, 또는 기본적으로 인도주의적일 것이라는 믿음 자체를 문제 삼는다. 우생학은 합리적(기술적) 해결책으로 불평등을 관리하려는 자유주의적 충동과 결합하며 더욱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3부는 이러한 ‘테크노픽스’가 신체적·정치적 폭력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21세기, 우생학의 망령은 정말로 사라졌는가?
우생학은 이민자, 유색인, 장애인, 빈곤층, 성소수자를 ‘부적자’로 낙인찍었다. 이러한 낙인은 결코 정치적 판단과 무관하지 않았지만 중립을 가장한 과학적 수사는 그러한 판단에 근거를 부여했다. 우생학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폐기되었지만 그 논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메아리처럼 울려퍼진다. 그 언어는 ‘사회적 비용’, ‘생산성’, ‘성장’ 등의 단어로 둔갑하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인, 빈곤, 성소수자, 장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며 이는 우생학적 논리와 단단히 얽혀 있다.
우생학은 일시적,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생명을 보호하고 어떤 생명은 배제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일종의 사고 체계이며 이데올로기다. 《미국의 우생학》은 과학과 국가권력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구조적 위험을, 그리고 그 위험에 어떤 몸들이 가장 위협받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끈다. 국가주의, 민주주의의 위기, 극우의 부상, 혐오와 차별의 위협 한가운데 있는 오늘의 위기는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은 살인적 시대를 버티고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는 말
1부 국가적 위생: 20세기 이민과 우생학 로비
1장 국가를 상상하기
2장 용의주도한 히스테리
3장 내부의 이민자
4장 파이어니어펀드: 과학적 인종주의와 우생학 기금
5장 무분별한 친절과 헤픈 감상주의: ‘박애주의적’ 충동과 싸우기
6장 끝나지 않은 공황 상태
2부 퀴어 해부: 100년의 진단, 해부, 그리고 정치 전략
7장 구원자로서의 과학
8장 일탈을 상세하게 서술하기: 도덕적 명령, 유전적 전제, 그리고 법의 자구
9장 생물학 변명가들: 호소와 오산
10장 젠더, 인종, 그리고 은유의 전략
11장 동성애와 생체/정신 병합: 인과론의 가산적 모형
12장 에이즈, 백래시, 그리고 해방적 생물학주의라는 신화
3부 단종수술과 그 너머: 테크노픽스라는 자유주의적 호소
13장 자유주의의 맹점
14장 벅 대 벨과 그 이전
15장 마거릿 생어와 우생학의 합의
16장 신체적 후유증: 인종주의, 우생학,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적 공범들
17장 새로운 테크놀로지, 오래된 정치: 노플란트와 그 너머
18장 장애와 우생학: 변함없는 합의
19장 퀴나크린, 다가오는 공세
나오는 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찾아보기
책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또다시 살인적인 시대를 버티고 있습니다.”
이 짧고 부족한 서문이 작성된 시점과 실제로 한국어판이 출판될 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엇이 펼쳐질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듯이 우생학이나 국가주의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제노사이드, 극우 정당의 부상, 전 세계 이주민들을 향한 악의에 찬 경멸을 우리 모두 목도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살고 있든 우리는 여전히, 또다시 살인적인 시대를 버티고 있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도시의 거리에서는 숨 막힐 듯 생생한 공포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는 철저하게 의도된 것이지요. 사유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역사학자에게 분명 위안이 되는 순간은 아니지만, 저는 평생 저항을 배우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한국어판 서문)
우생학은 어떻게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나?
우생학이 오랫동안 호소력을 발휘한 까닭은 우생학이 현상 유지를 꾀할 뿐만 아니라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는 대신 개인이나 집단의 ‘결함’을 강조하며, 사회 및 제도의 근본적 변화보다 과학적, 기술적 구제책을 강력히 주장하기 때문이다. 우생학은 주변화된 집단이 실제로 이익을 얻거나 혹은 그렇다고 인식됨으로써 주류가 불안해하는 시대에 번성했고, 그럼으로써 보수주의자들에게 매력적인 도구가 됐다. (들어가는 말)
나치 독일에 대한 비판으로 우생학은 사라졌는가?
다른 설명들을 살펴보면 우생학이 막을 내리기 시작하는 시점을 1930년대 초반으로 잡는데, 이때는 나치 독일[또는 제3제국] 때문에 우생학이 미국에서도 추악한 말로 자리 잡은 시기였다. 그런데 우생학자들의 출판물, 의회 기록 및 그 밖의 보충 문서를 검토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파시즘의 부상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파시즘의 전력이 만천하에 밝혀진 사건도 우생학자들에게 끝을 의미하진 않았다. 우생학자들의 영향력은 전쟁 이전만큼 명백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정치적 존재감은 여전했다. 예컨대 파이어니어펀드(Pioneer Fund)는 1937년 이래로 우생학을 바탕으로 한 이민정책의 선구자 중 하나였다. 파이어니어펀드의 초대 선언문은 ‘인종 개량’ 그리고 초기 13개 식민지 백인 정착민 후손의 생식 증대를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