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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전기(개국~임진왜란 이전)
· ISBN : 9791169740333
· 쪽수 : 608쪽
· 출판일 : 2023-04-25
목차
예종 1년(1469년 3월)
3월 1일 신숙주와 한명회가 흰 까마귀는 상서로운 물건이라고 진하를 청하니 허락하다 / 655
숭문당에 나아가서 민혜와 황운을 국문하고 관련자들도 국문하게 하다 / 655
영의정 한명회가 백관을 거느리고 길복 차림으로 흰 까마귀를 하례하다 / 658
도둑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자는 가을을 기다리지 말고 형을 집행하게 하다 / 659
3월 2일 이합의 복귀의 불가함과 경연의 폐지에 관한 사헌부의 상소문 / 660
최안의 두목 진선이 스스로 목메어 죽을 뻔하였다는 것을 관반이 아뢰다 / 661
3월 3일 권감을 보내 궁시·의복·유안롱 등을 최안 등에게 차등있게 나누어 주다 / 662
사간원에서 이합의 복직의 불가함을 아뢰었으나 윤허치 않다 / 662
강릉인 최소남 등이 공안의 부적합한 것과 학열의 거짓 칭탁 사례를 아뢰다 / 662
3월 4일 최안 등이 금강산에 가니 신숙주·윤자운·노사신이 관반으로 수행하다 / 664
대사헌 송문림 등이 이합 복직의 불가함을 아뢰었으나 윤허치 않다 / 664
동래 온정에서 목욕하는 연창위 공주에게 음식물을 보내 주게 하다 / 665
3월 5일 선정전에 나아가 정사를 보고 공부와 요역 등에 대해 의논하다 / 665
한명회에게 안철손을 국문하게 한 뒤에 공사에 관련된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게 하다 / 666
* 동부승지 이수원을 금강산에 보내어 최안 등을 선위하게 하다 / 666
3월 6일 경복궁에 이어하니 여러 종친과 재추들이 문안하다 / 667
* 좌부승지 윤계겸에게 선온을 가지고 여흥의 천릉 도감 제조를 위로하게 하다 / 667
공사를 입계하고 내리지 아니한 것은 열흘에 한 번씩 서계하게 하다 / 667
세종 장헌 대왕과 소헌 왕후를 여흥 새 능으로 옮겨 안장하다 / 667
대간에서 이합의 복직의 불가함을 아뢰었으나 윤허치 않다 / 667
* 일본국 전산전 의취가 토물을 바치다 / 669
도성 내외의 송목 금벌 사목을 그대로 따르다 / 669
3월 8일 비현합에 나아가 우부승지 정효상을 불러 예기를 진강하게 하다 / 670
대간에서 이합의 복직의 불가함을 재차 아뢰었으나 윤허치 않다 / 670
매양 조참한 뒤에 친히 유생을 강한다는 전지를 내리다 / 671
3월 9일 경회루 아래에 나아가 정사를 보고 제사 받들기를 다투는 송사를 처리하다 / 671
적몰된 가사를 돌려 받기를 청한 강순의 첩 금생을 국문하게 하다 / 672
금을 받고 물건을 적게 준 이길생·김치중을 처참하고 삼포에 무역을 금하다 / 672
장의문을 이제부터 열지 못하게 하다 / 674
3월 10일 경회루 아래에 나아가 정사를 보고 강순의 첩 금생을 연좌하도록 하다 / 674
* 비현합에 나아가니 우부승지 정효상이 예기를 진강하다 / 674
* 유자광의 장인 함양 호장 박치인과 처형 순년의 향역을 면하게 하다 / 674
실정을 고하지 않은 민혜를 장을 때려 신문하게 하다 / 674
제색 군사 조정의 조역하는 가전을 정하게 하다 / 675
* 일본국 서해도 일향 등과 삼주 태수 등원입구가 토물을 바치다 / 675
3월 11일 영창전에 나아가 상식하고 경회루 아래에 나아가 정사를 보다 / 675
조석문·한백륜·강자순·임자번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675
작록과 임금의 정치에 대해 상소한 사헌부 관리를 종신 서용치 못하게 하다 / 676
3월 12일 전날의 상소문에 관해 해당 관리를 불러 묻고 파직만 시키다 / 684
* 첩고하여 군사를 경회루 문 앞에 모으고 술을 먹이다 / 686
* 백관이 흑의·오각대 차림으로 중궁의 탄일을 하례하고 표리를 바치다 / 686
* 허종·조민·이육·유진·이평·홍빈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686
두목 진선이 심풍 때문에 물에 빠져 죽었다고 신숙주 등이 치계하다 / 686
3월 13일 최안 등이 돌아오니 권감·심회에게 선온을 가지고 위로하게 하다 / 687
* 종친부 종 거동이 경주 보전암에서 동철석을 찾아 바치니 채취를 금하게 하다 / 687
중추부 지사 봉조하 정척이 대학연의를 정무의 여가에 볼 것을 상소하다 / 687
왜인이 표류되었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양식을 빼앗기니 위로하게 하다 / 688
3월 14일 환관 전균에게 별하정을 가지고 가서 최안 등에게 주게 하다 / 688
난신 남이와 조영달 등의 밭을 수종암·봉보 부인 등에게 내려 주다 / 688
최안과 정동이 본가에 들른 뒤 온천에 가고자 함을 관반이 아뢰다 / 689
3월 15일 광릉에서 망제를 행하고 수릉관·동역 제조·역부 등에게 술을 하사하다 / 689
* 최안 등이 원각사·흥천사에 가서 표기를 다니 정효상이 위로하다 / 689
3월 16일 사복시의 문 기둥에 벼락이 치다 / 689
홍주의 안철손의 공사에 관련된 자들을 추국케 하고 서울로 잡아 들이다 / 689
정동이 고향 신천의 이름을 승격시키기를 바란다고 관반이 아뢰다 / 690
지금의 임금이 어리고 약하다고 난언한 신순인·성기 등을 국문하게 하다 / 691
* 일본국 대마주 태수 종정국이 토산물을 바치다 / 691
3월 17일 환관 신운을 보내 최안 등에게 별하정 및 모마장 등을 내려 주다 / 691
최안 등이 고을 이름을 승격시키고 심 태감을 위로할 것을 청한다고 아뢰다 / 692
3월 18일 정창손·한명회·권감 등에게 명해 최안 등에게 위로연을 베풀게 하다 / 692
민심을 소동시킨 임영 대군의 반인 구승수를 참하여 저자에 효수하다 / 692
3월 19일 정동이 신천으로 떠나니 관반 윤자운이 수행하고 최안 등이 전송하다 / 693
* 조충손의 고신을 돌려 주게 하다 / 694
파면시켰던 송문림 등을 다시 서용케 하다 / 694
3월 20일 조익정을 공신적에 도로 기록하도록 명하다 / 694
* 좌승지 이극증을 보내어 신천에서 정동을 문안하다 / 694
* 시강원을 다시 설치하다 / 694
* 조수산의 고신을 돌려 주도록 명하다 / 694
어유소·신승선·김계창·성중·김극검 등을 관직에 제수하다 / 694
예조에서 사역원 강이관을 활성화하기 위한 권학 조건을 아뢰다 / 695
종부시에 대소 종친 중에서 현능한 자를 기록하여 계문하게 하다 / 696
3월 21일 환관 전균을 보내어 최안 등에게 별하정을 주다 / 696
실정을 고하지 않은 민혜를 장신하여 계달하게 하다 / 696
형벌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중외에 알리게 하다 / 696
3월 22일 민혜를 참형에 처하게 하고 처첩과 자손을 관노비로 영속시키게 하다 / 697
왜인의 피살 사건을 심핵하게 하고 양식을 주는 것 등은 고례를 따르게 하다 / 699
심회가 메벼와 찰벼 종자 2석씩을 청한다고 관반이 아뢰다 / 700
3월 28일 법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재물을 탐내어 백성을 괴롭히는 자를 엄단하게 하다 / 700
* 권감을 보내 의복과 갓 등의 물건을 최안·심회에게 정동의 예대로 주다 / 701
3월 24일 민혜의 일을 즉시 계달하지 않은 도감 낭관 윤호를 잡아 오게 하다 / 701
온양 주필 신정비를 철거하였다가 사신이 돌아간 뒤 세우게 하다 / 702
정동이 신천에 있을 때 부모묘의 석인과 표석을 보고 매우 노하다 / 702
* 난신 장순지의 예천과 봉석주의 음성 밭을 우승지 윤계겸에게 내려 주다 / 702
3월 25일 최안이 음성을 향하여 출발하니 심회가 제천정에서 전별하다 / 702
사헌부에서 조충손의 고신을 돌려주는 것을 반대했으나 윤허치 않다 / 703
* 형조 판서 강희맹을 관반으로 삼다 / 703
3월 26일 우승지 윤계겸을 최안에게 보내어 음성에서 문안하게 하다 / 704
처참한 자의 딸은 다 정속하고 민서의 딸은 면방하라고 하다 / 704
* 봉보 부인에게 안구마 1필을 내려 주다 / 704
길창군 권맹희의 인륜에 어긋나는 행동을 사림에서 좋게 여기지 않다 / 704
3월 28일 환관 유한을 보내어 심회에게 별하정을 주다 / 705
* 좌승지 이극증이 신천으로부터 돌아와 복명하다 / 705
예문 봉교 방귀원의 장례를 벗인 직강 노필공이 정성스럽게 지내 주다 / 705
3월 29일 지평 이평이 이유분의 기복이 불가함을 말하니 기복의 당위성을 설명해 주다 / 706
사옹원에서 관장하는 문소전의 천신을 검찰하는 조건을 예조에서 아뢰다 / 706
- 이하 목차 생략 -
책속에서
머리말
[예종실록]은 조선 제8대 국왕 예종의 재위 기간(1468년 9월 ~ 1469년 11월)약 1년 3개월간의 역사를 기술한 사서입니다. 정식 이름은 ??예종양도대왕실록睿宗襄悼大王實錄??이며, 모두 8권 3책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예종실록] 말미에는 “성화 6년 경인 2월에 명령을 받아 사초를 출고하여 7년 12월에 이르러 [세조실록]의 편찬을 끝내고, 편찬하기 시작하여 8년 임진 5월에 끝마쳤습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사로 미루어 ??예종실록??은 예종이 승하한 다음해인 성화 6년, 즉 성종 원년(1470년) 2월에 춘추관에서 편찬하라는 왕명을 받아 성종 2년(1471년) 12월 [세조실록]의 편찬을 마친 후에 편찬을 시작하여, 성종 3년(1472년) 5월에 완성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종 원년(1469년) 4월 1일갑인에 ??세조실록??을 편찬하기 위하여 춘추관 안에 실록청을 설치하고, 신숙주·한명회를 영춘추관사로, 최항을 감춘추관사로, 강희맹·양성지를 지춘추관사로, 김수령·정난종·예승석을 동지춘추관사로 임명하고, 기타 수많은 수찬관·편수관·기주관·기사관을 임명하여 ??세조실록?? 을 편찬하게 하였으나, 예종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해 11월에 승하하였습니다.
성종이 즉위한 다음 계속 이를 편찬하여, 3년 후에 완료하고, 계속하여 [예종실록]을 편찬하기 시작하여, 반년 후에 완성하였다는 것이, [성종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종실록]의 편찬관은 [세조실록] 편찬관과 거의 같습니다. [예종실록]의 편찬이 완료되었습니다.
성종은 신숙주·한명회·최항에게는 각각 안장을 구비한 말 한 필을 하사하고, 강희맹·양성지·김수령·정난종·김지경에게는 각기 말 한 필을, 예승석·정효상·유지·유권·고태정·임사홍 ·성숙·노공필·정휘·유자분·김윤종·최숙정·김극검·최경지·김신에게 각각 망아지 한 필을 하사하였습니다. 박시형·노금·남계당·남윤종·김직손·이박에게 각각 향표리 한 벌씩 하사하고, 김유·김중연·안침·채수·김윤·손창·김예원·김종·김미·안진생 ·정이교·박처륜·손비장·박시형·최철관·강거효 등은 각각 한 계급씩 올려 주었습니다. 장책한 서원 공시은·김득중과 서리 이선지·이귀림 등은 취재하여 우선적으로 서용하게 하였습니다.
[예종실록]은 편찬한 후 [세종실록]·[문종실록]·[세조실록]과 함께 인쇄하여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전주·성주의 사고에 봉안하였다.
본서는 독자들이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 재미있게 자세히 보면 제대로 보입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23년 4월 에디터 이남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