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71710911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4-01-10
책 소개
목차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7
작가의 말 319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 앞에 놓인 세계가 두 개로 나뉘고 있었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현실의 소리로 이루어진 세계와 이명이 목구멍을 열고 이야기를 게워 올리는 세계. 멀어지다가 가까워지고, 밀어내면서도 겹치고 마는, 두 세계 가운데 내가 끼어버렸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물어도 내 생각을 말할 순 없었다.
집 앞 전봇대 위에서 까치들이 지저귀었다. 왼쪽 귀는 깍깍깍으로 들었겠지만 오른쪽 귀엔 하하하로 들렸다.
목, 숨, 값, 달, 라. 줄에 매달려 붉은 페인트로 휘갈긴 소리가 빌딩 벽에서 붉게 부르짖고 있다. 빌딩을 하늘까지 쌓아 올리고도 일한 돈을 받지 못한 남자가 매미처럼 달라붙어 쓴 다섯 글자. 그 글자들이 세로로 매달려 만든 문장 위에 나도 매달려 페인트를 칠한다. 빨갛게 아우성치던 글자들이 발음을 씹으며 하얗게 잠잠해진다. 높이감을 잃는 순간 떨어지는 줄도 모르게 떨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들어본 가장 큰 소리는 사람 떨어지는 소리.
배제된 목소리가 이명이 된다. 기존의 소리 전달 경로에서 감지되지 않는 비명이 귀를 찾아와 터뜨리는 울음. 소리의 길을 빼앗긴 존재들이 뇌가 왜곡해서라도 인지할 수밖에 없도록 지르는 고함. 내 말도 들어달라며 둔감해진 청신경으로 달려와 온몸으로 부딪치는 충돌. 이 세계의 고막을 두드리는 신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불필요한 잡음이나 제거해야 할 소음으로 치부할 때 그 소리들은 고립된 곳에서 혼자 울다 고칠 수 없는 질병이 되고 말 것이라고. 진공의 우주처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소멸해버리는 세계에선 결국 그 세계 자신의 비명 역시 누구에게도 수신되지 않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