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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 ISBN : 9788964372920
· 쪽수 : 496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7
소리 잃은 검은 기침 : 석탄 9
집이 오는 과정 : 시멘트 51
첨단의 풍경 : 굴뚝 71
수리되지 않는 노동 : 서비스 117
세계의 밑변 : 알∨바 153
당신과의 전화 통화 : 끊겠습니다 185
보이는 것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것 : 얼룩 197
나와 그대의 이야기 : 백골 217
최저보다 아래 : 한국 229
텐진 델렉이자 라마 다와 파상이면서 민수 : 우리나라 261
천국(天國)을 위한 천국(賤國) : 천국 279
사랑이 지운 사랑 : 표준국어대사전 305
오직 낮은 땅의 전쟁 : 물 329
우리의 전선(電線), 그들의 전선(戰線) : 전기 341
가난한 꿈의 연표 : 밀 353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 섬 371
지구의 침몰 : 세월 403
나오며 476
추천하며 482
찾아보기 491
사진 일람 495
리뷰
책속에서
동원아파트는 재난 뒤의 참혹을 닮았다. 깨진 유리 조각과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과 기억도 깨지고 버려졌다. 살갗이 벗겨진 벽은 상한 핏줄과 금 간 뼈를 드러냈고, 우거진 잡초는 아파트와 야산의 경계를 지웠다. 폐허는 폐허에서 살 수 없는 생명들을 밖으로 밀어냈지만, 폐허이기에 찾아 깃드는 생명들에겐 최후의 품을 내줬다.
찬란은 빈곤을 묻어 감췄다. 고층의 빌딩이 첨단으로 깎아지르는 동안 가난한 삶도 수직으로 가팔라졌다. 거칠한 공단이 매끈한 얼굴로 바뀌어도 메마른 노동은 디지털로 진화하지 못했다. …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디지털단지는 나른했다. 숯검정 굴뚝이 철거되고 반짝이는 유리 벽이 솟아도 대한민국이 노동을 다루는 문법은 바뀌지 않았다. 여공, 여자, 그 이름들만 가느다란 실처럼 얽혀 구로에 묶여 있었다.
계란인 나는 높은 새의 둥지에 에어컨을 단 뒤 낮은 닭장으로 내려와 퇴화된 날개를 쉰다. 날개 가진 생물이 공중으로 던져지는 것을 추락이라 부르지 않는다. 날 수 있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곳에서 날 수 없어 추락하는 계란들이 지구를 식힌다. 계란이 바위에 부딪혀야 하는 현실은 앞으로도 가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