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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72133603
· 쪽수 : 164쪽
· 출판일 : 2025-12-18
책 소개
★신동엽문학상 수상자
★음악가 권나무·전유동 강력 추천
“어떤 밤은 내게 또다른 시작이다”
리얼리스트 시인 최지인이 들려주는
나를 들여다보는 통로로서의 음악 이야기
신동엽문학상 수상자이자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시인 최지인. 그가 등단 10여 년 만에 첫 산문집 《일렁이는 음의 밤》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이 책은 시인이 지난 3년간 삶이 막막함으로 일렁일 때마다 음악을 들으며 고요하게 견디던 순간들을 기록한 것이다. 책에는 양희은·잔나비·새소년·권나무·강아솔 등 시인을 살게 했던 음악을 매개로 한 서른다섯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각 장마다 QR코드가 삽입돼 있어 책을 읽으며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시인은 성실함과 치열함을 강요당하는 세상에서 삶의 근원적인 고통에 침잠하다가도 주변의 눅진한 아픔들을 섬세하게 돌보며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그를 “현실에 밀착한 이 시대의 리얼리스트 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음악을 매개로 하고 있지만 결국 세상의 아픔들에 가닿는 작가의 시선은 여전하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던 지난날의 자신의 비겁함을 고백하며 실패를 살아내고자 한다.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되풀이되는 삶일지라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시인은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늘 자기 내면과 만나게 된다며, 친구들의 음악을 들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나를 들여다보는 통로로서의 음악 이야기’이다.
“미래가 ‘앞으로 올 때’라면 무엇이 내 앞에 올지 모르지만, 시를 쓰고 노래하며 미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늘 나와 만난다. 음악을 듣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나는 친구들의 음악을 들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19~20쪽)
“예술을 매개로 죽음을 기억하며 슬픔을 살아내겠다고 했다. 잊히는 것을 기억하면 사라지지 않게 된다고, 찰나의 밝은 것들을 받아 적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문학은 얼마나 무력한가. 무력하더라도, 계속해야 한다는 걸 안다. 더 큰 문제는 무력과 무능을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34쪽)
“잔나비의 전설·이승윤의 꿈의 거처·권나무의 새로운 날·
새소년의 여름깃·요조의 나의 쓸모·이상은의 공무도하가…”
슬픔과 불행을 낙관으로 변주하는
음유시인의 섬세한 문장들
시인은 표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이 사회의 고통을 음악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나간다. 이를테면 친척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밤, 전유동의 「호수」라는 곡을 들으며 이 세상에 온 의미를 곱씹는다. ‘잊고 지낸 이름들’과 ‘잊히는 얼굴들’, 그리고 언제나처럼 흘러가는 죄책감. 그는 “의미라는 것은 인간이 제멋대로 정하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그 의미를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여덟 살 무렵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는 쪽지를 엄마에게 남겼던 날을 회상했던 밤에는 “사랑 속에서도 상처가 있음을 인정하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다릴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이 우리의 디폴트가 되기를 바란다”는 김사월의 「디폴트」를 듣는다. 시인은 “우리 앞에 와 있는 슬픔을 오래 곱씹”으며 사랑 없는 세상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10월의 어느 밤에는 “이 세상 어딘가를 헤매었던 사람들을 향한 헌사를 바친다”는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를 찾는다. 이상은의 음악처럼,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이 세상에서 예술을 매개로 죽음을 기억하며 슬픔을 살아내겠다고 다짐한다. 이처럼 시인은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낙관적인 사람이다.
음악가 권나무의 추천사처럼 “삶을 살아낸다는 건 자신의 그림자를 위로하며 묵묵히 걷는 일이라는 것을,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는 않겠다는 마음이라는 것을, 기꺼이 그렇게 사랑하여 마침내 살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김사월은 ‘사랑 없는 세상’에서 사랑을 기다리며 영원을 노래한다. 그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하고많은 부조리한 일에 분노하다 지쳐 체념하기도 하지만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그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은 턱없이 부족한데, ‘널 슬프게 하는 널 힘들게 하는 세상을 베어버릴게’(「칼」) 하고 말하면 될까.”(48쪽)
“오지은의 첫 앨범 『지은』은 심장박동 소리(「당신이 필요해요」)로 듣는 이를 맞이한다. 그 소리에 나는 ‘자그마한 내 쉼터’(「작은 방」)들을 떠올린다. 예술은 대개 삶이다. 가끔 투쟁이고 이따금 아무것도 아니다. 삶이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노래하는 게 두려울 때도 마음을 다하고 싶다. 어떤 삶이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 삶은 불행하다. 다시는 구렁텅이에 나를 던지지 않을 것이다.”(51~52쪽)
“하나의 음(音)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그러므로 한 존재를 살게 하는 것은 다른 존재다”
순리를 거부하는 잡음을 엮어 만든 희망의 노래
시인에게 음악은 사나운 현실 앞에서 부유하는 치졸함을 가라앉혀주는 마중물이었다. 그는 삶 속에서 예술로 감응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음악을 통해 떠난 것과 남은 것을 헤아리며 그저 오늘을 위해 살자고, 순리를 거부하는 잡음을 엮어 희망을 노래한다.
“오랫동안 한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음악 세계를 변주하고 넓혀나가는 음악가의 음악은 귀한 유산이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고 해도 잠시 쉬었다가 ‘맨 처음의 그 용기’(「세렝게티처럼」)를 되뇌며 되돌아가면 된다. 그래도 된다. ‘어떤 밤은 내게 또 다른 시작’(「라」)이다.”(88쪽)
캄캄한 밤, 일렁이는 음들을 통해 마침내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은 곁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는 “하나의 음(音)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그러므로 한 존재를 살게 하는 것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반지하 단칸방에서부터 시작해 도시살이에 안간힘을 쓰신 부모님, 그들을 대신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와 이웃들, 30대 중반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꿈을 좇다가 제주도로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난 친구. 보문동 출판사에서 함께 시절을 버텼던 문인 선배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살아남아 한국으로 온 친구 알란티시, 그리고 잎이 마른 프리지어처럼 의욕을 잃고 가라앉을 때마다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끄집어내주는 아내…. 그는 존재하는 것들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듯,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고 말이다.
각기 다른 목소리가 한 목소리가 되어 노래 불렀던 어느 밤 시인은 음악의 힘을 알게 됐다.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경계도 존재하지 않았고 서로 말이 달라도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음악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시인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음악 안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아파하며 아름다워지길 바란다. 우리에겐 밤마다 들을 노래들이 남아 있다.
“지나간 시간은 이미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몸 어딘가에 머물다 불쑥 되살아난다. 그 밤들은 음악의 힘을 알게 했다. 음악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음(音)에 불과하지만, 그 음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그러므로 한 존재를 살게 하는 것은 다른 존재이다.”(161쪽)
목차
여는 글- 반복과 변주
살아 있음의 의미는 살아 있다는 것
다시 나아갈 힘을 불어넣는, 이승윤 『폐허가 된다 해도』
기억하려는 것은 새 기억으로 다시 온다
산다는 일의 의미를 오래 곱씹는, 양희은 『양희은 1991』
우리는 짐작보다 더 빨리 지나갈 거야
떠난 것과 남은 것을 헤아리는, 강아솔 『정직한 마음』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겠지
너무 매여 살지 말자 다짐하는 밤에, 복다진 『꿈의 소곡집』
그것이 우리의 시작이고 우리의 끝
‘이 세상 어딘가를 헤매었던 사람들’을 위한,
이상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어린 시절 우리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사랑과 슬픔과 한숨과 기도의 노래, 잔나비 『전설』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
결코 세상을 버리지 않는, 전유동 『관찰자로서의 숲』
우리 앞에 와 있는 오래된 슬픔을 곱씹는다
사랑 없는 세상에서 사랑을 기다리는, 김사월 『디폴트』
두려울 때도 마음을 다하고 싶다
낮은 담장 같은 노래에 귀 기울이던 나의 20대, 오지은 『지은』
지지 않는 꽃 없고 피지 않는 꽃 없다
한 해의 끝에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다음에는 꼭 보자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나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권나무 『새로운 날』
우리가 잊은 게 무얼까
과거를 이끌어 오늘을 바로 보게 하는,
너드커넥션 『New Century Masterpiece Cinema』
어떤 미래가 닥치더라도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처럼 손짓하는, 새소년 『여름깃』
산 자는 죽은 자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이제 그만 전쟁을 멈추자고, 강산에 『나는 사춘기』
내가 되려던 건 뭐였을까
유예된 꿈과 연체된 마음, 9와 숫자들 『유예』
단 한 명을 위한 노래
세상의 바깥에서 날것의 미학을 선언하는, 이승윤 『꿈의 거처』
너의 말투로 때아닌 여름을 불러줄게
끝없이 울려 퍼지는 청춘의 소리, 아이ㅤㅁㅛㅇ 『청춘의 익사이트먼트』
할머니는 다 괜찮다고 말했다
‘오늘을 위해 살아가야지’ 노래하는 마음, 조용필 『Road to 20-Prelude 2』
인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남는 건 이 순간뿐,
등려군 『등려군1 5주년鄧麗君十五週年』
어떤 사랑은 뒤늦게 밀려온다
나의 작음과 보잘것없음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전유동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
마음속 사랑이 어지러운 사랑을 비출 테니
듣는 이를 사랑에 잠기게 하는, 숨비 『To. My Lover』
삶이 구겨질 때면
세상은 결코 버릴 수 없다는 듯이, 트루베르 『목소리 숨소리』
쪽배를 타고 그대 호수에 머물고 싶어라
스물여섯 청년이 우리에게 남긴 것,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이건 뭔가 되게 크게 잘못된 것 같아’ 되뇌는, 이랑 『신의 놀이』
다르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우리 곁에 있는 풍경을 다정한 시선으로, 김목인 『저장된 풍경』
계속되는 파도가 우리를 지금, 여기로 이끌었다
모르는 세계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복다진 『너만 알고 있지』
당신이 건넜을 고비 내가 건너야 할 고비
비틀스의 마지막 정규 앨범, 『Abbey Road』
쓸모없다고 해도 멈추지 않는 이유
존재 이유를 묻는 노래, 요조 『나의 쓸모』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노래는 시작된다
아득한 물음과 마주하는, 이적 『Trace』
누군가 살아냈다는 것은 가끔 커다란 위로가 된다
세월을 넘어 가슴에 꽂히는 노래, 패티 스미스 『Horses』
옛날 생각이 나요
듣는 이를 지나간 시간으로 이끄는, 천용성 『김일성이 죽던 해』
길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게요
삶의 여러 길을 보여주는, 신승은 『사랑의 경로』
망각에 저항하는 절박한 외침
순리를 거부하는 잡음을 엮어 만든, 이승윤 『역성』
절벽을 구르는 너를 안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김소월 〈개여울의 노래〉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악장을 연주하는 사람들
첼로 음악을 새롭게 정의한,
파블로 카살스 『J.S. BACH: Six Suites for Solo Cello』
닫는 글-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추천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래라는 단어를 곱씹으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어느 출판사 면접에서 마지막 질문으로 “10년 뒤 당신은 무얼 하고 있나요?” 하고 물었다. 머릿속이 까매졌다. 당시 나는 답십리역 앞에 있는 작은 원룸에 살고 있었다. 몇 달 치 월세가 밀린 상태였다. 열심히 일했을뿐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곤경에 처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 10년 뒤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삼대가 둘러앉아 떡국을 먹던 오래된 집은 이제 없다. 새집에는 사람이 별로 들지 않는다. 구순이 넘은 노인이 종일 창가에 앉아 하얗게 눈 덮인 텃밭을 바라본다. 당신은 손주 손을 꼭 잡고 말한다. 포도시 숨 쉬고 있다고.
포도시, 포도시…. 한자리에 모여 늙은 어미는 자식의, 자식은 자기 자식의, 자식의 자식은 자기 안녕을 비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보름달에 대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을지OB베어 강제 퇴거를 막기 위한 현장 문화제에 참여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가득 플라스틱 테이블이 펼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왁자지껄 맥주를 마셨다. 그 사이 섬처럼 놓인 집회 현장에서 시를 읽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옆을 지나며 험한 말을 쏟아내는 취객과 무관심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쌓인 무수한 장소의 수없이 많은 사람의 슬픔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멀리서 지켜보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