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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자연에세이
· ISBN : 9791172133931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6-04-05
책 소개
“한 번이라도 나무에게 위로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이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시아 최초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에서 기록한 눈부신 사계절
세상을 바꾸는 특종을 꿈꾸던 기자가 10여 년 후 정신을 차려보니 수목원 화단에서 잡초를 뽑는 가드너가 되어 있다. 《숲으로 출근합니다》는 한국 최초 민간 수목원이자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2000년 국제수목학회 인증)에 선정된 천리포수목원의 나무의사 황금비가 쓴 첫 책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촌각을 다투는 뉴스 경쟁 속에 살다가 인구 소멸 고위험 지역에 속하는 태안의 서쪽 끝, 산과 바다가 맞닿은 숲으로 출근하게 된 변화는 단순한 이직을 넘어선다. 계절의 흐름에 맞춰 날마다 색을 달리하는 나무들이 저자에게는 도심의 네온사인보다 더 강력한 도파민 자극제다. 지하철 출퇴근길의 필수템이었던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은 사라졌다. 파도가 절벽에 부딪치는 소리, 가을바람에 억새잎이 스치며 흔들리는 소리, 오색딱따구리 새끼가 어미를 찾으며 지저귀는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수목원 입사해 두 번의 사계절을 겪으며 이 책을 썼다. 천리포수목원에서 가꾸는 1만 7,000여 분류군의 식물 가운데 서른세 종을 계절별로 소개한 가드닝 다이어리다. 도시의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벚나무나 소나무, 무궁화 같은 식물도 있지만 산딸나무, 태산목, 노루오줌, 야고, 큐슈곤약 등 우리가 보면서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거나 일부러 찾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운 종들도 두루 소개한다. 저자는 이 식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지 상상하며 글을 썼다. 수목원에 자리를 잡은 덕에 책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사실 식물은 어디에나 뿌리를 내린 채 인간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치열하고 고된 일상에 자주 공허해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힐링이 아니라 자연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는 시각을 선사하고자 한다. 똑같은 출근길, 익숙한 산책길에서도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발견할 수 있는 초록의 순간들이 인생의 해상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정신없이 목련축제를 치르고 나면 정작 만개한 목련 아래서 찍은 내 사진 한 장 없다는 사실에 허탈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난해에 비해 직박구리가 목련꽃을 많이 뜯어 먹는 것 같다고, 유난히 덥고 습한 여름에 선녀벌레가 생각보다 많이 퍼져 화초들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고 진지하게 걱정하는 일들이 아직은 즐겁기만 하다.” _서문 중에서
서울 도심을 누비던 신문기자에서
산과 바다가 맞닿은 서쪽 숲 나무의사로
물론 수목원에서의 삶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는 뒤돌아서면 자라는 잡초를 뽑느라 하루가 다 가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가을엔 심어도 심어도 끝나지 않는 구근 심기를 무한 반복한다. 나뭇가지에 찔리고, 벌레에 물리고, 벌에 쏘이는 일도 예사다.”(5쪽) 하지만 수목원에서 일하며 저자는 “스스로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의 중요함을 배워간다. “모든 식물이 해가 쨍쨍한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것은 아니다. 노루오줌이나 홍지네고사리처럼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식물도 있고, 노랑꽃창포처럼 뿌리가 물속에 잠겨도 잘 자라는 습지식물도 있다.”(86쪽) 사람 또한 그렇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계속 나와는 맞지 않는 곳에 뿌리내리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마을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서고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선물 받으면 40킬로미터 떨어진 시내에 나가서 써야 하는 ‘슬로 시티’ 태안에서의 속도감이 비로소 딱 알맞다고 여긴다. 봄은 각종 축제로 가드너들이 가장 바빠지는 계절이지만, 시야 전체가 초록빛 필터가 쓰인 듯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악보 위를 걷는 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여름엔 신비로운 빅토리아수련을 꽃피우기 위해 뜨거운 햇살 아래 가슴장화를 입고 수조 속으로 들어간다. 이끼와 부유물을 걷어내고 변색된 묵은 잎들을 잘라내며 진흙 반죽 속에 비료를 넣어 아래로 가라앉히는 동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가을 정원을 채우는 팜파스그래스가 깊은 바람에 출렁일 때 북페어와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일에는 인구 소멸을 목격하는 지역 청년으로서 주민들에게 뜻깊은 문화생활을 제공한다는 나름의 사명감도 담겨 있다. 잠든 듯한 겨울 땅에도 할 일은 많다. 양손 가득 갈퀴와 삽을 들고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화단에 쌓인 말채나무 낙엽을 긁어모으고, 그 위로 수십 포대의 멀칭재를 덮어준 뒤 좁은 길을 따라 부산물을 다 나르고 나서야 하루 업무가 마무리된다.
“우당탕탕 굴러가다 머물게 된 곳이 천리포수목원이다. (…) 모감주나무는 영어로 ‘황금비나무(Golden rain tree)’라고도 불린다. 비를 맞아 땅에 떨어진 꽃잎이 마치 황금비가 내린 것 같아서다. 수목원 해설을 할 때 꽃이 핀 모감주나무 앞에 서면 나는 탐방객들에게 내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보여주며 이 말을 할 생각에 한 5초 전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_120쪽
“나무를 심어야 할 가장 좋은 시기는 20년 전이었다.
그다음으로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숲으로 출근하며 넓어지는 ‘나’와 ‘우리’의 개념
책에는 사계절별로 저자가 선별한 식물종들이 생동감 가득한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4월 중순부터 돋기 시작하는 붉은 순이 자랄수록 연해져 노란 잎으로 변했다가 햇살이 따가워지는 6월경에야 초록색을 띠기 시작하는 ‘삼색참죽나무’의 변화는 마법 같다. 봄꽃으로 친숙한 목련은 무려 1억 6,000만 년 전에 등장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원시 식물 중 하나라는 사실을 비롯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다. 보통 초봄에 꽃을 먼저 피운 뒤 잎이 나는 것으로 알지만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다가 여름에 사람 얼굴만 한 꽃을 피우는 목련인 ‘태산목’도 있다. 8월 한여름 옥수수 같은 열매를 맺는 ‘큐슈곤약’은 처음엔 올리브색이었던 열매가 점점 분홍색부터 파란색, 짙은 남색까지 그러데이션을 띠며 익어간다. 자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쨍한 색감에 ‘악마의 열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심각한 독성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 매년 가을 수목원 탐방객들의 후각을 사로잡는 ‘금목서’는 그 향이 만 리까지 퍼진다고 해서 만리향(萬里香)이라고도 불리며 ‘샤넬 No.5’의 모티브가 되었다. 엉킨 실타래 같기도, 뒤집어진 마녀의 머리채 같기도 한 독특한 모양새의 ‘유럽너도밤나무’, 비슷비슷한 갈색빛 속에 붉은 포인트가 되어주는 ‘화살나무’도 이색적이다. 흙 위로 솟아오른 뿌리가 시선을 붙드는 ‘낙우송’은 습지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요정이 사는 숲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를 낸다. ‘복수초’는 눈을 삭이며(녹이며) 핀다고 해 눈색이꽃이라 불리는데 말 그대로 스스로 눈을 녹인다. 마치 동물처럼 열을 내 자신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늦겨울 꽃망울 주변에 쌓인 눈을 녹이며 개화하는 것이니 자연의 신비로움은 끝이 없다.
“생을 다 바쳐 사랑해도 나무의 수명은 사람의 수명을 훌쩍 넘어서기 마련”(정세랑 추천사)이다. 우리가 고목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경외심과 안도감에 대해 저자도 말한다. 이 나무들이 몇백 년 뒤에도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하루 지나 사라지는 온갖 이슈들에 허덕이는 일은 그리 큰일이 아니라고. 그가 숲으로 출근하며 배우는 것은 같은 땅을 공유하는 생명들에 대한 겸손이고 또 그 순정한 마음을 다음 이에게 이어주려는 태도다. 수목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멸종위기 식물들의 개체를 증식하고 대체서식지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시 기준으로 보면 없는 것이 너무 많은 수목원 생활이지만 인간 중심의 사고를 뛰어넘는 자연과의 연결 속에서 삶의 지평이 새로워지고 ‘나’와 ‘우리’의 개념은 확장된다.
“수목원을 걸을 때 부러 우산고로쇠가 있는 산책로로 돌아 걷는다.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 옆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우산고로쇠 묘목 위로 볕이 드리워지는 장면을 한참 바라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걱정과 고민이 많은 사람의 불안하고 모난 마음이 어느새 둥그렇게 닳아가는 느낌이다.” _153쪽
목차
서문_초록으로 선명해지는 인생의 해상도
봄
1억 6,000만 년 전의 봄, 목련
압도적인 아름다움의 축제, 벚나무
마법 같은 세 번의 변화, 삼색참죽나무
봄에 끼얹은 휘핑크림, 산딸나무
살아남으려는 끈기, 미선나무와 통조화
울릉도 호박엿의 비밀, 후박나무
가로수의 수난, 버즘나무와 소나무
여름
여름 그늘 속 존재감, 노루오줌
알지만 모르는 꽃, 무궁화
세상에서 가장 큰 잎, 빅토리아수련
자연을 찬탄하는 일, 태산목
땅 위에 뿌려진 황금비, 모감주나무
사시사철의 매력, 배롱나무
신비로운 악마의 열매, 큐슈곤약
이것이 없다면 여름에 대한 죄악, 플록스
고목이 있던 자리, 우산고로쇠
가을
옹기종기 숨어 사는 숲의 유령, 야고
만 리까지 퍼지는 천상의 향기, 목서
막대 사탕 또는 달콤한 껌, 풍나무
가을에 달린 붉은 루비, 화살나무
출렁이는 깊은 바람, 팜파스그래스
창조와 번영의 가을, 유럽너도밤나무
열매를 깨기 위해서라면, 칠엽수
겨울
한 계절 앞서가는 꽃, 동백
정원의 크리스마스 불빛, 호랑가시나무
잠든 듯한 땅에도, 말채나무
상상의 협소함을 깨는 존재, 풍년화
솟아오르는 뿌리, 낙우송
바닷가의 거친 바람 뚫고, 삼나무
눈 녹이는 봄의 전령, 복수초와 헬레보루스
저자소개
책속에서

수목원 곳곳에 뿌리를 내린 오래된 목련을 보다 보면,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내가 죽은 뒤에도 이 나무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목원의 주인은, 더 나아가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자연이라는 점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리자 시야에는 잔잔한 호수 위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풍경이 가득 들어찼다. 오직 자연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은 것 같다. (…) 인간은 왜 사는지,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따위의, 지금까지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온갖 질문으로 가득 찬 10대의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