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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73830112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5-07-22
책 소개
“모든 사랑은 부서진 인연만을 남긴다”
‘별리’를 통해 ‘부서진 인연’으로 반짝이는 일곱 편의 중단편 소설
2023년 〈문학수첩 신인문학상〉(중편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소설 부문)에 선정된 최석규의 소설집, 《이토록 사소한 별리》가 문학수첩에서 출간되었다. 촘촘한 문장으로 인간이 지닌 모순의 간극을 관조하고, 갈수록 복잡해지는 시스템 속에 선과 악이 이질적인 형과 색으로 변하는 사회상을 탐구해 온 작가는 《이토록 사소한 별리》에서 일상에서 조용하게 금기를 위반하며 욕망을 꿈꾸는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내 안의 문어>에서 화자인 중배는 조경업 분야에서 일하기를 소망하며 조경업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에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당장의 밥벌이를 하고 있다. 복지사가 중배에게 담당자로 배정한 장애인은 우연찮게도 같은 대학을 다녔던 지선이다. 대학 시절부터 탱고 무용수로 유명했던 지선은 혼자 기동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 되어있다. 십수 년 만의 조우에 놀란 중배와 달리, 지선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맞이한다. 중배는 그녀와의 만남이 석연찮은 느낌을 받지만, 차츰 그녀와 그녀의 현실에 몰입하게 된다.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인 <계단 아래 우리>에서는 음악을 전공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숱하게 도전했지만 결국 음악을 그만두려고 하는 기타리스트가 등장한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하게 살아가는 그는 친구의 소개로 하룻밤만 보내면 되는 ‘생동성 실험’에 참가해서 30만 원을 벌 작정을 한다. 실험실에 들어간 그는 그림에 집착하는 내성적인 또래의 여자를 만나 새롭고도 낯선 현실을 마주한다.
<증발>에서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금융업계에서 최고 애널리스트로 잘나가는 남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다. 행방이 묘연해진 애널리스트의 친구이자, 전직 형사로 현재 흥신소를 운영 중인 주인공은 애널리스트 아내로부터 남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오랜 친구의 행방을 좇는 그는 예사롭지 않은 점들을 발견한다.
<내일은 해피 엔딩>에서 어느 잡지 기자는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 세 남녀의 녹취가 담긴 녹음기를 전달받는다. 녹음기 속에는 인터넷으로 친분을 쌓은 세 남녀가 한적한 국도변의 펜션을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옥상정원>은 오랜 세월 친구 사이인 중년 남성 준성과 창수가 등장한다. 창수는 공사현장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준성에게 전화해서는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 소설은 창수와 불륜 상대인 ‘유리’의 관점을 오가며 둘의 심리를 그려나간다.
<내 친구 긴코>에서 ‘나’는 산책을 결심한다. 오랜만에 외출을 감행하는 듯한 나는 휴대전화기마저 챙기지 않고 집을 나선다. 골목길을 나서며 이제 볼 수 없는 친구 영석을 떠올리며 그와 함께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회상 속에는 차마 쉽게 털어놓지 못할 서글픈 사연이 담겨있다.
2023년 문학수첩 신인작가상 수상작 <세상의 끝, 거북이, 자그레브 박물관>은 이 소설집에서 유일한 중편소설이다. 주인공 진석은 중년 남성으로 식물인간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내로부터 도망하다시피 나와, 앞날이 불투명한 의료기 부품 회사에 입사하여 뮌헨에 지사장으로 파견되어 있다. 최저가 덤핑 가격으로도 판매가 쉽지 않은 열악한 판매 시장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그에게 순수했던 20대 시절 사랑했던 여자를 닮은 묘령의 젊은 여성이 나타난다.
일곱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것은, 소설집의 제목으로도 표현된 ‘별리’이다. <세상의 끝, 거북이, 자그레브 박물관>에서 등장하는 문장인 ‘세상의 모든 사랑은 부서진 인연만을 남긴다’는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사건을 통해 독자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각인된다. 부서진 인연은 각 소설에서 다양한 양태를 띠고, 의미를 유지한다.
때문에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양한 변주와 방법으로 시도하는 탈주—불륜, 동성애, 이혼, 가출—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소시민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듯 보이면서도 이들에게 현재의 일상성은 의미가 없다. 작가는 서사의 초점을 주인공들이 이루고자 하는 ‘해방’에 겨눈다. 이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성취를 이루려는 세속적인 욕망도, 가정을 이루고 지켜내고자 하는 가족 로망스도 없다. 인물들은 자신의 내재적 본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면이 이끄는 욕망을 따른다. 작가는 ‘별리’를 통해 ‘부서진 인연’으로 남게 된 존재와 그들의 관계를 담백한 시선으로 관조하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목차
작가의 말……………… 7
내 안의 문어………………11
계단 아래 우리………………41
증발………………73
내일은 해피 엔딩………………105
옥상 정원………………137
내 친구 긴코………………167
세상의 끝, 거북이, 자그레브 박물관………………195
해설_위반과 탈주하는 인물들(이덕화 문학평론가)……295
저자소개
책속에서
혀를 조금 내밀었다. 녹진녹진해진 껌이 혀를 감싸며 삐죽 튀어나왔다. 입술을 동그랗게 하고 천천히 불었다. 작은 공기 방울이 입술에 걸렸다. 그것은 점점 커지고 붉은색은 점점 희미해졌다. 풍선 안으로 한낮의 햇살이 빨려 들어왔다. 만지면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연약한 무지개 하나가 안에 만들어졌다.
_ <계단 아래 우리>에서
“남편이 사라졌어요.”
경찰에 신고했냐는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집을 나간 것 같다고 했다. 기태의 자발적 실종이라니.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정말 그렇다면 신고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성인 단순 가출의 경우 보통은 72시간 이내에 집으로 돌아오니 일단 기다려 보라는 틀에 박힌 대답뿐일 테니까.
“그이는 증발한 겁니다.”
증발이란 단어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_ <증발>에서
“너, 그거 아니? 은행나무에도 암수가 있다는 것.”
“그래?”
“주변에 열매가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암나무야. 군것질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사람들은 열매를 서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이젠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아. 껍질 까기도 불편하고, 중금속에 절어있고, 냄새까지 구리니까. 그래서 앞으로 길거리의 은행나무를 모두 수나무로 교체한대.”
“그렇구나.”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 맨눈으로는 어린 은행 묘목의 암수를 구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야. 적어도 10년은 지나 열매가 맺힐 때쯤에나 확실히 알 수 있거든.”
_ <내 친구 긴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