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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85014371
· 쪽수 : 576쪽
· 출판일 : 2013-10-21
책 소개
목차
작품 소개 두려움 없이 쓴 소설, 두려움 없이 옮기다
1 꿈의 학회 혹은 '지퍼 터지는 섹스'로 가는 길
2 "여자는 독재자를 숭배한다."
3 똑! 똑!
4 검은 숲 가까이
5 꿈의 학회 혹은 성교에 관한 보고서
6 열정 발작 혹은 침대 밑의 남자
7 신경성 기침
8 빈 숲의 통화
9 판도라의 상자 혹은 나의 두 엄마
10 프로이트의 집
11 실존주의, 이대로 좋은가
12 미친 남자
13 지휘자
14 아랍인 그리고 기타 짐승들
15 영웅답지 않은 영웅과의 여행
16 유혹당하고 버려지다
17 꿈 작업
18 피의 혼례 혹은 시크 트란시트
19 19세기식 엔딩
작품 해설 날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리뷰
책속에서
내가 기억하는 한 나와 남편은 항상 정신분석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머리 위에 정신분석의들을 앉혀놓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결단조차도 내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머리 위에서 제우스와 헤라가 싸우고 있는《일리아스》의 트로이 병사가 된 기분이다. 그렇게 결혼은 하나의 ‘메나주 아 카트르’가 된다. 침대 위에는 나와 나의 분석의, 남편과 남편의 분석의 네 사람이 누워 있다. 분명 X등급을 받을 장면이다.
우리의 결혼생활이 뻐걱대기 시작한 건 사실이었다. 결혼한 지 5년이 되면 결혼 선물로 받은 이불마저 너덜거린다. 새 이불을 사야 할지, 아기를 가져야 할지, 상대의 광기를 영원히 감수하며 살지 아니면 결혼의 망령을 버리고, 이불도 내다버리고,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시작해야 할지 결정할 때가 온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나의 대처법은 (적어도 아직은) 바람을 피우지 말고, (적어도 아직은) 탁 트인 길을 내달리지 말고, 대신 나의 ‘지퍼 터지는 섹스Zipless Fuck’의 환상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지퍼 터지는 섹스는 단순한 섹스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정신적 이상향이다. 지퍼가 터지는 건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순간 지퍼가 마치 장미 꽃잎처럼 떨어지고 속옷이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기 때문이다. 혀들이 뒤엉켜 액체가 되고 영혼 전체가 혀 밖으로 흘러나와 연인의 입으로 들어간다.
진정한 의미의 지퍼 터지는 섹스를 하고자 한다면 상대를 잘 알아선 안 된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한 남자와 친구가 되고 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고 아내에 대한, 혹은 전처에 대한 불평을 들어주고, 그의 어머니와 아이들에 대한 불평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그에게 느낀 매력은 사라져버린다. 물론 그를 좋아하게 되고, 어쩌면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열정은 사그라진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바로 그 열정이다. 또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면, 나의 열정을 몰아내는 또 하나의 확실한 방법은 그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의 안면 경련이나 찌푸리는 모습 같은 것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그의 성격을 낱낱이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는 핀으로 고정된 곤충이나 오려서 비닐에 넣은 신문기사가 된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길 수도 있고 그를 존경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그는 나를 한밤중에 전율을 느끼며 깨어나게 만들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그의 꿈을 꾸지 않는다. 이제 그는 얼굴이 있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퍼 터지는 섹스의 또 한 가지 조건은 바로 간결함이다. 익명성이 보태어질 때 그 간결함은 더욱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