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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85153520
· 쪽수 : 458쪽
책 소개
목차
1부
2부
3부
감사의 말
참고도서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정신병을 앓는 아버지를 둔 나의 탈출구는 책
책이 나의 훌륭한 탈출구가 돼주었다. 책이 지어낸 내러티브는 일관성이 있어서 세세한 플롯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를 이루고, 필연적인 해피엔딩 안에서 모든 게 납득이 되었다. 그에 반해 현실 세계는 뒤죽박죽이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스토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이해의 실마리가 잡혔지만, 내 가족의 내러티브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 이야기처럼 여전히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너희 아빠는 어떻게 됐어?”
학교 놀이터에서 누군가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스토리를 지어냈다.
(……)
설령 내가 아버지의 병명을 알았다 해도 그 용어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과학 없이도 살아남는다. 고대 사회에서 하던 방식대로―어째서 어느 때는 비가 내리고 어느 때는 가뭄이 드는지, 별은 어디에서 생겨나고 인간이 왜 이 땅에 살게 됐는지, 설명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아이일 때는 부모가 신처럼 보이게 마련이고, 따라서 웅장한 내러티브가 필요해진다. 그저 우리 아버지가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게 들리고, 아버지를 너무 허약하고 너무 인간적인 인물로 보이게 만든다. 아버지는 비극의 영웅이 되어야만 했다. 특히나 아버지를 쥐고 흔드는 힘은 내적 힘이 아니라 외부 힘이어야만 했다.
간병인의 역할
간병인carer, 또 이 말이다. 갈수록 사람들이 나에게 이 이름표를 붙이려 하는데 나는 여전히 이렇게 불리는 게 이상했다. 간병인이라고 하면 청색 가운을 입고 고무장갑을 끼고 침대 시트를 교체하는 사람이 연상됐다. 한없는 인내와 에너지와 사랑을 품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같은 사람. 구글에서 이 말의 동사형인 ‘to care(돌보다, 간병하다)’를 검색해보니, 이 말은 독일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비탄과 슬픔을 뜻하는 고지 독일어오늘날의 표준 독일어의 ‘chara’와 관련이 있다. ‘돌본다는 것’은 괴로움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세월을 거치며 의미가 유연해져 누군가를 부양하고 보살피는 것까지 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