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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85393407
· 쪽수 : 112쪽
책 소개
목차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
책속에서
노인은 날마다 빈 배로 돌아오고 소년은 마음이 아파서 옆으로 다가가 감아놓은 낚싯줄이나 갈고리, 작살, 돛대에 둘둘 말아놓은 돛 등을 함께 옮기며 도왔다. 둘둘 말린 돛은 밀가루 포대를 이리저리 덧대서 기운 모습이 영원한 패배를 상징하는 깃발 같았다.
노인은 깡마르고 수척하며 목덜미에 주름이 깊게 팼다. 양쪽 뺨에는 갈색 반점이 번지는데, 열대바다가 반사하는 햇볕에 그을려서 가벼운 피부암에 걸린 거다. 반점은 얼굴 양쪽에서 뺨 아래로 번지고, 두 손은 커다란 고기를 잡다가 깊이 베인 흔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최근에 생긴 상처는 하나도 없다. 물고기 한 마리 없는 사막처럼 오래전에 짝짝 갈라진 게 전부다.
노인 몸뚱이는 하나같이 늙었지만, 두 눈은 아니다. 불굴의 정신과 활력이 바다처럼 새파랗게 번뜩였다.
태양은 떠오르고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나, 동쪽을 바라보아도 눈이 그렇게 안 아팠다. 시야에 들어오는 고깃배는 이제 세 척이 전부인데, 고기를 잔뜩 잡아서 나지막하게 내려앉은 상태로 멀리 떨어진 해안을 향해 들어가는 중이다.
이른 아침 햇살에 두 눈을 평생 혹사당했어. 그래도 아직 멀쩡해. 지는 해를 똑바로 바라보아도 앞이 캄캄하지 않거든. 초저녁 햇살이 훨씬 강렬한데 말이야. 하지만 아침에 햇살을 보는 건 눈이 아파.
바로 그때 군함새 한 마리가 까만 날개를 기다랗게 펴고 앞쪽 하늘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날개를 갑자기 기울여서 비스듬히 내려오더니 허공을 다시 맴돌았다.
“저놈이 뭔가 찾았어. 그냥 둘러보는 게 아니야.”
노인이 소리쳤다. 그리고 새가 맴도는 지점으로 느리지만 꾸준하게 노를 저었다. 서두르지 않아 낚싯줄을 여전히 팽팽하게 유지했다. 하지만 새가 맴도는 해류에 살며시 접근하면 고기를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낚을 수 있다.
새가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날갯짓을 멈추고 다시 맴돌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리꽂히고 노인은 날치가 수면 위로 솟구치며 필사적으로 나는 모습을 발견했다.
“만새기야. 커다란 만새기 떼.”
노인이 소리쳤다. 노인은 노를 거두고 뱃머리 아래에서 작은 낚싯줄을 꺼냈다. 철사 목줄에 중간 크기 바늘이 있는데, 노인은 거기에 정어리 하나를 미끼로 달았다. 그러고 나서 뱃전 너머로 던지고 고물 쪽 고리에 단단히 맸다. 다른 낚싯줄에도 미끼를 꿰어 뱃머리 그늘에 둘둘 말아놓았다.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노를 저으며 까만 군함새가 날개를 기다랗게 펼치고 바다 위를 나지막하게 날며 먹이 쫓는 모습을 살폈다.
노인은 청새치 한 쌍 가운데 한 마리를 낚을 때가 기억났다. 수놈은 암놈에게 언제나 양보하니, 암놈이 미끼를 먼저 먹다가 낚싯바늘에 걸려서 공포에 질린 나머지 어찌나 격렬하게 날뛰던지 금세 기진맥진하고, 그러는 내내 수놈은 암놈을 따라다니면서 낚싯줄을 뛰어넘거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수놈이 정말 가까이 맴돌아서 노인은 모양이나 크기가 커다란 낫처럼 생긴 꼬리로 낚싯줄을 끊는 건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 암놈을 갈고리로 찍고 몽둥이로 내리칠 때도, 양날 검처럼 기다랗고 뾰족하며 가장자리는 사포처럼 꺼끌꺼끌한 주둥이를 잡고 정수리를 후려쳐서 암놈이 거울 뒷면 같은 색깔로 변할 때도, 그러고 나서 소년과 함께 배로 끌어올릴 때도 수놈은 뱃전을 서성이며 맴돌았다.
그러다가 노인이 낚싯줄을 정리하고 작살을 준비하자 수놈은 배 옆에서 하늘 높이 뛰어올라 암놈이 있는 곳을 바라보곤 연보랏빛 가슴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펼쳐서 연보랏빛 널찍한 줄무늬를 한껏 내보이며 물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암놈을 지킨, 참으로 아름다운 놈이었다.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아. 차라리 꿈이라서 고기를 실제로 잡은 게 아니라면, 지금 혼자서 침대에 신문을 깔고 잠자는 거라면 좋겠어.
“그런데 인간은 패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야. 죽을지언정 굴복할 순 없다고.”
하지만 고기를 죽인 건 정말 미안해. 힘겨운 시간이 닥칠 텐데 작살마저 없어. 덴투소는 잔인하고 강인하고 유능하고 영리해. 하지만 내가 훨씬 더 영리해. 아닐 수도 있고. 무기 때문일 수도 있어.
“그만 생각해, 늙은이. 계속 나아가. 다른 놈이 오면 맞서고.”
하지만 생각해야 돼. 나한테 남은 건 그게 전부잖아. 그거랑 야구. 내가 상어 뇌수를 꿰뚫는 광경을 보면 위대한 디마지오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군. 물론 대단한 건 아니야. 그 정도는 누구든 할 수 있어. 하지만 손에 난 상처는 뼈 돌기만큼 심각한 장애물 아닐까? 모르겠어. 예전에 물속에서 노랑가오리를 밟았다가 가시에 찔려 끔찍한 통증에 시달리면서 무릎 아래가 모두 마비된 것 말고는 발뒤꿈치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으니 말이야.
“좋은 걸 생각해, 늙은이. 집으로 가는 거잖아. 배는 이십 킬로그램을 잃은 만큼 가볍게 나아간다고.”
노인은 해류 안쪽에 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
“아니야, 있어. 노에다 칼을 매는 거야.”
그래서 노인은 키 손잡이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아딧줄을 밟은 채 칼을 노에 달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나는 늙었어. 하지만 무기가 없는 건 아니라고.”
상어가 떼로 몰려오는데 노인이 볼 수 있는 건 수면을 가르는 지느러미, 그리고 고기에게 달려드는 인광이 전부였다. 노인은 상어 머리를 닥치는 대로 내리치며 아가리가 고기 살점을 여기저기서 물어뜯는 소리를 듣는데, 일부는 고기 아래쪽을 물어뜯는 바람에 배가 흔들렸다. 노인은 느낌과 소리에 의존하며 몽둥이를 필사적으로 휘두르는데, 무언가 잡아채는 느낌이 들더니 몽둥이마저 사라졌다.
노인은 키에서 손잡이를 잡아 빼, 두 손으로 움켜잡고 이리저리 마구 후려치고 내리찍었다. 하지만 상어 떼는 뱃머리까지 다가와서 한 마리씩 혹은 한꺼번에 살을 물어뜯고 물속에서 인광을 번쩍이며 방향을 바꾸다가 다시 다가왔다.
노인은 한 놈이 고기 머리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곤 이제 싸움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어는 잘 뜯기지 않는 고기 머리에 아가리를 처박고 노인은 상어 머리통을 후려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연달아 후려쳤다. 키 손잡이가 부러지는 소리에 노인은 잘려나간 끝으로 상어를 찔렀다. 그래서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에 끝이 날카롭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깊숙이 찔렀다. 상어가 고기 머리를 놓고 떨어져 나갔다. 몰려든 상어 떼 가운데 마지막 상어였다. 뜯어먹을 게 더는 없는 거다.
노인은 숨을 쉬는 것도 힘든 데다 입에서 이상한 맛이 감돌았다. 구리 같은 맛이 들척지근해서 순간적으로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많은 양은 아니었다. 노인은 입안에 괸 피를 바다에 뱉으며 소리쳤다.
“이거나 처먹어라, 갈라노. 그래서 사람 죽이는 꿈이나 꾸어라.”
나는 죄악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데다, 죄악을 확실히 믿는 것도 아니야. 내가 고기를 죽인 게 죄악일 순 있어. 내가 살려고, 많은 사람에게 먹이려고 그러긴 했지만 죄악인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모든 게 죄악이야. 죄악은 그만 생각하자. 지금 그런 걸 생각하기엔 너무 늦은 데다, 죄악을 따져서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잖아. 그런 건 그런 사람에게 맡기자고. 놈이 물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자네는 어부로 태어난 것뿐이야. 산페드로도 어부고 위대한 디마지오 아버지도 어부였어.
하지만 노인은 자신이 한 일을 하나씩 따져보는 걸 좋아하는 데다 지금은 읽을거리도 없고 라디오도 없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계속하며 죄악을 떠올렸다.
자네는 오로지 먹고살려고, 먹을거리로 팔려고 고기를 죽인 게 아니야. 자네가 고기를 죽인 건 자존심 때문이야. 자네는 어부니까. 자네는 놈이 살았을 때도 사랑하고 죽은 다음에도 사랑했어. 놈을 사랑한다면 놈을 죽여도 죄가 아니야. 아니, 죄가 더 무거우려나?
“생각이 너무 많군, 늙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