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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85393865
· 쪽수 : 416쪽
책 소개
목차
I. 대법정 15
II. 상류사회 25
III. 진행 과정 35
IV. 장거리 자선사업가 64
V. 아침에 겪은 모험 83
VI. 편안한 집 104
VII. 유령길 135
VIII. 허다한 죄를 용서하고 150
IX. 신호와 징조 178
X. 법률 서류 대필자 199
XI. 친애하는 우리 형제 213
XII. 경계하기 234
XIII. 에스더 이야기 255
XIV. 탁월한 품행 279
XV. 벨 야드 312
XVI. 톰 올 얼론스 335
XVII. 에스더 이야기 350
XVIII. 데드록 귀부인 371
XIX. 계속 움직여라 396
리뷰
책속에서
맞아요, 에이다는 잔다이스 선생을 한 번도 못 봤어요. 어릴 적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잔다이스 선생 이야기를 하실 때, 고결하고 관대한 성품이라면서 두 눈에 흘리던 눈물을, 세상에서 누구보다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을 에이다는 똑똑히 기억하고 믿었어요. 잔다이스 선생은 몇 개월 전에 에이다에게 “소박하고 솔직한 편지”를 보내서 우리가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할 생활을 제안하며 “함께 지내다 보면 비참한 대법원 소송으로 받은 상처도 대체로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어요. 에이다는 답장을 보내서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고요. 리처드도 비슷한 편지를 받고 비슷한 답장을 보낸 거예요. 잔다이스 선생을 만나긴 했지만, 5년 전에 윈체스터 학교에서 딱 한 번 만난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벽난로 앞 차단막에 기댄 두 사람을 제가 처음 봤을 때, 리처드는 에이다에게 잔다이스 선생을 “솔직하고 낙천적인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이게 에이다가 저한테 알려줄 수 있는 전부였어요.
“집주인, 크룩. 마을 사람 사이에서는 대법관이라 불린다오. 고물상은 대법정이고. 괴짜거든. 아주 괴팍해. 아,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저 노인은 정말 괴팍하다오!”
노파는 고개를 젓고 손가락으로 자기 이마를 톡톡 치면서 우리 모두 노인을 이해해야 한다는 표정으로 “저 노인은 여기가……약간 돌았거든……머리가!”라고 엄숙하게 말하니, 노인이 엿듣다 웃고는 등잔을 들어서 우리를 안내하며 말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나를 대법관이라 부르고, 내 가게를 대법정이라고 한다는 말은 정말이라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를 대법관이라 부르고 내 가게를 대법정이라 부르는 이유를 아시오?”
“톰 잔다이스가 자살한 날에 바로 저 문으로 들어왔다오. 결국엔 자살할 게 분명하다고 마을 사람 전체가 몇 달 전부터 염려하던 참에, 바로 그날 저 문으로 들어와서 쭉 걸어와, 저기에 있는 벤치에 털썩 앉더니 포도주 한 병만 사다 달라고 했다오. (당시에는 내가 훨씬 젊었다오.) ‘왜냐하면, 크룩, 지금 나는 기운이 하나도 없거든. 소송이 또 잡혔는데 이번에는 판결이 나올 것 같아’라면서 말이오. 나는 톰 잔다이스를 혼자 놔둘 수 없었다오. 그래서 길 건너 (대법정 거리를 말하는 건데) 선술집으로 가도록 설득했다오. 그리곤 뒤쫓아가다 선술집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벽난로 옆 안락의자에 편히 앉은 데다 술친구까지 있더라고. 그래서 여기로 돌아오자마자, 법학원 건물을 울리는 총소리가 일어났다오. 나는 당장 달려가고, 스무 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도 동시에 ‘톰 잔다이스!’라고 소리치며 달려왔다오.”
하녀장이 목소리를 떨어뜨려서 나지막이 속삭이듯 이어나간다.
“원래는 몸매가 좋고 풍채가 당당했거든. 그런데도 불평 한마디 안 했어. 다리를 전다는 말이나 아프다는 얘기 역시 누구한테도 하지 않았어. 그러면서도 테라스를 매일 걸었어, 지팡이를 짚기도 하고 석제 난간을 잡기도 하면서 오르내리고 또 오르내리고 또 오르내렸어,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매일 엄청 힘겹게. 어느 날 오후에 남편은 남쪽 커다란 창문 앞에 서 있다, (그날 밤 이후로 아무리 설득해도 입 한번 안 열던) 부인이 테라스에서 쓰러지는 광경을 봤어. 급히 내려가서 일으키려 했지만, 부인은 자신한테 상체를 숙이는 남편조차 거부하고 차가운 눈으로 뚫어지라 쳐다보며 말했어. ‘나는 매일 걸어 다니던 이 자리에서 죽겠어. 그리고 무덤에 들어가서도 여기를 걸어 다니겠어. 가문의 자부심이 무너질 때까지 걸어 다니겠어. 이 가문에 불행이 달려들 때마다, 불명예가 몰려들 때마다, 내 발소리를 들려주겠어!’”
와트가 쳐다보니, 로사는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숙인다.
“귀부인은 그때 그 자리에서 죽었어. 그날 이후로 유령길이란 이름이 내려오는 거야. 발을 내딛는 소리가 메아리라면, 그 메아리는 어둠이 깔린 다음에 비로소 들리는데, 오랫동안 안 들리기도 해. 그러다 다시 나타나. 누가 아프거나 죽을 때면 더더욱 확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