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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5407289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7-01-16
책 소개
목차
핫싼 가는 길 011
압록강의 분노 043
해바라기 089
눈물어린 두만강 115
사형대의 그 사람이 남긴 것 137
월드컵 열풍에 데인 사나이 165
한 탈북 소년의 편지 185
청계천 연가 245
어적도 백일몽 275
김명철 명의 도용사건 285
핫싼 들판에도 봄은 올 것이다 313
저자소개
책속에서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10대 초반의 어린 소년의 손을 놓칠세라 힘주어 움켜잡고 두만강 하구에 가까운 언덕바지에 엎드려 국경 연선일대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아직 때가 이른 듯 아까부터 땅거미가 짙어지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마음먹은 바를 결행하기에 당찬 마음을 굳힌 사나이는 어린이와 함께 강 건너 방천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움직일 줄 몰랐다. 그곳은 북 중 러 3국의 국경선이 접하는 삼각지대로서 세 나라의 국경경비부대의 동태를 살펴보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방천 쪽이나 오른 쪽으로 핫싼 쪽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본 그는 지쳐서 옆에 누워 있는 소년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종달아, 조금만 참으라이. 삼촌이 두만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 거이니까네.”
종달이라 불린 소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은 체를 했다.
“내레, 염려 놓으시라우요.”
-핫싼 가는 길-
이렇게 자연과 다투며 강을 건너기 3분, 평소 같으면 1, 2분이면 건널 수 있는 거리를 3분 동안 가노라니 시간이 많이 늦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천둥번개가 치는 순간 중국 땅이 눈앞에 보였다. 이제 20, 30초면 중국 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었다. 무석은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남은 시간 동안 몇 걸음만 발을 떼어놓으면 길게 느껴졌던 탈출의 여정이 끝나는 것이다. 여유 있게 발을 들면서 중얼거렸다.
‘이제사 중국 땅에 왔꼬망.’
무석은 앞발을 중국 땅에 딛고 뒷발을 들어 올려 막 땅에 내디디려 했다. 그때 갑자기 강 주변이 환해졌다. 번개가 번쩍 한 것이다. 갑작스런 불빛에 눈을 껌벅거리던 무석이 위기감을 느끼는 순간 저 언덕 위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려왔다.
탕 탕 탕... .
무석은 등에 큰 충격을 느끼자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듯 빗물에 범벅이 된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팔에 불끈 힘을 주고 있었다.
-압록강의 분노 -
장 형사가 남영진으로부터 두 번째 편지를 받은 후 조병구 박사를 찾아 갔을 때 용식이의 증상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조 박사는 환상 살인 욕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환자가 정신적 충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망상장애로 환상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고는 마치 현실에서 살인을 한 것처럼 대리만족을 추구하려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이코패스처럼 정신병 환자가 저지르는 살인과 어떻게 다른지요?”
“정숙한 인간은 꿈꾸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사악한 인간은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하는 것으로 범행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환상 속에서 살인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경우에만 범행이 된다는 얘기군요.”
장미향 형사는 정신적 충격이 컸을 용식이의 사정을 알게 되자 수사관으로서의 사명감과 한반도에서 소년과 삶의 터전을 함께 가졌던 동시대인으로서의 인간적 연민이 충돌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대에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한민족 후예로서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한 그 사건이 한국인인 그녀의 존재감을 예사롭지 않게 느끼게 했다. 그 어린 소년의 피맺힌 절규를 쏟아 놓듯 구구절절이 엮어 내려간 편지 내용의 행간에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바로 민족적 양심이 사라져버린 시대였다.(끝)
-한 탈북 소년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