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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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원주에서 대성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성균관대학교 화공과에 진학, 대학 산악부에 들어갔다. 첫 번째 산행지인 설악산 백담사에서 새벽 염불소리에 그의 영혼이 세차게 흔들렸다. 학교를 자퇴하고 해인사로 출가하여 해인강원에서 공부하는 학승이 되었으나 강원혁신운동을 주도한 꽤씸죄에 걸려 해인사를 나와 만행길에 올랐다. 다솔사에서 효당스님에게 차를 배우고, 광주 무등산록에서 의재선생에게서 사군자를 배웠다. 그의 호 다정茶汀에서 다茶는 효당스님에게서, 정汀은 의재선생에게서 받은 것이다. 만행 후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고 부모님의 권유로 승려 생활을 접고 인사동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죽림다회竹林茶會를 만들어 다도를 보급했다.
1979년 제자들과 홍천강변으로 그림 스케치를 하러 갔다가 강에 매료되어 다음해 서울 생활을 접고 홍천강으로 내려가 집을 짓고 수리재水理齋라는 현판을 달았다. 집 둘레 벽돌에는 물고기 1,080마리를 그려 넣었다. 1984년 9월 1일, 홍천강 범람으로 집과 물고기 벽돌이 다 떠내려갔다. 다시 만행길에 올라 1년여간 전국의 섬을 떠돌다가 마지막으로 울릉도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탔다. 그런데 풍랑에 어선이 침몰하여 함께 승선했던 선원 여럿이 죽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살아야 할 사람은 죽고 죽어도 될 그는 목숨을 건진 것이다. 그때 뭍으로 나가면 결혼을 해 보리라 생각했는데, 마침 중일일보 르뽀기자로 취재차 만난 여성과 가족이 되어 홍천강으로 돌아와 수리재를 다시 짖고 정착했다.
1992년 다도협회가 기획한 중국 방문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갔다가 간난신고 끝에 꿈에 그리던 티베트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3년 아내의 허락을 받고 베이징 중앙미술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2년간 목판화를 전공했다. 마침 기숙사 옆방에 연수차 와 있던 티베트 교수에게 티베트어를 배우고 1995년 라싸에 있는 티베트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수인목판화와 탕카를 연구했다. 비로소 늘 가슴에 묻어둔 ‘쌍어문雙魚文’ 화두를 들고 틈나는 대로, 연혼이 이끄는 대로 티베트와 실크로드를 답사하며 사진을 찍고 연구를 하였다. 1997년에는 수리재에 한국티베트문화연구소(https://cafe.daum.net/tibetsociety) 현판을 걸고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2015년 어느 날, 아내가 이승을 떠나면서 정규 교육과정에 미술 수업이 없는 네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아내의 말대로 안나푸르나 설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있는 티베트 난민촌 학교로 갔다.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네팔 정부에서 발급한 미술교사 자격증을 받아 아이들에게 미술을 지도한 지 올해로 10년,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티베트 난민촌 아이들의 그림 속에서 부처를 만나 행복한 노년을 보내며, 매년 본인의 그림과 아이들의 그림을 함께하는 전시회도 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도피안사, 2000), 『티베트 역사산책』(정신세계사, 2003), 『티베트 문화산책』(정신세계사, 2004), 『혜초 따라 5만리 상·하』(여시아문, 2005), 『바람의 땅 실크로드 상·하』(실크로드문화사, 2008), 『실크로드 고전 여행기』 - 대당서역기, 왕오천축국전, 불국기,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송운행기, 파미르고원의 역사와 문화산책(1질 6권, 글로벌콘텐츠, 2013), 『네팔의 역사와 문화산책』(글로벌콘텐츠, 2019), 『나마스떼! 김 써르』(글로벌콘텐츠, 2019년) 등이 있으며,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고 있다. 또한,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티베트고원을 가다」, MBC 다큐 「샤먼로드」 등의 기획 및 고문 역할을 맡아 티베트와 실크로드에 대한 연구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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