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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85967042
· 쪽수 : 228쪽
· 출판일 : 2014-12-24
책 소개
목차
1. 곤룡포의 두 남자
2. 취향루의 밤과 낮
3. 면복을 구하라
4. 가슴 속의 봉잠
5. 경마장에 간 왕
6. 침선장 공진
7. 어침장 돌석
8. 왕비는 누구의 여자인가
9. 물 밑 소용돌이
10. 두 사람의 외출
11. 나 홀로 가례식
12. 왕비의 의대
13. 소의의 반격
14. 붉은 눈물
15. 왕의 눈길을 잡아라
16. 불타는 의복
17. 수직으로 떨어진 화살
18. 중전을 둘러싼 음모
19. 돌석과 공진의 대결
20. 진연에 나서다
21. 질투의 회오리
22. 폭풍전야
23. 폭풍의 눈
24. 남몰래 흐르는 눈물
저자소개
책속에서
왕비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대는 꿈이 있소?”
왕비의 난데없는 물음에 공진은 말문이 막혔다. 순간, 왕비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촉촉하게 눈물을 머금은 왕비의 눈에서 작은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공진은 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정지한 시간 속에 멈춰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영원히 끝나지 않을 찰나의 순간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왕비는 애써 눈물을 참느라 눈가에 가느다란 름이 잡혔다. 왕비의 눈두덩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공진은 잠시 손에서 노를 놓고 품속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왕비에게 건넸다. 왕비는 말없이 손수건을 받았다. 왕비가 손수건을 펴자 아름답게 수놓은 제비꽃이 보였다. 왕비는 왈칵 눈물을 쏟더니 수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공진은 왕비의 흔들리는 어깨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부용지의 잔잔한 수면에 갑자기 작은 파문들이 여기저기 일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왕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중전조차도 말이다.” 왕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내게 중전은… 형님이 남겨주신 고기 한 점 같았다.”
순간, 돌석은 중전을 멀리하는 왕의 태도가 선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내 그 많은 문무백관을 갈아치웠지만 너만은 남겨둔 이유를 아느냐?”
“……”
돌석도 왕의 속내가 궁금했다. 선왕이 승하하고 나서 궐내 많은 사람이 숙청되고 축출되었지만, 실제로 돌석 자신만은 살아남았다.
“너는 내게 처음으로 내 것을 만들어준 자이기 때문이다. 알겠는냐?”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고개를 숙이는 돌석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제야 돌석은 자신이 궐 안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알았다. 돌석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딱히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조선의 왕이, 돌석 자신을 의미 있는 존재라 말하고 있었다. 돌석은 너무 큰 감동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왕을 위해서라면 당장 죽어도 후회 없었다.
공진의 말에 깜짝 놀라 왕비는 팔과 다리에 힘을 주었다. 공진은 권척을 풀어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닿을 듯 말듯 왕비의 속저고리를 스쳤다. 손가락 끝이 몸에 가까워질 때마다 왕비의 가슴에 파문이 일었다. 공진의 손길은 어느새 목덜미를 따라 허리로 내려왔다. 왕비는 강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 강렬하면서도 두렵고, 위험하면서도 달콤한 감각은 대체 무엇인가. 왕비는 가벼운 어지럼증을 느끼며 공진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공진의 손길은 발끝에서 허벅지로, 허리에서 배꼽으로, 겨드랑이를 지나 가슴을 감싼 치맛말기까지 구석구석 스쳐갔다. 왕비는 머릿속이 아뜩해져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