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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86851944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19-05-2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_차단하지 않으며 출구를 만들기(김지원)
김고은편_ 내 길을 찾아 삼만리
1. 말을 찾아 삼만리
모범생의 이름표를 달고 입을 꾹 다물다 ┃ 내 말이 갖고 싶다 ┃어딘가에 유토피아가 있지 않을까? ┃ 내 말을 찾아 삼만리
2. 참견의 힘
쓰레기봉투만 찾지 못한 게 아니라 ┃ “왜 혼자 밥 먹으러 가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 참견대장 이동은┃열심히 한다고 능사는 아니야
3. 공자 씨, 그동안 오해가 많았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동양고전 공부 중 ┃ 깍두기의 피, 땀, 눈물 ┃공자 씨, 그동안 오해가 많았습니다 ┃정답은 없지만 답은 있다┃엉덩이가 커졌다
4. 나는 친구가 많다
어려운 책 읽기는 어려워 ┃ “저는 마지막에 말할게요” ┃거리를 유지하기 ┃ 조급했던 마음
5. 길드다 2018, 마이너스 500만원
판단근거가 있을 때, 판단근거가 없을 때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만이 아니다┃돈이 굴러 그 액수가 배가 되지는 않았지만
6. 왜 그렇게 오래된 책을 읽어?
삶의 양식으로서의 철학 ┃ 아우렐리우스의 ‘자유’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자
김지원편_ “왜?”라고 질문하기
1. 수단이 되는 삶, “왜?”라고 질문하기
여행이라는 목적 ┃ 무엇을 위해? ┃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하루 ┃“왜?”라고 질문하기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수다
동천동의 작은 목공소 월든 ┃ 그러나 여기는 소로의 월든이 아니다 ┃무엇이 더 나쁜 일일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3. 평양냉면과 퇴사
인생은 한 번뿐 ┃ 근데 너도 똑같잖아? ┃ 평양냉면과 퇴사 ┃조금 더! 다양하게
4. 여전히, 쪽파가 철탑을 이길 겁니다
밀양을 만나다┃ 나의 문제와 너의 문제의 경계┃ 내가 우리여야 할 이유 ┃ 법 앞에서
5. 나의 청년 모임 약사(略史)
술로 지은 집 ┃ 청년 모임의 전사(前史), ‘해봄’ ┃석운동 88-1번지에서 ‘석운동’으로 ┃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길드다, 이게 될까?
6. 펜타토닉 스케일을 넘어!
Smells like teen spirit┃ 도피와 자유의 차이 ┃ 읽어 버리는 ┃노트를 발견하는 자유
이동은편_ 무지에서 예술로
1. 나는 어떤 사람인가? : 무지(無知)편
기름보일러의 충격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아 ┃밀양을 알게 되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2.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문탁네트워크와의 만남편
백수는 좋지만… ┃파지스쿨에 오다┃파지사유 매니저가 되다┃공부를 하는 이유┃문탁넷에 처음 온 친구들에게
3. 나에게 뉴욕은
책으로 뉴욕을 먼저 만나다┃직접 만난 뉴욕의 모습들 ┃뉴욕에서의 만남 #1 마르크스 ┃뉴욕에서의 만남 #2 해완┃여행을 마치고
4. 나에게 예술은
어쩌다 예술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여러 일들을 함께 진행하는 것 ┃예술과 일은 다르지 않다
5. 나의 작업들
에필로그_‘다른’ 우리의 탄생(김고은)
리뷰
책속에서
여느 때와 같이 밥 시간이 되어 주방으로 가려는데 뿔옹샘이 말을 거셨다. “왜 혼자 밥 먹으러 가요?” 아주 친한 몇몇의 사람이 아니면 같이 밥 먹는 게 불편해 차라리 굶고 마는 내가, 한 공간에 있었을 뿐이었던 사람에게 함께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날 보고 뿔옹샘은 이어서 말했다. “공부방에 같이 있었는데 같이 먹어야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같이 밥을 먹는 사이가 된단 말인가? 공간에 오래 있으면서 스스로가 터전에 머무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전부가 아닌 모양이었다.(「김고은편_내 길을 찾아 삼만리」 중에서)
“그러니까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일종의 ‘수련’을 한 것이었다. 이 ‘수련’은 그의 말마따나 마음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떤 일이 자신의 능력치를 벗어나 있을수록, 당면한 문제일수록 시선이 멀리 가지 못하고 눈앞에 고정되기 쉽다. <길드다> 친구들과 함께 일하다가 종종 버거운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감정이 제어가 안 되거나,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곤 했다. 이럴 때 나의 마음이 옹졸해지는 것은 시야가 좁기 때문이었다. 만물이 불변하는 듯이 특정한 의견을 덧붙이고, 외부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듯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따라 공간적으로 넓혀서, 시간적으로 늘려서 현재를 관조하고 나면 나를 괴롭히는 판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협소하고 고정된 판단에서 벗어나서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그마한 씨앗과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현실적인 조건이 달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의 마음의 변화가 지금 처한 문제를 다르게 ─ 혹은 제대로 ─ 만날 수 있게 한다.”(「김고은편_내 길을 찾아 삼만리」 중에서)
현대인인 우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은 매우 적고, 돈을 벌면 그뿐이다. 돈을 통해 더 쉽게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회에서 순수하게 목수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많은 직업들이 내 삶에 필요한 순수한 기능들을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돈이라는 매개수단을 통한 사회적 관계의 확대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소비에 의해 정향되는 노동의 목표로부터 탈주하기 위해서는 분명 이 의존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끌어내야 한다. (......)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인생이 두 번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인생은 언제나 한 번뿐이었다! 그런데 왜 한 번뿐인 인생을 개인적 소비와 소비를 위한 노동으로 일축해야 하는가. 진짜 인생이 한 번뿐이라면, 더 상상하고, 더 자유로워야 하는 것 아닐까? “You Only Live Once”는 소비로 축소되지 않는, 조금 더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점유해야 할 문장이다. (「김지원편_“왜?”라고 질문하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