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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사/불교철학
· ISBN : 9791187280286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18-09-11
책 소개
목차
머리글 | 선禪의 매혹
제1장 선사들은 왜 이리 과격한가
아상我相의 동일자同一者와 무無의 심연深淵
01 자칫하면 사자에게 물리는 수가 있다!
02 백척간두 아래, 허무의 심연
03 정법안장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제2장 한 물건도 없는데, 부처는 어디 있는가
선禪의 시원始原과 여래장如來藏
01 홍인과 혜능, 3중의 단절
02 여래장과 청정법신
03 청정법신에서 똥 냄새가 진동한다!
제3장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겠다고?
즉심즉불卽心卽佛과 평상심平常心
01 즉심즉불의 두 마음
02 과거를 구원하는 법
03 평상심, 혹은 표면의 깊이
제4장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
무정불성無情佛性과 잠재성의 바다
01 잣나무가 성불할 때까지 기다려라
02 기왓장의 설법을 왜 그대는 듣지 못하는가
03 고양이의 불성, 로봇의 불성
제5장 말해보라, 목구멍과 입을 닫은 채!
불가능한 도道와 진정한 반복
01 침묵마저 상투구가 될 수 있으니
02 오르페우스와 불가능한 경전
03 진정 말해야 할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제6장 아니, 목불을 태워서 사리를 얻겠다고?
우주를 흔드는 웃음과 유머가 만드는 세상
01 목불을 태우고, 불상에 올라타다
02 농담관계와 회피관계
03 웃음을 모르는 자들을 조심하라!
제7장 손가락 하나로 세운 세계, 주장자가 집어삼키다
손가락 끝의 폭풍과 세계의 생멸
01 손가락을 세울 때마다 하나의 세계가
02 문학과 선은 어디서 갈라지는가
03 어느 세계에도 머물지 말고 손가락을 세우라
제8장 ‘있음’을 아는 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세계의 특이성과 존재자의 존재론
01 존재의미, 혹은 ‘있음’을 안다는 것
02 특이점의 존재론
03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려면
제9장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와 단 하나만 아는 바보
존재자 없는 존재와 존재 없는 존재자
01 이런 바보들! 이런 백치들!
02 백치 달마와 혜충의 무봉탑
03 백치와 바보는 어디서 만나는가
제10장 고고한 발밑이 한바탕 망신이지
순수의 궁지窮地와 무위자연無爲自然
01 순수의 빗자루가 쓸어버리는 것들
02 유위에 반하는 무위
03 묘봉정 아래의 무위자연
제11장 묘희세계를 가루가 되도록 부수어버려라!
무상한 견고함과 조화를 넘어선 조화
01 무너지기에 무너지지 않는 법신
02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어쨌다구?
03 고요한 세계와 소란스런 세계
제12장 귀향, 혹은 부모도 태어나기 전의 고향
본래면목本來面目과 고향의 지질학
01 고향을 잃은 자와 잃을 고향도 없는 자
02 지리학적 고향에서 지질학적 고향으로
03 본래면목, 부모 이전의 고향
제13장 병들지 않는 사람이 병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병든 신체와 고통의 생리학
01 고통의 참을 수 없는 무의미
02 병, 내 몸에 날아든 날개의 씨앗
03 병들지 않는 자, 바꾸어가며 병드는 자
제14장 간택하지 않음 또한 하나의 간택인데…
분별 없는 윤리학, 차별 없는 존재론
01 지극한 도의 궁지
02 분별은 공동체를 잠식한다
03 존재론적 평등성
제15장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모두인 하나와 ‘지금 여기’의 개체성
01 ‘하나’를 향한 의지들
02 ‘하나’를 찾는 아주 다른 길들이 있으니
03 지금 저 꽃 속에서 만법을 보라
제16장 부처를 만났을 때, 어떻게 죽여야 합니까
초월적超越的 경험과 초험적超驗的 경험
01 그런데, 부처를 만나야 부처를 죽이지
02 나를 죽이라며 머리를 내밀지만
03 부처를 만났다고 믿는 이들이여!
04 초월적 경험과 초험적 경험
05 초험적 경험과 선禪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사실 임제 자신도 스승인 황벽黃檗(?~850)에게 불법을 묻다가 뺨을 맞길 세 번이나 거듭한 바 있다. 왜들 이러는 것일까? 유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뭘 그리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과격하게 멱살을 잡고 죽여버리니 살려주니 하는 살벌한 언행을 하는 것일까? 정상좌에게 질문한 좌주나 흠산이나, 물었을 때는 이미 그 안에 나름의 답이나 견식을 갖고 있었던 셈인데, 질문으로 그게 드러나자마자 달려들어 박살을 내준 것이다.
그런 어설픈 식견이야말로 선하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고, 불도를 보지 못하게 하는 장막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격한 행동이나 당혹스런 말을 통해 선사들이 겨냥하는 것은 앞에 있는 학인의 생각이나 견해를 깨부숴주는 것이다.
아상이란 사실 얼마나 강고한가? 사라졌다고 믿는 순간에도 의연히 살아남아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게 아상이다. 그러니 아무리 세심하게 설득하고, 아무리 진심으로 수긍해도 사라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다. 선사들의 언행이 파격적일 뿐 아니라 저리 ‘과격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감각기관을, 신체 전체를 검은 당혹 속으로, 절벽 밑의 심연으로 밀어 넣는 강밀함 없이는 결코 깨부수어줄 수 없는 것이 아상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문제는 그래도 말하지 않고선 불법을 전할 도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깨달음을 얻은 직후의 석가모니가 망설이다 세간으로 내려오는 것이 그렇듯이, 깨우친 분들의 자비심은 심지어 상대방의 근기나 상태에 맞추어 적절한 말을 구사하여 가르침을 펴고자 한다. 그렇기에 불교에서 사용되는 모든 개념들은,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하고자 말했던 것일까를 보지 않으면 오해하기 딱 좋다. 특정한 조건에서 행해진 언어적 방편이기에, 조건이 달라지면 맞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트집을 잡으려 맘 먹으면 어떤 개념도 자가당착에 빠지는 걸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는 깨달음을 얻은 이들의 말도 철저하게 그 연기적 조건에 따라 이해해야 함을 뜻한다. 더없이 불교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