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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트렌드/미래전망 > 트렌드/미래전망 일반
· ISBN : 9791187289074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6-10-3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비즈니스가 던진 질문에 라이프스타일이 답하다
1장 결정장애 공화국과 ‘추천사회’ (정유라)
[KEYWORD 평타]
결정장애의 처방전 ‘추천’
정답 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
평타를 위하여
세대별 평타공작소, 또래 커뮤니티
평타를 제대로 치면 ‘국민 아이템’
‘평타’에는 시대의 욕구가 담겨 있다
2장 드라마까지 간섭하는 참견쟁이들 (염한결)
[KEYWORD 간섭]
욕하며 보는 드라마, 욕하며 보는 광고
뜨는 예능을 보면 뜨는 시장이 보인다
참견하고는 싶지만 참견받기는 싫다
오지라퍼들, 온라인으로 이동하다
오지라퍼들에 대처하는 자세
3장 ‘나’를 코스프레하는 ‘우리’의 일상 (이효정)
[KEYWORD 코스프레]
‘나’를 코스프레하는 사람들
바쁘고 지치고 답답한 일터의 하루
소외된 주체들의 유체이탈 : 맞춰주되 몰입하지 않는다
집단 속의 안정감, 집단 속의 압박감
현실 속 잃어버린 ‘나’를 찾는 뿌듯함
‘우리’를 코스프레하는 ‘나’를 찾다
4장 너와 나의 연결고리, 선물 (이원희)
[KEYWORD 선물]
지옥이라 불리는 홀리데이
우리는 김영란 법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라뒤레 마카롱이 뜬 이유
내가 사기엔 돈 아까운 센스 있는 소모품
기프티콘과 스타벅스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우리 제품도 작은 선물이 될 수 있을까?
5장 덕후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백경혜)
[KEYWORD 자기만족]
덕후는 트렌드가 아니다
‘오타쿠’가 아닙니다, ‘덕후’라 불러주세요
한없이 가벼워지는 덕, ‘Why so serious?’
목표는 ‘덕후 만랩’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것’
‘Copy & Taste’, 너와 나의 취향을 카피하다
의무감이 아니라 재미감
덕후 아파트, 우리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덕템에 길들여질지언정 마케팅에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6장 한마디에 대한 수고, 한 컷에 대한 수고 (신수정)
[KEYWORD 인생사진]
알 듯 말 듯한 그들의 ‘편안함’
실은 너무도 부담스러웠던 당신과의 대화
전 인생을 통틀어 말하는 특별한 한 잔의 커피
프레임 안의 이야기: 어떤 사진을 남길 것인가
프레임 밖의 이야기: 한 컷을 위한 기꺼운 수고에 대하여
에필로그 | 한국남자 송 씨의 남 부(끄)럽지 않은 삶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도대체 어떤 기준이 있어야 본 적도 없는 상대와 ‘우리’로 엮여 적합함을 논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곳 ‘추천사회’에서는 이 어려운 과업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합의된 모종의 ‘기준’이 있다는 뜻이다.
“남자 ㅍㅌ치는 코트 추천 좀 30만원 미만으로”
“패딩 추천 좀, 코오롱패딩 네파패딩 둘 다 ㅍㅌ? 뭐가 더 나은지 골라주세요”
“데일리로 바를 립글로즈 색깔로 로즈핑크 ㅍㅌ 치겠죠?”
위의 예시에는 우리가 앞서 확인했던 추천사회의 커뮤니케이션 용어가 모두 사용되고 있다. “추천”을 바라고, “골라주길” 요구하며, “괜찮냐”고 묻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ㅍㅌ”라는 조건을 걸었다는 것이다.
ㅍㅌ, 피읖티읕은 평균타율을 뜻하는 ‘평타’의 초성을 따온 온라인 용어다. 네이버 오픈 국어사전에 따르면 평타는외모, 성적, 능력 따위가 평균, 보통 정도 되는 수준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평균타율 정도는 된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평균 이상이면 ‘ㅅㅌ(상타)’, 평균 이하면 ‘ㅎㅌ(하타)’라고 쓰인다.
위의 글 중 누구도 ‘ㅅㅌ’나 ‘ㅎㅌ’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패딩도, 코트도, 립글로즈도 모두 평타를 목표로 한다. 개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비만 할 것 같은 오늘날의 소비자들이 ‘평타’를 바란다니 놀랍다. ‘고작’ 평타나 치자고 귀한 시간을 들여 인터넷상에 추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왜 상타가 아닌 평타를 목표로 할까?
(중략) 국어사전에서 무난함은 ‘이렇다 할 단점이나 흠잡을 만한 것이 없다’로 규정하고 있다. 흠 잡을 것이 없는 무난함과 평균은 되는 평타는 어떻게 닮았을까? ‘평타’와 ‘무난함’의 공통점을 알아보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사용되는 이들 단어의 공통 연관어를 확인해보았다.
무난함과 평타는 ‘튀지 않는 것’, ‘안정적인 것’, ‘과하지 않은 것’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다. 무난함이 단점이나 흠잡을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을 지닌다면, ‘튄다’는 것, ‘과하다’는 것이 ‘평타’를 목표로 하는 ‘추천사회’에서는 단점이나 흠으로 여겨진다는 의미로 읽힌다.
무난함에 대한 선호의 이면에는 단점을 지적받고 싶지 않다는 속뜻과, 장점을 돋보이려고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이 아닐까? ‘평타’라는 추천 필터를 거침으로써 사람들은 가장 튀지 않고 주변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안정적인 ‘보호색’을 검증 받는다. 이미 많은 이들로부터 안전하다고 검증 받은 평타는, 구매후기가 2000개 달린 상품처럼 공신력을 갖고 ‘나’를 안심시킨다.
보호색 속에서는 혼자 튀어서 비난받을 위험이 없다. 익명의 글쓴이가 되어 추천을 부탁하는 ‘나’는 가장 전위적인 선택을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나’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평타는 친다’는 안심이며, 그 안심은 무리 안에서 튀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 1장, 결정장애 공화국과 ‘추천사회’
사람들이 참견을 거부하기 시작하자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참견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참견을 거부당하기는 했을지언정 중단할 수는 없는 ‘오지라퍼’들은 이내 새로운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바로 온라인으로의 이동이다. 주변 사람 또는 지인이 아닌 제삼자의 삶에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는 일면식도 없는 페이스북의 ‘친구’에 대한 간섭이나 온갖 사회현상에 대한 개탄어린 비평이 난무하고, 인스타그램에는 모르는 집 아이에 대한 ‘랜선이모’들의 열광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양태는 최근 들어 드라마나 예능을 향한 시청자들의 행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기존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불호 정도가 전부였다. 좋으면 계속 보면서 지지하고, 싫으면 욕하고 안 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청자들이 좋다 싫다 비평하는 것을 넘어 직접 콘텐츠에 참견하고 개입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제작 소식이 전해지면 온라인상에서 네티즌끼리 가상캐스팅을 하고, 이것이 화제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가상캐스팅은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들을 시청자들이 가상으로 미리 선택해보고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는 일종의 신종 놀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가상 놀이에서 머무르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선택이 실제로 반영되기를 바라고 제작자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2016년 초 방영된 〈치즈인더트랩〉이라는 드라마는 기존에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연재되던 웹툰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웹툰에 나오는 캐릭터들에게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는 캐스팅에 대한 간섭으로 이어졌다. 자신들이 가상캐스팅을 한 배우가 실제로 드라마에 투입되면 환호했지만, 자신들의 예상과 어긋나면 비난을 하고 반대 운동까지 했다. 이런 팬들은 ‘시어머니’와 드라마 제목인 ‘치즈인더트랩’을 합쳐 ‘치어머니’라 불리는 것도 불사하며 드라마가 종영할 때까지 간섭을 멈추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오지랖이 활발한 분야로는 예능도 빠뜨릴 수 없다. 2016년에 〈무한도전〉은 1990년대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인 젝스키스의 컴백 콘서트를 기획했다. 콘서트의 핵심 컨셉은 과거의 예능 코너 중 하나였던 ‘게릴라 콘서트.’ 공연정보를 사전에 철저히 차단한 채 공연당일 몇 시간 동안의 홍보활동만으로 콘서트 관중을 모으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기자의 스포일 기사 때문에 공연소식이 사전에 유출되어 기획이 무산되기에 이르렀고, 그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은 스포일을 한 기자에게 무차별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와 함께 기획에 대한 비밀을 지켜주자고 시청자들끼리 자발적으로 홍보하는 현상도 일어났다.
- 2장, 드라마까지 간섭하는 참견쟁이들
주부 코스프레를 인증하는 다양한 글들을 모아보면 특징적인 말들이 눈에 띈다. ‘주부 코스프레’, ‘주부모드’ 혹은 ‘주부놀이’로 칭하며 ‘특별한 역할 중’임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상 맥락 속에서 이러한 말들을 설명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들은 저녁밥, 반찬, 빨래, 청소 등 어떻게 뜯어봐도 평범한 집안일이다. 대체 ‘집안일’과 ‘주부놀이’는 왜 같이 쓰일 수 없을까?
데이터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뿌듯함’이라는 감정이다. 앞서 본 직장인의 코스프레는 지치고 힘든 부정적인 감정을 토로하는 용도였다면, 주부의 코스프레는 뿌듯함을 낳는다. 마트 장보기보다는 ‘직구’가 훨씬 뿌듯하고, 청소보다는 ‘인테리어’가 훨씬 뿌듯하듯, 집안일보다는 주부놀이가 더 뿌듯하다. 이처럼 엇비슷해 보여도 해놓고 나면 훨씬 뿌듯한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주부놀이 뿌듯뿌듯해~ 나름 플레이팅도 하구ㅋㅋㅋ”
“현모양처 코스프레~ 대청소를 했어요! 청소 후엔 아메~”
“성공적인 본격 주부 코스프레!”
현재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쯤 아이를 보낼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생인 ‘맘’들 대부분은 그 어머니 세대에 비해 ‘나’라는 자아가 강한 편이다. 나는 대학을 나왔고, 유럽 배낭여행에다 어학연수 시절을 보낸 인재에, 결혼이나 출산 전에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해온 경력도 갖춘 경우가 많다. ‘직구’가 일상이 될 정도로 이미 해외에 익숙하고, 웬만한 브랜드도 알고, 세련됨을 갖췄다는 것, 해볼 것 다 해보고 알 것 다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앞에서 본 맘 커뮤니티의 아이디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83v시우맘v불광동”
이 아이디에서 표현되는 정체성에서는 어디에도 ‘나’라는 자아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 나타나는 자아는 육아와 집안일로 지친 괴로운 마음을 기댈 곳을 찾아 까다로운 가입절차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정도다. 서로 공감해주는 ‘우리’가 되어 모이기를 선택하고 받아들여진 순간, 어디에도 ‘나’는 없게 된다.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대신 항상 지치도록 비교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속성이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없다. 정작 옆집 이웃은 내 소식을 모를 수 있어도, 커뮤니티를 타고 이 지역 전체에서, 아니 전국에서 나와 같은 집단에 속한 우리가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여행지로 휴가를 가는지 싫어도 보고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습격 속에 점점 사라져가는 ‘나’는 그래서 인정받기 위해 자꾸 그럴듯한 ‘인증’을 하기 시작한다. 그 일환이 예를 들면 ‘주부놀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끝나지 않는 지루한 반찬 만들기와 거실 청소, 어제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의미 없는 오늘의 집안일. 그러나 이조차 ‘간만의 주부놀이’가 되는 순간 오늘의 하루는 어제와 다를 수 있다. 인정받는 ‘나’는 집안일 따위에 지친 전업주부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표방하는 주부는 또 다른 의미의 능력자를 의미한다. 내가 인정하는 나는 같은 ‘주부’라도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니 코스프레할 수밖에 없다.
- 3장, ‘나’를 코스프레하는 ‘우리’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