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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91187373278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17-10-02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연표
격동의 1971년
첫 번째 마당
언론 자유 운동에서
사법부 파동까지
두 번째 마당
광주 대단지 사건에서
실미도 사건까지
세 번째 마당
유신 쿠데타 계기는 1971년 대형 사건?
박정희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네 번째 마당
대통령 선거 (1)
‘40대 기수론’이 준 신선한 충격
다섯 번째 마당
대통령 선거 (2)
막상막하 속에 특별 카드 꺼낸 박정희
여섯 번째 마당
대통령 선거 (3)
박정희에게 남은 방법은 쿠데타뿐이었다
일곱 번째 마당
1971년 대선 직후 총선에서
사상 최초로 균형 국회 출현
저항 세력의 무력화
첫 번째 마당
사법부 예속과
민주공화당 친정 체제
두 번째 마당
유신 쿠데타 직후
고문 앞세운 야당 짓밟기 공작
세 번째 마당
군을 유신 체제에 절대 복종케 한
윤필용 사건
네 번째 마당
테러와 탄압, 회유로
언론 길들이기
다섯 번째 마당
교련, 위수령, 대량 제적, 강제 입영
최악의 사태 만난 대학가
여섯 번째 마당
한국형 군국주의 파시즘에
대중은 어떻게 반응했나
일곱 번째 마당
유신 쿠데타 막을 수 있었던 건 미국뿐?
미국은 한국 민주주의에 큰 관심 없었다
나가는 말
책속에서
내 생각을 말하면, 운동권과 달리 박정희 정권은 1971년을 전후해 있었던 사회적 갈등이나 민주화 요구를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전태일 분신 사건에 대해서는 노동청장이 처리할 일로 치부했고, 광주 대단지 사건에 대해서는 관련 부처 차관 몇 사람이 대책을 협의한 것만 자료에 나온다. 일반 시민들도 전태일 분신 사건은 잘 몰랐고, 광주 대단지 사건은 ‘일회성 난동’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신 쿠데타에 왜 저항이 없었느냐 하는 문제는 그것대로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고 논의해야 한다. 도대체가 해방 이후로 따지면 27년이 되고 정부 수립으로 따지면 24년이 되던 때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고 1인 유일 독재 체제를 만들려고 했는데 학생이건, 언론이건, 야당이건 왜 저항이 없었는가는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과 직접 상관된 이야기지만, 어째서 박정희가 1972년 10월 17일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공화국 헌법을 짓밟고 1인 독재 체제를 수립해도 저항 세력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을까.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나도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양쪽에서 다 맞아봤는데 보안사 쪽은 정말 무지막지한 자들이었다. 보안사 쪽은 대개 젊더라. 20대들이더라. 그에 비해 중앙정보부 쪽은 30대, 40대, 50대로 노련한 자들이었고 고문을 해도 방법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