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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8047475
· 쪽수 : 728쪽
· 출판일 : 2018-08-10
책 소개
목차
단풍동 가계도 6
어른이족의 종류 10
어른이들의 삶과 세월 12
단풍동의 여덟 샘과 마을 20
어른이들의 세상 22
시작 24
1부
숨: 무녀 영기 28
은: 짐승과의 만남 42
골: 저잣거리 56
짜: 네 이름은 준호 79
기: 하전의 귀향 91
의: 기남의 성년식 110
단: 훈장 하전 131
풍: 신문물 147
2부
나: 순부부리의 장례식 162
무: 준호는 의사 179
한: 미단의 인형 199
그: 이안과 외삼촌 미곤 217
루: 위령제 238
빗: 저쪽 세상에서 온 사내아이 255
겨: 연토의 성년식 269
앉: 연토의 결혼례 280
은: 장저훤과 김점례 299
바: 잡혀가는 준호 315
위: 액막이 인형 소동 329
3부
틈: 여행의 시작, 호랑가시동 354
맑: 청매동 371
은: 붓동과 살촉동 390
샘: 거대한 숲 411
물: 아후밀탄을 향해 429
한: 사막을 통과하다 451
줄: 제울에서 469
4부
기: 귀향 516
찾: 행복의 의미 546
으: 삼신각 572
시: 전쟁에 대한 불안 609
거: 또다시 밝은샘마을로 618
든: 전쟁 651
새로운 시작 683
해설│ 환상문학의 진경(眞景), 그 가능성을 찾아서 687
윤영수의 『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와 “단풍나무”의 이야기
작가의 말 725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무리 들어봐도 시계가 치컥대며 하는 말은 딱 한 가지야.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알아? 알아? 알아?’ 시계는 밤낮으로 흘러가는 모든 시간이 똑같이 중요하며 똑같이 귀하다고 종주먹을 대. 빛바위가 자고 모든 생명들이 잠든 순간에도 그는 깨어 건방을 떨어. 자기가 자지 않고 시간을 쟀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흘러갔으며 그 시간들은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며 야죽거려. 시계는 끊임없이 명령해. 자기 말을 들으라고. 후회하지 않으려거든 자기에게 맞춰 자고, 자기에게 맞춰 일어나고, 자기에게 맞춰 일하라고.
하지만 하전, 시계가 없을 때에도 빛바위는 꼬박꼬박 밝아졌고 어두워졌어. 시계가 없을 때에도 우리는 잘 살았고 잘 죽었어. 우리뿐 아냐. 나무와 풀과 가축과 새 들 모두 잘 살았고 잘 살고 앞으로도 계속 잘 살 거야. 우리는 모두 시간을 마음대로 쓰고 마음대로 낭비할 권리가 있어. 하전, 네 말대로 시계는 기계야. 사람이 만든 기계가 사람을 휘두를 수는 없어. 편리함을 가장한 기계의 감시 따위 나는 더이상 받을 수 없어."
검은머리짐승과 우리의 삶 중 한쪽을 거꾸로 놓고 견줘보면 신통하게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음은 신기했다. 우선 몸피가 그러하다. 검은머리짐승은 조그맣게 태어나 점점 커져서 결국 7, 80년 후 몸이 큰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 우리 어른이는 크게 태어나 점점 작아져 7, 80년 후 조그만 몸체로 죽음을 맞는다. 또 검은머리짐승은 태어나서 20년 후 가장 건강할 때 수컷이 암컷의 몸에 씨를 뿌려 후손을 만든다. 그리고 나머지 60년 동안 서서히 늙어간다. 우리 어른이는 몸에 붙었던 딱딱한 각질을 5, 60년 동안 서서히 떼어낸다. 몸이 가장 자유롭고 잘 움직일 때쯤 배우자와 함께 어미산에 올라 씨물과 알을 심는다. 그 후 1, 20년 동안 어른이들의 몸과 머리는 급격히 작아진다. 땅으로 돌아가기 직전, 거의 온종일 잠자다가 숨을 멈추는 어른이의 모습 역시 갓 태어난 검은머리짐승의 모습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완전히 반대의 삶을 살면서 두 세상에서 공통인 점도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7, 80년쯤 혹은 그 이상도 살아간다는 것, 갓 태어난 이를 귀히 여기고 죽음에 임박한 노인들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는 것도 우스울 정도로 똑같았다.
준호가 비록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고 모든 이에게 질시받는 검은머리짐승이라 해도, 자기 스스로를 믿고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려는 모습은 존경스럽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짐승세상에서 의사였던 그는 특히 아픈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든 낫게 해주려고 애썼다. 다른 이가 욕을 하건 겁을 내건 불이나 훈증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상처를 지지기도 하고, 죽어가는 이에게 자신이 만든 죽을 먹여 살려내기도 했다. 환자의 고통이 안쓰러워 같이 밤을 설치고, 병이 나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그는 사람들의 칭송처럼 ‘땅이 보낸 구원자’의 모습이었다. 준호야 당연히 부정하겠지만 나는 준호 역시 우리와 같은 몸체인 생명나무의 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가 행복하면 나도 즐겁고 다른 이가 고통스러우면 나 역시 괴로워지는 것,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만 국한된 감정은 아니다. 사람들뿐 아니라 풀, 나무, 박쥐, 축사에 갇힌 타조라도 그가 행복하고 편안하면 그 감정이 내게 전해진다. 모든 생명들이 보이지 않는 땅속뿌리로 다 이어져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