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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8502004
· 쪽수 : 351쪽
책 소개
목차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 5
해가 되어라 달이 되어라 11
나무도령과 그의 부모 49
나무도령과 그의 가족 89
북녘땅 곰녀 131
노루야 노루야 169
나무꾼과 선녀 203
나는 당신의 각시입니다 239
구렁덩덩 우리 낭군님 279
작가노트 이야기의 기원 327
저자소개
책속에서
다시 말하마. 너희는 해와 달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이 해와 달이 되라고 하였을 때, 너희는 참 많은 것 담은 표정으로 이 어미를 쳐다보
았다. 그렇지 않으냐. 즐거운 놀이 빼앗긴 듯도 했고, 무슨 큰 징벌 받은 듯도 했지. 그뿐이겠느냐. 의문으로 가득하기도 했어. 어머니, 해와 달이 멀쩡히 저렇게 떠 있는데 또 무슨 해와 달이 되라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
이미 내가 말했고, 너희도 다 알지만, 다시, 다시 말하마. 그래, 해와 달은 예부터 하늘에 박
혀 있었다. 그러나 멀쩡히 하늘에 박혀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해와 달이 멀쩡했다면 너희에게, 아니,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겠느냐. 산골 오막살이에서나마 단란하게 살아가던 우리에게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일이 생길 수 있었겠느냐 말이다. 해와 달이 한번 만들어져 내내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이 어미인들 예전에야 알았겠느냐.
배신과 모함. 그것은 너 시아버지가 꿈꾼 새 세상에 죄가 스며든 일이었다. 시작부터 그리되었던 것. 언제인가 다시 읍성이 생겨난다. 그때 분명하게 드러날 일을 나무도령은 미리 내다봤고 앞당겨 고민했다. 사람의 마음에 죄가 이미 씨앗처럼 담겨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살이가 사람의 마음에 죄를 심어 자라나게 하는 것인지 하는 문제까지 따져 답을 얻고자 고민했다. 누구나 다 죄를 지을 수 있는 것. 나는 그리 생각한다. 처지가 달랐다면 우리가 그 부부처럼 그러지 말았으리란 법 없다고 본단 소리다. 집안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읍성을 이루며 사는 일은 결국 죄지을 수 있는 우리를 서로 감당하며 살아가는 일이지 싶다. 사실 감당한다는 말은 너 시아버지가 제 나무 아버지와 함께 물 위를 떠돌던 때, 그때부터 한 소리구나.
곰이 사람이 되었느니라. 늙은 암곰이 기도하여 사람 처녀가 되었느니라. 이 어미가 사람 처녀가 되었다고 방금 이야기했다. 너는, 너는 그러니까 이 어미가 사람 처녀일 때 낳은 자식이다. 너를 떠나보낼 때가 닥쳤다는 것을 알고서 비로소 그 일을 털어놓는 것이다. 그러니 잘 들으려무나.
사람 처녀로 변하였을 때 이 털가죽은 벗고 입을 수 있는 한 벌 털옷이었다.
나는 빠르게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내내 놀랍기는 했지만 머릿속이 맑았다. 봄이 한창이
다 싶을 때도 갑작스레 큰 눈이 내리고 그러지 않느냐? 내가 사람이 되고 얼마 뒤에도 눈이
내렸지. 그때 그 산에는 사냥을 나온 한 무리에서 떨어져 길을 잃고만 사내가 있었지. 눈에 갇혀 먹지도 못하게 되어 거의 정신을 놓은 사람 사내가 있었지.
내가 그 사람을 구하였다. 나는 이미 기력을 다 회복했지. 그랬기에 눈에 갇힌 그 사내를 안고 동굴로 데리고 올 수 있었지. 너를 뱃속에 갖게 된 것은 이미 반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 사내에게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줘 온전히 살려낸 다음의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