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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88765119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8-04-30
책 소개
목차
충청도 보은편 / 그해 봄, 장내리에서
전라도 전주편 / 완산 칠봉 전투와 전주화약
전라도 장흥편 / 여성 동학군과 형제혁장
전라도 나주편 / 나주목사와 대량 학살
전라도 장성편 / 이학승 대관과 황룡전투
전라도 진도편 / 제노사이드와 집단 매장지
강원도 홍천편 / 서석전투와 원주 송골
경상도 경주편 / 동학 창도의 성지 용담
책속에서
▣ 생명을 존중하고, 그것을 온전히 드러내고 실현하는 것이 동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조 관료와 양반들은 동학을 유학에 대한 이단이요, 혹세무민하는 서학의 아류로 단정하고 탄압했습니다. 120여 년 전의 보은취회는 동학(東學)이 백성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생명사상임을 인정받고자 열었던 민심의 집회요, 천심의 취회(聚會)였어요. 보은취회는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죽은 수운 최제우를 살리고, 죽어 가는 나라를 살리고, 핏빛으로 물들어 가는 세상을 다시 개벽하는 살림의 살판이었습니다. 또 현실적으로는 동학을 한다는 이유로 죽을 판에 내몰린 당시의 동학도인 대부분이 농민이어서, 먹고사는 일에서도 고사 상태에 내몰린 그들 자신의 생사 문제가 걸린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동학도인들 사이에서는 유무상자(有無相資)라 하여, 다 같이 없이 사는 가운데서도 서로 돕고 서로 살리는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면 서세동점과 삼정문란의 난국을 이겨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게 되었으나, 관은 그러한 동학적 전통의 확산마저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풍토로 보고 이를 금지하고 탄압하였습니다.
▣ 동학농민혁명은 단지 평등한 세상에서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 의거였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결국 외세를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청나라에 군사를 요청하기 전에, 조선 정부가 백성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었다면, 동족끼리 갈기갈기 서로를 찢고 죽이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부강한 조선이었다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려는 야욕으로 조선 백성의 민심을 이용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재판에서 당당하게 무죄판결을 받고도 억울하게 죽는 일 따위는 더욱 없었을 것이다.
▣ 동학농민군은 말이 혁명군이지 사실은 농민인 겁니다. 이 사람들은 전쟁이나 전투를 하기 위해서 모였다기보다 “우리도 사람이다.”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그런 요구를 국가에 전달하기 위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동학농민군의 무기는 농기구, 죽창, 화승총 등 근대적 의미에서 무기라고 볼 수 없는 자위 차원의 최소한의 무기였습니다. 거기에 비해 경군은 당시 주력 무기였던 천보총을 사용했습니다. 농민의 죽창과 경군의 천보총을 성능으로 비교해 본다면 1:100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학승 대관이 패배하고 전사할 수밖에 없었을까? 동학농민군은 규모가 만 명 정도이고, 이학승 대관이 이끌던 병력은 불과 270명 정도밖에 안되니까, 인해전술에 밀려서 후퇴하다가 결국은 밀려드는 동학군하고 육박전을 벌이면서 방어하다가 전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