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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88907663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19-05-27
책 소개
목차
1 대과거
2 반과거
3 복합과거
4 현재
5 조건법
6 접속법
7 미래
감사의 말
리뷰
책속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커플은 서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올리비에와 내가 지닌 차이점들은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서로의 진짜 모습을 감춘 채 은연중에 상대를 덜 신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올리비에는 쩨쩨하다 싶을 만큼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스럽게 아꼈다. 반면 나는 불치병에 걸린 독재자처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쏟아냈다. 지나고 나면 내가 말할 때의 기분과 말투만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올리비에는 우리가 나눈 대화 내용을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복사하듯 기억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목소리에는 감정이 약간 실렸다. 올리비에는 무언가 다른 뜻을 가늠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그들이 정확히 무슨 요일에 오는지 알고 싶을 뿐임을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게 화가 났다.
올리비에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게 무슨 말이야? 아까 내가 말한 그대로라고.”
“그래? 당신이 뭐라고 말했는데?”
“이미 말했잖아.”
“뭐랬냐고?”
올리비에가 잠시 침묵한 끝에 입을 열었다.
“너와 영어로 말하다보면 마치 장갑 낀 손으로 네 몸을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잔뜩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서는 슬픔이 조금 묻어났다.
언어는 자칫 경계가 삐끗해지면 로맨스가 싹틀 잠재성이 다분하다. 그래서 외국어를 정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어민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상대가 이질적일수록 매혹은 더 커지고, 에로틱한 생각이 상대를 향한 ‘숭고한 갈구’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언어의 환유가 귀나 눈,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엄지가 아닌 혀인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른 혀를 받아들이려는, 그래서 입안에 다른 이의 단어들을 채우려는 의지는 유혹을 마다 않는 유연성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