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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근현대사
· ISBN : 9791188990245
· 쪽수 : 1016쪽
· 출판일 : 2019-01-28
책 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감사의 말
1914년 유럽 지도
서론
1부 사라예보로 가는 길들
1장 세르비아의 유령들
베오그라드 암살사건 | ‘무책임한 분자들’ | 심상지도 | 결별 | 격화 | 세 차례 튀르크 전쟁 | 대공 암살 음모 | 니콜라 파시치, 대응하다
2장 특성 없는 제국
갈등과 평형 | 체스 선수들 | 거짓말과 위조 | 기만적 고요 | 매파와 비둘기파
2부 분열된 대륙
3장 유럽의 양극화, 1887~1907
위험한 관계: 프랑스-러시아 동맹 | 파리의 판단 | 영국, 중립을 끝내다 | 늦깎이 제국 독일 | 대전환점? | 벽에 악마 그리기
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
주권을 쥔 의사결정자들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누가 통치했는가? | 파리에서는 누가 통치했는가? | 베를린에서는 누가 통치했는가? | 에드워드 그레이 경의 불안한 우위 | 1911년 아가디르 위기 | 군인과 민간인 | 언론과 여론 | 권력의 유동성
5장 얽히고설킨 발칸
리비아 공습 | 발칸 난투극 | 갈팡질팡 | 1912~1913년 겨울 발칸 위기 | 불가리아냐 세르비아냐 | 오스트리아의 곤경 | 프랑스-러시아 동맹의 발칸화 | 속도를 올리는 파리 | 압박받는 푸앵카레
6장 마지막 기회: 데탕트와 위험, 1912~1914
데탕트의 한계 |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 보스포루스의 독일인들 | 발칸 개시 시나리오 | 남성성의 위기? | 미래는 얼마나 열려 있었나
3부 위기
7장 사라예보 살인사건
암살 | 사진처럼 기억된 순간들 | 수사 시작 | 세르비아의 대응 | 무엇을 해야 하는가?
8장 확산되는 파문
외국의 반응 | 호요스 백작, 베를린에 파견되다 | 오스트리아가 최후통첩을 보내기까지 | 가르트비크의 죽음
9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프랑스인들
드 로비앙 백작, 열차를 갈아타다 | 푸앵카레, 러시아행 배에 오르다 | 포커게임
10장 최후통첩
오스트리아, 요구하다 | 세르비아, 대응하다 | ‘국지전’이 시작되다
11장 경고사격
강경책의 우세 | “이번에는 전쟁이다” | 러시아의 사정
12장 마지막 날들
낯선 빛이 유럽 지도로 내려오다 | 푸앵카레, 파리로 돌아오다 | 러시아, 군대를 동원하다 | 어둠 속으로 뛰어들기 | “뭔가 오해가 생긴 게 틀림없습니다” | 폴 캉봉의 시련 | 영국, 개입하다 | 벨기에 | 군화
결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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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서론
1914년 여름 위기의 경과를 읽는 21세기 독자라면 필시 그 생생한 현대성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 위기는 자살폭탄 테러단과 자동차 행렬로 시작되었다. 사라예보 폭거의 배후에는 희생과 죽음, 복수를 찬양하는 자칭 테러조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조직은 뚜렷한 지리적 또는 정치적 소재지가 없는 치외법권 조직이었다. 정치적 경계를 넘어 세포조직 형태로 발칸반도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자신들의 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았으며, 어떤 주권 정부와의 연계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분명 조직 밖에서는 알아채기가 극히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1914년 7월 위기는 1980년대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 가깝다고, 더 또렷하게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 냉전이 끝난 이래 안정적인 세계 양극 체제가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러 세력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 와중에 제국들이 쇠퇴하고 신흥 국가들이 부상했다(이는 1914년 유럽과 비교해보고 싶은 국제 정세다). 이런 시각 변화는 유럽이 전쟁에 이른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자극한다. 이 도전에 응한다는 것은 과거를 현재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하는 천박한 현재주의를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바뀐 관점에서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과거의 특징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론
이 책은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반목하다가 전쟁에 불을 붙인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초점을 맞추어 사라예보 암살사건 전야까지 두 나라의 상호작용을 따라간다. 2부에서는 서사를 중단하고 4개 장에서 다음 네 가지 질문을 한다. 유럽은 어떻게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양극화되었는가? 유럽 국가들은 외교정책을 어떻게 수립했는가? 발칸반도(유럽에서 권력과 부의 중심지들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 지역)는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위기의 무대가 되었는가? 데탕트 시대로 들어서는 듯했던 국제 체제는 어떻게 전면전으로 치달았는가? 3부에서는 사라예보 암살로 시작해 핵심적 결정 중심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검토하고, 위기 고조를 위한 계산과 오해, 결정을 조명하는 등 7월 위기 자체에 관한 서사를 제공한다.
이 책의 중심 주장은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걸어간 길들을 밝혀야만 1914년 7월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쟁에 앞서 연달아 일어난 국제 ‘위기들’을 단순히 재론하는 수준을 넘어 그 사건들이 어떻게 경험되었는지, 인식을 구조화하는 서사에 어떻게 엮여 들어갔는지, 어떻게 행위를 추동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럽을 전쟁으로 이끄는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고, 상황을 그렇게 바라보았을까? 수많은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개인들의 두려움과 불길한 예감은 흔히 바로 그 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오만하고 허풍 떠는 태도와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알바니아 문제와 ‘불가리아 차관’ 같은 전쟁 이전의 이국적 특징들이 어째서 그토록 중요했고, 또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파악되었을까? 의사결정자들은 국제 정세나 외부 위협을 논할 때 실질적인 무언가를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들 자신의 두려움과 욕구를 적에게 투영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나의 목표는 1914년 여름 이전과 여름 동안 핵심 행위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매우 역동적인 ‘결정하는 위치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4장 유럽 외교정책의 뭇소리
국왕이나 황제는 서로 별개인 지휘계통들이 수렴하는 유일한 점이었다. 군주가 통합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이를테면 헌법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못하면, 체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일관성 없는 결정을 내릴 위험이 있었다. 그리고 대륙 군주들은 대개 이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애초부터 그런 역할 수행을 거부했다. 집행부의 핵심 관료들과 따로따로 거래하는 방법으로 체제 내에서 주도권과 우위를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결국 정책수립 과정에 악영향을 끼쳤다. 담당 각료가 내린 결정이 동료나 경쟁자에 의해 번복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환경에서 각료들은 대개 “자신의 활동을 더 큰 그림에 어떻게 맞출지” 판단하는 일을 어려워했다. 그에 따른 전반적인 혼란은 각료, 관료, 군 지휘관, 정책전문가로 하여금 각자 자기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정책의 결과를 책임질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도록 부추겼다. 그와 동시에 군주의 환심을 사야 한다는 압박감은 경쟁하고 아첨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한결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위한 부처 간 협의를 저해했다. 그 결과는 1914년 7월에 위험한 결실을 맺을 파벌주의와 과잉 수사(修辭)의 문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