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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광용 선생님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엄광용 선생님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일연 (지은이), 엄광용 (엮은이)
서연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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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광용 선생님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엄광용 선생님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고전
· ISBN : 9791189171100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8-12-15

책 소개

삼국 시대의 생활상과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주는 <삼국유사>. 이 책은 원본인 <삼국유사>가 갖고 있는 최대의 강점인 ‘이야기 형식을 빌어서 쓴 서술 기법’을 최대한 살렸다.

목차

■ 제1권 기이 제1
1 고조선
2 위만 조선
3 고구려
4 신라
5 석탈해
6 연오랑과 세오녀
7 미추왕과 죽엽군
8 김제상
9 소지 마립간
10 지철로왕
11 도화녀와 비형랑
12 진평왕
13 선덕 여왕
14 김유신
15 태종 춘추공
16 백제 의자왕

■ 제2권 기이 제2
1 문무왕
2 신문왕
3 수로 부인
4 신무왕과 염장과 궁파
5 경문왕
6 처용랑과 망해사
7 거타지
8 김부 대왕
9 백제 무왕
10 가락국기

■ 제3권 흥법 제3
1 아도
2 이차돈

■ 제3권 탑상 제4
1 황룡사 구층 목탑
2 조신
3 신효 거사

■ 제4권 의해 제5
1 원광 법사
2 양지 스님
3 원효 대사
4 의상 대사
5 진표 율사
6 법해 스님

■ 제5권 신주 제6
1 밀본 법사
2 혜통 스님

■ 제5권 감통 제7
1 경흥 스님
2 월명사
3 선율 스님
4 김현
5 정수 스님

■ 제5권 피은 제8
1 낭지 스님
2 신충

■ 제5권 효선 제9
1 김대성
2 손순

저자소개

일연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려의 승려이다. 속성은 전씨, 이름은 견명, 자는 회연, 호는 무극·목암이다. 경주 장산군(지금의 경산시) 출신으로, 아버지는 지방 향리 출신인 언필이다. 1206년(희종 2년)에 태어나 1289년(충렬왕 15년) 입적하였다 충렬왕 3년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 집필에 착수하였다.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 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하였다. 9세 때 해양(지금의 光州) 무량사에서 취학했으며, 14세 때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대웅장로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1227년(고려 고종 14년) 선불장에 나아가 상상과에 급제한 이후 포산(현풍현 비슬산)의 보당암·무주암·묘문암 등지에서 머물렀으며, 1237년 삼중대사가 되고 1246년 선사가 되었다. 대몽항쟁기 일연은 포산에서 22년을 보내면서 뚜렷한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 1249년 최씨 무인정권과 밀접한 유대를 가지고 있던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머물게 되었다. 이는 일시적으로 최이에게 반발한 정안이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기피하여 가지산문의 일연을 초청한 것인데, 이로 인하여 가지산문의 승려들이 최씨 정권과 연결되어 1251년에 완성된 대장경 조판 중 남해분사에서의 작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1259년 대선사가 되었고, 1261년(원종 2년) 원종의 명에 따라 강화도에 초청되어 선월사에 머물렀는데, 이때 지눌의 법맥을 계승했다. 이는 그가 가지산문(헌덕왕 때 보조선사 체징이 도의道義를 종조宗祖로 삼고 가지산 보림사에서 일으킨 선풍)에서 사굴산문(범일이 강릉의 굴산사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킴으로써 사굴산파 또는 굴산선파라고 함)으로 법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원종을 옹위한 정치세력이 불교계를 통솔하기 위해 일연을 이전의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대신한 계승자로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1268년 왕명에 의해 운해사에서 대장낙성회를 주관하고, 1274년 비슬산 인홍사를 중수한 후 왕의 사액에 따라 인흥사로 개명했으며, 같은 해 비슬산 용천사를 불일사로 개명했다. 1281년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에게로 가서,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골의 병화로 불타 버린 황룡사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2년 충렬왕에게 선禪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다. 1283년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冲照라는 호를 받았으며, 왕의 거처인 대내大內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옷의 뒷자락을 걷어 올리고 절하는 예)를 받았다. 그 뒤,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1284년에 타계하자, 조정에서는 경상도 군위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경상북도 군위 인각사에서는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를 두 번 개최하였다. 1289년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와 죽허가 있다. 저서에는 『삼국유사』 5권, 『선문염송사원』 30권, 『화록』 2권, 『게송잡저』 3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파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등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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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광용 (엮은이)    정보 더보기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하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였다. 12년간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다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고구려연구회 회원이 되어 국내 답사를 다니던 중, 소설 『광개토태왕 담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일념으로 자료조사를 시작했고, 만주·백두산·실크로드 등 해외 답사를 다니면서 광개토태왕의 원정길을 추적하였다. 광개토태왕 자료는 비문의 내용이 거의 전부였으므로 자료조사의 한계를 느껴,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에 진학하여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러면서 고구려 역사와 그 시대의 생활상을 두루 엿볼 수 있는 간접 자료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 1990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벽 속의 새」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간 지은 책으로는 장편역사소설인 『사냥꾼들』, 『천년의 비밀』 등이 있고, 창작집으로『전우치는 살아 있다』와 『징비록에서 역사의 길을 찾다』등 다수의 책들을 집필하였다. 2015년에는 장편 역사소설 『사라진 금오신화』로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모든 글쓰기는 역사소설 『광개토태왕 담덕』을 집필하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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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하느님의 피를 이어받은 단군왕검

하느님인 환인에게는 환웅이란 서자가 있었다.
하늘에서 환웅이 지상을 내려다보니 매우 아름다웠다. 산에는 계절마다 울긋불긋한 꽃들이 만발했고, 하천에는 맑은 물결이 굽이쳐 흘렀으며, 너른 들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었다.
어느 날 환인이 다가와 환웅에게 물었다.
“아들아, 무엇을 그리 열심히 보고 있느냐?”
“저 아래 지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실은 제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환웅은 꿈을 꾸는 듯한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하고 싶단 말이냐?”
“지상에 내려가 세상을 잘 다스려보고 싶습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구나. 저 아래에 보면 봉우리 세 개가 우뚝 솟아 있지 않니? 그중 가장 높은 것이 태백산1이다. 마음에 드느냐?”
“네 참으로 기백이 느껴지는 산입니다.”
환웅이 만족스러워 하자, 환인은 말했다.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줄 테니, 지상에 내려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
이때 환인은 환웅에게 영험한 물건 세 가지를 주었다. 그것은 천부인, 즉 청동검·청동거울·청동방울로 세상 사람들을 다스리는데 꼭 필요한 보물들이었다.
환웅은 곧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라는 큰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환웅은 그곳을 ‘신시’라 하고, 마침내 천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농사를 지어 곡식을 거두어야만 했다.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가 공기를 통하게 하는 바람, 지상에 물을 내려주는 비, 그리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골고루 비를 뿌리게 하는 구름이었다. 환웅은 바람을 관리하는 풍백, 비를 관리하는 우사, 구름을 관리하는 운사 등의 신하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 즉 곡식을 익게 하고, 생명을 아끼고, 질병을 낫게 하고, 형벌을 다루고, 선악을 구분하는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책임지고 맡아 관리함으로써 세상을 두루 이롭게 하는 데 힘썼다.


♣ 함께 생각하기

절은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았느냐에 따라 석굴사원, 평지사원, 산지사원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석굴사원은 암석으로 된 석굴을 이용하여 법당을 만든 것이며, 평지사원은 나라의 왕도를 중심으로 하여 주로 평지에 건립된 것입니다. 그리고 산지사원은 개인의 조용한 수행을 위해 깊은 산과 계곡에 자리를 잡은 절입니다.
석굴사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경주 신선사의 석굴과 토함산의 석굴암이 있습니다. 평지사원의 경우 고구려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평양 동명왕릉 앞에 있는 정릉사, 백제의 사원으로 부여에 있는 정림사, 신라의 사원으로는 경주의 흥륜사와 불국사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현재 정릉사, 정림사, 흥륜사는 절터만 남아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때 세운 사천왕사는 경주 낭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산지사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삼국 시대에는 호국불교를 신봉하면서 사원들을 많이 건립했습니다. 호국불교는 ‘왕즉불’ 사상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왕이 곧 부처’라는 말인데, 불교를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장 율사, 황룡사에 구층 목탑을 세우다

신라 제27대 선덕 여왕 5년, 자장 율사가 불경을 연구하기 위해 당나라로 건너갔다.
자장 율사가 중국 오대산에 들어가 불법을 익히는데, 문득 문수보살이 나타나 불교의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때 문수보살은 자장 율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나라 대왕은 바로 천축의 찰리종왕1으로 이미 불법을 닦고 계시를 받은 자이다. 그런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야만스런 오랑캐 족속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너희 나라는 산천이 험준하여 백성들의 성질이 사납기 때문에 다른 사교를 많이 믿는다. 이따금씩 큰 재앙이 내리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나라 안에 불도를 닦는 중들이 있어, 지금은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이 평화로운 것이다.”
문수보살은 말을 마치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 자장 율사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자장 율사가 중국의 ‘태화지’라는 연못가를 지나는데, 홀연히 한 신령스러운 사람이 나타나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에 오시었소?”
“불도를 닦으러 왔습니다.”
자장 율사의 말에 다시 신인이 물었다.
“그대의 나라에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단 말이오?”
“예, 우리나라는 북으로 말갈1과 접하여 있으며, 남으로는 왜국과 바다를 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의 고구려와 백제는 호시탐탐 신라의 국경을 넘보고 있으니, 백성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그대의 나라는 여왕이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소. 그래서 이웃 나라가 얕잡아보고 침략을 일삼는 것이니, 그대는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도우시오.”
신인의 말에 이번에는 자장 율사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본국에 돌아가서 소승이 어떤 일로 나라를 도울 수 있습니까?”
“황룡사를 지키는 용은 바로 나의 큰아들이오. 그대는 본국에 돌아가 황룡사에 구층 목탑을 세우도록 하시오. 그러면 이웃 나라들이 모두 항복하고 동방의 아홉 나라가 조공을 해올 것이오. 탑을 세운 후에 팔관회2를 베풀고 죄인을 석방하면 감히 외적들이 해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경기 지방 남쪽 해안에 작은 절을 지어 내 복을 빌어준다면, 나도 그 은덕에 보답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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