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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9356187
· 쪽수 : 120쪽
책 소개
목차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존 케이지와의 대화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사물의 상태
해변을 가로지르며 / 바다를 바라보며
All Good Spies Are My Age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참여한 회의의 비서이자 기록자에 대한 기록이 이렇게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는지, 그러나 생각해보시오, 베른하르트, 당신은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의 편집자와 조판 디자이너와 영업자와 유통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책이 나오기 위해 기능하는 물질적, 인적 기반들에 대해 아주 사소한 사실도 모르지 않습니까, 저는 이러한 작은 힘들이 모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결부되어 있는 관계에 대해 아무런 인식 없이 넘어가고 그러한 인식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발전되어온 추상화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해석하고 망각하고 가르고 나누지 않고는 아무것도 흡수할 수 없고 점점 더 그러한 방향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흡수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어떤 절대적인 현실인 양 행동해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렇게 신경 구조가 생겨먹었거나 그러지 않으면 폭발하는 기억과 감각으로 인해 돌아버릴 거라는 공포감 때문인지, 인지 스스로 인지 고유의 편협성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라고 하인츠 폰 푀르스터는 말하며 자신이 직접 땅을 일구고 집을 세운 래틀스네이크 힐의 쉽게 바스라지는 갈색 흙을 으깨듯 밟았다.
-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는 메신저와 구글과 네이버와 트위터와 유튜브를 동시에 사용한다. 서로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나 컴퓨터로 보고 있는 영화의 캡처 이미지, 방금 올라온 악플, 애플뮤직 링크가 활용되고 공적 사실, 사적 기억, 타인의 창작물이 무차별적으로 병치된다. 이것은 21세기 버전의 터키시 무비로 나는 글을 쓰며 음악과 영상, 사진으로 옮겨 다니고 방향을 전환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고 어떤 이들은 이미 글에서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글에서 온도 변화를 느끼고 악기가 연주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어떤 영상물은 음악과 영상과 텍스트로 이루어진 책이 되었다. 그렇다면 소설이나 시가 굳이 필요할까. 기술이 공간을 통합시켰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현대적 살롱이 책처럼 손에 들어왔는데, 텍스트 내의 완결된 세계를 통해 감각적 환기와 대리 체험을 경험하게 하는 소설이나 시에 무슨 큰 재미가 있는가. 그건 자폐적인 세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자폐적이란 말은 내 소설이 많이 듣는 얘기이기도 하다. 캐서린 헤일스는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자기 생성 이론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자폐아에게 오히려 더 어울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통 체계 속의 자폐아다. 우리는 언어를 교환하는 규칙의 세계를 만들고 외부의 체계와 자신의 체계에 동시에 갇힌 이중의 자폐아다.
- 「존 케이지와의 대화」
글을 쓰기 시작하면 계절은 무의미해지고 일상생활의 관계도 무의미해진다. 세계와 관계를 단절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칩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자아로서의 내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과 다른 관계가 형성된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세계가 뒤로 물러나고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부상한다. 그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아니다. 아래 숨겨져 있거나 조각난 채로 흩어져 있어 보지 못했던 세계, 가능성만으로 존재하는 세계다. 소설을 쓰는 것은 세계와 관계 맺는 과정이고 그것은 모니터 속의 작업이 아니라 신체적이고 사회적인 작업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의 신체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세계에 기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한 세계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세계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나뉘어져 있지만 나머지 한 세계가 없이 존재하지 않는 두 세계다. 다시 말해 두 세계의 관계가 곧 세계다. 그러므로 관계의 복원은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 「해변을 가로지르며 / 바다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