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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연구/문화이론
· ISBN : 9791190311038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0-11-27
책 소개
목차
0. 프롤로그 9
플라스틱 바구니 9 / 시간이 직접한 디자인 10 / 모순이나 선입견이 아닌, 길항의 메커니즘 13 / 대립, 항상성, 문화 15 / 마음은 논리적인가 17 / 원형 혹은 심리적 욕구 21
1. 개방과 폐쇄의 줄다리기 25
움직이는 문화 25 / 폐쇄성 26 / 721번의 전쟁 31 / 생존 32 / 폐쇄의 또 다른 얼굴, 통제 35 / 폐쇄와 개방의 밀고 당김 37 / 이상향 속의 개방과 폐쇄성 46 / 남중국의 있음직한 풍경 54 / 편안한 한국의 산수화, 장식성의 일본 산수화 64 / 폐쇄와 개방의 감성 69
2. 강박과 이완 혹은 강박과 유연성 73
별난 취미의 중국인 73 / 유기달도 75 / 곡예적 강박 77 / 집중력과 노력을 감상하다 82 / 문인화와 유기달도 87 / 자유와 개성을 찾아 88 / 감각의 세계 93 / 서예에 담긴 문인의 욕망 96 / 탈 왕희지 100 / 강박과 이완의 감성 103
3. 덤벙주초와 석굴암 107
소나무를 닮은 덤벙 문화 107 / 흐트러짐과 단정함의 대비 112 / 바람의 옷과 통제의 옷 115 / 마음이 중하지 솜씨가 중한가 122 / 추사체의 다양성과 유연성 126 / 조용한 아침의 나라와 신명 128 / 극정밀 고려미술을 만든 마음 129 / 터럭 하나까지 닮게 그려라 135 / 한글, 세상의 이치를 따지다 139 / 덤벙의 문화와 이념적 강박 141 / 조울증권형 마음 143
4. 축소와 확장 149
주위를 맴도는 죽음 149 / 능동성이 주는 생의 기운 153 / 통제하고 예측하려는 축소 155 / 사방이 막힌 섬나라의 표준 159 / 기하학적 규칙성과 압축 169 / 주지적 미술양식 174 / 심화지향 178 / 통제와 예측을 위한 확장 181 / 물량공세 185 / 두 개의 검, 축소와 확장 186 / 통제의 감성 189
5. 센리큐와 사무라이 193
와비사비 193 / 고우라이모노, 오리베야키, 라쿠차완 197 / 작위적인 비작위 202 / 늠름함, 단순성의 사무라이 문화 212 /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무라이 214 / 금을 두른 사무라이의 성곽 217 / 센리큐와 사무라이의 대결 222
6. 벌집형 집단주의 227
둥근 것이 알려주는 성격 227 / 곡선 대 직선 228 / 한국과 중국의 집단주의 232 / 벌집 속의 일본식 집단주의 237 / 집단주의 속의 개인주의 241 / 일본의 집단주의적 마음 246
7. 추상 대 감각 249
집단주의와 추상적 사고 249 / 감각중심적 상형문자 251 / 중국인의 시각중심성 254 / 전형성 258 / 관계중심적 세상 262
8. 탐미와 허무 269
금지된 캔버스, 피부 269 / 탐미라는 탈출구 273 / 새로운 미에 대한 갈증 276 / 미적 대상의 확장 277 / 오랜 기다림과 거대한 것의 충돌 281
9. 한과 해학과 신명 289
고통과 싸우는 예술 289 / 배부른 벼슬아치들은 아무 생각이 없네 292 / 스스로에게 향하는 분노, 한 294 / 멀리서 보면 다 별일 아니더라 297 / 심리적 긴장을 완화하는 해학 301 / 샤머니즘과 신명의 문화 304 / 조울증권형의 필연, 한과 신명의 대비 307
10. 토비와 유가의 싸움 311
정의보다는 의리, 협객의 나라 311 / 무협 문화의 시작 314 / 분노의 배설 315 / 토비와 군자의 겨루기 317
11. 죽음과 영혼 323
요괴의 등장 323 /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알 수 없는 것들 327 / 신이 된 유령 329 / 자연과 작위의 이분법 331 / 상상력 335
에필로그 339
참고문헌 342
찾아보기 346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 국가의 감성적 기질이 이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지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는 경험론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열정적이지만 조급하다!’, ‘일본 사람은 내성적이고 매뉴얼만 따진다!’처럼 순식간에 규정해버리면, 규정에 반대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나오게 마련이다. 마치 ‘독일 사람들은 질서의식이 강해!’라는 규정 앞에, ‘길거리에 쓰레기를 쉽게 버리던데!’라고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한국 사람 가운데에는 열정과 반대되는, 신중하고 조용한 사람도 많다. 물론 규칙을 강박적으로 지키려는 기질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한편 어떤 민족의 기질이나 심층 문화를 규정하려는 시도에 비판적인 시선은, 기질론이 자칫 우열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한다. 현재를 결정하는 것은 선천적 기질보다는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상황이라는 시선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기질론은 우와 열을 가르려는 준비가 아니다. 도리어 현실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살펴보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기질론을 반대하는 경우에도, 일상에서 이 반대를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상이나 주변 환경으로 사람의 성격을 예측해보는 시도는 오히려 일상적이다. 지금까지의 기질론이 주는 불편함은 기질을 하나로 단정해버리는 경향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그렇듯 문화적 특징을 길항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면서 ‘열정과 신명의 문화’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북중국의 산수화들은 대부분 높은 바위산에 억센 기상과 개방성을 담고, 극단적으로 외진 공간에 위치한 인가에는 자연에 귀의코자 하는 도교적이고 폐쇄적인 욕구가 드리워져 있다. 이 둘 사이의 강하고 예리한 대비가 바로 북중국 산수화다.
북중국의 산수화에서는 간접전망을 암시하는 거대한 봉우리와 그 사이의 작은 계곡, 울퉁불퉁한 바위 틈새를 한 걸음 한 걸음 눈으로 쫓는 재미가 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닿기 힘든 외진 구석이나 절벽 위에서 한두 채의 집을 만나게 된다. <설경한림도(雪景寒林圖)>의 거대한 바위산 왼쪽 골짜기에 는 아담한 전각이 숨어 있다. 낯선 사람 앞에서 엄마 치마폭 속으로 숨는 아이와 같은 수줍음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보인다. 내향성과 폐쇄성이다.
남송 직전인 오대십국 시대, <추산문도도(秋山門道圖)>에서는 거대한 바위산 가파른 계곡 초입에 서너 채의 집이 마을을 꾸리고 있다. 역시 엄마 품에 숨은 아이 같은 형세인데 지대가 낮다. 은신처로서 약간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집의 지붕보다 높게 솟은 나무의 무성한 나뭇잎이 인가를 덮고 있어 은신처로서의 성격과 내향성은 여전하다.
덤벙과 강박의 밀고 당김을 확인하면, 덤벙이 단순한 성의 없음이나 솜씨 부족이 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천연주의, 비작위, 겉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본질주의와 같은 태도에서 나온 것이 덤벙의 문화다. 그렇다면 덤벙의 척점에 있는 강박의 문화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볼 것은 고려불화다. 고려불화는 한동안 한국미술사에서 잊혀졌었다. 우선 작품이 한국에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낯설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이 160여 점 정도인데 대부분이 일본에 있고 미국과 유럽에 일부가 남아 있다. 한국에는 삼성 리움 미술관, 아모레 미술관 등이 20점 정도를 소장하고 있는데 대부분 최근에 구매한 것이다.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여 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고 이동주 선생의 노력 덕분으로 일본에 있는 고려불화들이 한국에 소개되면서부터다.
고려는 불교를 국가 운영의 근본으로 삼았다. 나라를 만들 때부터 숭불정책을 쳤는데, 고려를 연 왕건은 <훈요십조(訓要什條)>에서 불교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불화는 국가 지배이념으로서 불교의 높은 위상에, 고려의 귀족정치가 더해져 높은 수준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그 정교함과 장대함은 덤벙의 미술과는 확연히 다르다. 특히 표정이 생생해 부처의 실제 모습을 상상해 내려는 치열함에 감탄하게 된다. 고려불화에는 배채법과 금분을 많이 활용했고 부처를 상단에, 협시 무리를 하단에 배치하는 등 독특한 고려 양식이 두드러진다. 그러면서도 100여 점 불화 속 부처님의 얼굴에 일관되게 간다라 양식이 나타나는데, 이는 모본에 매우 충실했음을 말해준다. 덤벙주초와 같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미술양식과는 전혀 다른, 세련되었으나 지극한 정성과 정교함 속에서 강박적 불심이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