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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90345187
· 쪽수 : 293쪽
· 출판일 : 2023-02-01
책 소개
목차
• 머리말
제1장 - 북두칠성을 등에 새긴 아이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다 /폭풍 전야의 조선 정세 속, 폭풍의 눈 같던 아이 안중근의 명망 높은 가계/상무적 기상이 남달랐던 어린 시절
제2장 - 동학농민운동의 횃불 아래
아버지와 함께 동학군에 맞서다 /갑오의려의 선봉에 선 안중근/구국운동의 씨앗을 품다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문에 드리운 검은 기운 /백범 김구와의 깊은 인연 /호방했던 청년, 안중근
제3장 - 신의 이름으로
천주교를 접하다/천주교 대학 설립의 꿈 /해서교안으로 인한 탄압 /정의와 의협심으로 불타오르던 사나이/안중근 가문의 천주교 입교와 이율배반
제4장 - 나라 잃은 슬픔을 배우다
러일전쟁의 발발과 일본의 국권 침탈 /계몽운동에 뛰어들다 /조국을 위해 망명 계획을 세우다 상하이에서의 실망 /본격적인 구국운동
제5장 - 의병투쟁을 벌이다
일제에 의한 한국 군대의 해산 /조국 해방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다 /머나먼 여정에서 만난 동지, 그리고 희망 /대한제국 의병 창설
제6장 - 의병활동과 단지동맹
국내 진입 작전 /만국공법 정신의 수호와 의병들의 반발 /단지동맹을 맺다
제7장 - 코레아, 우라!
빼앗은 100원 /거사의 결단 /동지를 만나다 /의기를 높이다 /10월 26일의 거사
제8장 - 하얼빈에 울린 구국의 총성 소리
영웅, 심문을 받다 /일제의 치밀한 재판 준비 /의거의 목적 /의거에 대한 반응들
제9장 - 감옥 안에서 탄생한 동양평화론
옥중 서신 /동양평화론 서문 /동양평화론 전감
제10장 - 나의 소원은 동양 평화입니다
동양 평화를 위하여 /동양평화론의 배경 /미루어진 동양 평화
•맺음말 영웅, 안중근을 기리며
•부록
동양평화론 관련 유묵 /인심결합론(人心結合論)/안중근 의사가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께 드린유서/안중근 의사가 분도 어머니에게 부치는 글 /홍 신부님 전상서/대한국인 안중근 유묵 /안중근 의사 연보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장차 이 아이는 큰일을 할 인물이 분명하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으니, 이 아이의 이름을 응할 응, 일곱 칠을 써서 응칠(應七)로 지어야겠다.” 이렇게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아이가 바로 안중근이었다. 응칠은 안중근의 아명으로 북두칠성의 기운을 따른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훗날 하얼빈 역에서 민족의 적,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안중근은, 뒷날 집필한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의 성은 안(安)이요, 이름은 중근, 어릴 때의 이름은 응칠이다. 나의 타고난 성질이 가볍고 급한 듯하여 이름을 중근이라 짓고, 가슴과 배에 7개의 검은 점이 있어 어릴 적 이름을 응칠이라 하였다 한다.”
<제1장_ 북두칠성을 등에 새긴 아이> 중에서
안중근은 문반이기보다 무반에 가까웠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중에서 해박한 사적(史的) 감각으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분석한『동양평화론』이나 애국혼이 넘치는 한시와 수많은 유묵에 나타난 필력 등은 당대의 석학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그의 학문과 식견 그리고 필체가 우수했음을 보여준다.
안중근은 집안 서당에 초빙된 스승에게서 각종 유교 경전과『통감』 등을 배우고, 조선사와 만국 역사에 대해서도 두루 섭렵했다. 또한 활쏘기와 말타기를 즐겨 숙부와 사냥꾼을 따라 종종 산을 탔고, 그 과정에서 사격술도 익혔다. 안중근이 뒷날 대의를 위해 의병이 되고,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은 어릴 때부터 지녔던 이와 같은 상무적인 기풍 때문일 것이다.
<제1장_ 북두칠성을 등에 새긴 아이> 중에서
이렇듯 안중근은 그 생각이나 행동이 소년 시절부터 남달랐다. 글공부를 통해 과거를 준비하는 것이 당시 양반층 자제들이 밟던 전형적인 과정이었으나, 안중근은 과거 시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 안태훈 역시 이를 강요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익힌 무예와 병법, 여기에 담대한 용기와 탁월한 지략으로 상무의 기풍을 키우면서 동학군과의 전투에 앞장섰다. 그리고 열여섯 소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통솔력을 보여줬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칭찬이 끊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학군과의 싸움을 경험하면서 안중근은 국가의 안위를 이렇게 걱정하기 시작했다.(『안응칠 역사』, 1979)
“나라에서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업신여겨 백성이 군사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나라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만약 갑자기 외국 열강이 우리의 약함을 노려 침략하면 우리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약에서 벗어나 무강의 기풍을 조성함으로써 앞날에 대비해야 한다.”
<제2장_ 동학농민운동의 횃불 아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