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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90429368
· 쪽수 : 544쪽
· 출판일 : 2025-06-1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 조선 후기 무관직, 그 의미를 묻다 | 11
1부 무관의 개념과 무관직 구조
1장 무관의 개념과 정책
1. 무관의 개념 | 31
2. 무관 관련 용어 | 35
3. 무관 정책의 특징 | 43
2장 서반관계의 구성과 운용
1. 서반관계의 구성 | 47
2. 서반관계의 운용 | 57
3장 속대전의 무관직 구성
1. 서반 경관직의 종류와 규모 | 67
2. 서반 외관직의 종류와 규모 | 81
2부 중앙 고위직과 청요직
4장 서반 최고위 아문 중추부
1. 중추부의 조직과 규모 | 99
2. 중추부의 임무와 사회적 위상 | 105
5장 훈련원의 지속과 변화
1. 훈련원의 확대 | 111
2. 훈련원의 변화 | 118
3. 습독관과 권지 | 123
6장 무관 청요직과 천거
1. 서반 최고 청요직 선전관 | 128
2. 선천宣薦의 운용과 특징 | 147
3. 부장과 부천部薦 | 162
4. 수문장과 수천守薦 | 180
3부 오위와 체아직
7장 오위도총부의 변화
1. 오위도총부의 구성 | 195
2. 오위도총부의 임무 | 202
3. 도총관의 부족 | 212
8장 오위장의 새로운 운용
1. 오위장의 구성 | 218
2. 오위장의 임무와 위상 | 223
9장 오위 체아직의 구조와 운용
1. 체아직 관련 용어 | 235
2. 오위 체아직의 지급 기준 | 242
3. 원록체아와 잡체아 | 249
4부 군영 아문
10장 군영아문의 구조와 구성원
1. 군영아문의 성립과 종류 | 267
2. 군영아문의 조직과 구성원 | 280
11장 군영아문 소속 장관의 역할
1. 장관의 임용 방식 | 293
2. 중군 | 296
3. 천총과 파총 | 303
4. 금군장-내금위장·겸사복장·우림위장 | 323
12장 군영아문 소속 장교의 임무
1. 지구관知彀官 | 339
2. 교련관 | 352
3. 기패관 | 364
4. 국출신 | 372
13장 무관 산직散職
1. 내사복시와 내승 | 378
2. 능마아청과 능마아강 | 389
5부 지방의 변장과 보좌직
14장 변장의 개념과 규모
1. 변장의 개념과 범주 | 401
2. 변장의 규모 | 403
15장 첨절제사와 동첨절제사
1. 첨사의 규모 | 413
2. 첨사의 운용-변지·이력·체부·구근·자벽 첨사 | 422
3. 첨사의 자격과 역할 | 436
16장 만호와 권관
1. 만호의 규모와 운용 | 444
2. 권관의 규모와 운용 | 463
17장 절도사 보좌 무관직
1. 우후 | 478
2. 북평사 | 495
나가는 말 : 붓과 칼 사이, 조선을 지탱한 또 하나의 질서 | 506
부록 | 517
참고문헌 | 525
찾아보기 | 537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늘날 경복궁 근정전과 덕수궁 중화전 앞뜰에는 어도御道 좌우로 품계석品階石이 남아있다. 남쪽을 향해 앉은 임금을 바라볼 때, 오른쪽(동쪽)에 놓인 품계석은 문관이 서는 자리였고, 왼쪽(서쪽)은 무관이 서는 자리였다. 그래서 문관을 동반東班, 무관을 서반西班이라 했으며, 이를 합쳐 ‘양반兩班’이라 불렀다. 이때의 ‘양반’은 반상班常을 구분하는 신분 개념이 아니라 문·무로 나뉜 벼슬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466년에 세조가 관제를 재조정하면서 정비한 서반관계는 이전과 비교하여 두 가지 변화를 보였다. 첫째, “절충장군折衝將軍은 당상관으로 올린다.”라고 했듯이 절충장군을 당상관으로 승격했다. 이 조치로 2품 이상이 없는 서반관계에 당상관이 새롭게 생겼으므로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시기별로 지역의 변화도 주목된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서반 외관직의 규모는 경상도 103자리, 전라도 87자리, 충청도 69자리, 평안도 65자리, 함경도 57자리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속대전』에서는 경상도가 여전히 134자리로 가장 많았으나, 그 뒤를 평안도 124자리, 전라도 110자리, 함경도 105자리, 경기 79자리가 차지했다. 특히, 평안도(59자리 증가, 증가율 91%), 함경도(48자리 증가, 증가율 84%), 경기(30자리 증가, 증가율 61%)의 증가율이 높으므로, 조선 후기에 북부 지역과 경기의 외관직이 크게 확대된 점이 두드러진다.